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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테판 Jul 20. 2020

#07 피사 - 기울어져 있다는 것은

이탈리아 여행기 07

선택의 연속은 여행과 인생이 가장 닮은 점 중 하나다. 선택은 나의 취향과 가치관에 따라 달라진다. 피렌체에서의 둘째 날은 명품을 쇼핑할 수 있는 '더 몰'과 피사의 사탑을 볼 수 있는 '피사’ 중에서 선택해야 했다. 두 군데 다 가면 좋겠지만 계획된 일정상 오전에 다녀와야 했기 때문에 둘 중에 한 곳을 포기해야만 했다. 명품 매장이 가득한 곳에서 쇼핑하는 내 모습과 피사의 사탑 앞에서 사진을 찍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결국 피사행 기차표를 샀다. 나는 아직 명품과 어색한가 보다.


이탈리아의 대중교통은 특이한 점이 있다. 티켓 검사가 불시에 이루어진다. 이탈리아 여행을 하면서 티켓 검사를 받은 것은 전날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단 한 번뿐이었다. 누구는 운 좋게 무임승차도 가능하지만 운이 나쁘면 티켓값 몇 배의 벌금을 낼 수 있다. 나는 정당하게 값을 지불하고 탔지만 막상 검사를 안 하니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제 값을 내고 가는 건데도 왜 손해 보는 느낌일까.

피사 역

기차를 타고 피사 역에 도착했다. 청명한 하늘과 살짝 차가운 바람은 피사가 주는 첫 느낌이었다. 피렌체보다 더 소박한 도시였다. 피사의 사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 섰다. 역시 세계적인 명소답게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있었다. 30분 정도를 기다린 후에야 버스가 도착했고, 현지인과 관광객들 사이에 섞여 버스에 올라탔다.


수많은 관광객들 사이로 현지인들이 끼어 타고 있었다. 버스 안 모습은 출근길 서울 버스 같기도 하고, 주말의 심야 버스의 모습과도 꽤 닮았다. 피사의 사탑까지 가기도 전에 내리려는 주민들이 미간을 약간 찌푸린 채로 내렸다. 간혹 내리지 못했는데 문이 닫히자 기사에게 소리치고 내리는 사람도 있었다. 유명한 랜드마크 주변에서 사는 것도 스트레스의 원인이 될 수 있겠다 싶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저 탑 때문에 편두통이 생겼다고요!"


피사의 사탑을 방문한 일부 사람들은 볼 것이 없다고 했다. 덩그러니 놓인 탑 하나를 보러 멀리까지 가야 하기 때문인데 나의 생각은 달랐다. 사탑을 보는 장소의 입구를 지나니 저 멀리 높이 솟은 건물이 보였다. 매체로만 접하던 기울어진 피사의 사탑이 눈 앞에 있었다. 생각보다 큰 규모에 감탄하고, 기울어진 각도에 한번 더 놀랐다. 맑고 푸른 피사의 하늘과 사탑은 환상의 궁합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원근법을 이용한 재미있는 사진을 찍기 바빴다. 서로 사진이 잘 나오는 명당을 잡기 위해 대기하기도 했다. 나는 몇 장의 사진을 찍은 후, 사탑을 가까이서 관찰해 보기로 했다.


정말 높다. 햇빛 때문에 눈이 부셔 오래 쳐다볼 수도 없을 만큼 높았다. 기울어진 각도도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하루에 정해진 인원수만큼만 탑 위를 오를 수 있다고 한다. 시간이 여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오르진 않았지만 가까이서 본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사탑은 처음 수직으로 세워졌지만 지반 토질의 불균형으로 인해 기울어졌다고 알려진다.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로 기울기는 계속해서 변화하였다. 20세기, 심해지는 기울기로 사탑의 붕괴를 막기 위해 이탈리아 정부에서 막대한 예산과 지원을 요청하여 기울기를 멈출 수 있게 되었다. 2001년까지 진행된 공사를 마치고 일반인에게 공개되었으며 앞으로 2~300년 동안은 현재의 기울기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기울어진 채로 서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똑바로 서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과 중력을 거스른 채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 피사의 사탑이 그동안 견뎌야 했던 세상의 관심과 이야기들이 무겁게 느껴졌다. 몇 백 년을 쓰러지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니 대단할 뿐이다. 지반이 기울어도 무너지지 않는 사탑에서 강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나에게 피사의 사탑은 살기 위해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한 생명체로 보였다. 꼭 오래오래 버텨서 그 자리를 지켜 주었으면 한다.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모습 그대로.


오전 당일치기로 왔기에 사탑을 뒤로하고 돌아가는 버스에 올랐다. 한 번 왔던 길이라고 돌아가는 길은 괜히 마음이 편했다. 만약 피사에서의 시간이 더 주어졌더라면 동네 골목골목을 산책하고, 근처 카페테리아에 들러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싶다.


피렌체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었다. 아직도 이 식당은 기억에 남는다. 유창한 영어와 친절한 미소로 주인이 맞이해 주었다. 메뉴 하나하나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기도 했다. 아직도 그 미소가 생각날 정도로 친절하고 기분 좋은 인상이었다. 음식 또한 맛있어서 피렌체에 머무는 동안 또다시 오자고 누나와 이야기했다. 어디서든 친절함과 미소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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