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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테판 Sep 22. 2020

#09 피렌체 - 피렌체에서의 마지막 하루

이탈리아 여행기 09

모방은 정말 인간의 본능인가 보다. 로마에 있을 때, 어느 외국인에게 크루아상을 아주 맛있게 먹는 방법을 배웠다. 그가 나에게 직접 가르쳐 준 것은 아니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힐끔 보고 바로 따라 했다.


먼저 원하는 맛의 크루아상을 고른다. 나이프로 크루아상의 한쪽면을 반으로 가른다. 이때 가끔 겉면에서 부스러기가 많이 나오는 빵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그런 빵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그리고 잼을 듬뿍 발라 넣고, 햄이나 치즈, 베이컨 등으로 채워 넣는다. 나와 누나는 로마에서 곁눈질로 배운 맛있게 먹는 방법으로 각 도시마다 아침을 맛있게 해결했다. 이와 곁들여 마시는 커피는 아직도 그립다. 로마 아저씨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라찌에! 크루아상 선생님!”



미술사에 대단히 조예가 깊지는 않지만 관심은 많다. 그래서 여행을 할 때면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꼭 들러보는 편이다. 피렌체에 왔으니 우피치에 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도 그렇게 얘기했다.


“피렌체 가면 우피치에 꼭 가봐.”


피렌체의 아침 공기가 제법 쌀쌀했다. 하늘은 굉장히 청량했고, 살짝 습한 느낌이 유럽에 왔다는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환상적인 날씨, 이국적 양식의 다리와 건물은 카메라를 들이대면 그 자체로 멋진 사진이 되었다.


베키오 다리는 무려 로마시대의 다리이자 제2차 세계대전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다리다. 긴 세월도 세월이지만 전쟁 속에서 살아남은 대단한 생명력을 간직한 다리. 이탈리아어로 '오래된 다리'라는 뜻이다. 지금은 보석상들이 즐비하고 있지만, 인류의 가장 큰 아픔 중 하나인 전쟁을 겪고,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죽음이 이곳을 스쳐 지나갔다고 하니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이 다리가 간직한 이야기들은 얼마나 굉장할까.



우피치에서 느낀 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우피치 가문 정말 대단하다. 이렇게 수려한 작품들을 수집했다니. 둘째, 항상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것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적당히 알고 있는 지식과 로마에서 들었던 내용들을 쥐어짜서 우피치 이곳저곳을 감상했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 되었지만 가이드를 따라 여러 무리가 함께 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목이 긴 성모 마리아>

르네상스가 탄생하게 된 우피치, 피렌체.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완벽한 비율과 화려한 기법 흠잡을 곳 없는 르네상스의 절정보다 그것을 비틀고, 탈피하려는 매너리즘이 더 마음에 들었다.


이 작품 앞에 앉아서 한참 동안 시간을 보냈다. 조금은 이상한 비율과 비례, 이 그림의 마리아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목도 길고, 누워있는 아기는 하기엔 너무 크고, 자칫 떨어질 것만 같이 불안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지만 완벽에 가까운 것은 내 취향이 아닌 것 같다.


원래는 출구쯤에 나오는 기프트샵에서 기념품을 잘 사지 않는 편이지만 목이 긴 마리아 그림이 그려진 엽서를 한 장 사 왔다.


"살다 보면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혹은 더 이상 발전할 것이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겠지? 그럼 그때 이 그림을 꺼내 봐야겠다."




우피치에서 오래 걸은 보상으로 고기를 뜯었다. 탄수화물만 먹다가 육류를 먹은 순간 눈이 동그래지고, 활력이 생겼다. 고기를 먹으면 눈이 커지는 기적 같은 일을 경험했다.


포털에서 검색하면 나오는 유명한 식당이 있었지만 가지 않았다. 한국 사람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고, 일부러 현지인들이 더 많이 가는 곳으로 찾아 들어갔다.


주문을 하고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현지인 무리가 단체로 들어왔다. 근처에서 노동을 하시는 분들 같았다. 그들의 언어는 알아듣진 못했어도 종업원과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니 꽤나 단골들인 것 같았다. 현지인들은 가끔씩 우리를 힐끔 구경했다. 이방인이 받는 시선을 제대로 느끼며 고기를 썰었다. 음식을 먹는 내내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마도 평범한 일상의 대화였겠지.


'젠장, 요즘 피오렌티나 성적이 안 좋아'

'오늘은 퇴근 후에 데이트가 있어'

'저기 앉은 쟤네들은 일본인일까? 중국인일까?'


그들에겐 어느 평일의 점심시간이었으리라.



피렌체에서의 마지막 밤이 다가왔다.


누나가 그동안 가보고 싶어 했던 카페를 가기로 했다. 누나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는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티라미수를 먹는 것이라고 했다. 겉보기에도 화려한 카페였다. 카페에 대한 정보를 조금 찾아보니 테라스에서 음식을 먹고 가면 자릿세를 받는다고 한다. 순간 비용적인 부분이 궁금하기도 하고, 내심 터무니없을까 걱정도 됐다.

커피와 티라미수 그리고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가격을 듣자마자 내 머릿속에서 환율을 계산해보았다.


"어라? 그런데 생각보다 얼마 안 나오네?

"한국에서 스타벅스가면 이거보다 더 나와."

"그러니까 커피랑 케이크까지 하면..."


너무 놀란 마음에 한국말로 크게 이야기해버렸다. 분명 주변에 한국사람도 많았는데 살짝 민망해졌다. 맛있는 커피와 티라미수가 이렇게 저렴하다니 한국 커피는 왜 그렇게 비싼 건지 생각했다.


 “한국에 가면 어떻게 커피를 사 마시지?”


아이러니하게도 안 마실 것 같았던 카페에서 지금도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있다.


피렌체에서의 모든(해야 하는) 일정을 치르고 나니 마음이 굉장히 편안했다. 공화국 광장에서 저물어 가는 해와 돌아가는 회전목마의 화려한 조명을 잠시 동안 아무 말없이 바라보았다. 아무런 생각이나 마음이 없어도 충분했던 그 순간이 그리워진다. 피렌체에서 보낸 시간은 에스프레소처럼 짧지만, 강렬한 맛과 그 깊은 여운은 진한 커피 내음처럼 오랫동안 남아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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