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테판 Nov 01. 2020

#에필로그 - 흐르는 강물처럼

이탈리아 여행기 에필로그

이탈리아에서 떠나는 날 아침, 눈을 뜨고선 침대 위에서 한참을 멍하니 누워 있었다. 여러 생각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같이 왔으면 하는 사람들, 이제는 볼 수 없는 사람들, 지금 나의 위치, 내가 해 온 일들, 앞으로 해야 할 일들, 보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는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이상한 경험이다.


비교적 젊은 나이지만, 그동안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불행들을 한꺼번에 겪었다. 


"대체 네 삶은 왜 그래?"

"너도 이제는 충분히 행복해도 되는데."


이런 말들을 듣고선 생각했다. 


'그래, 나도 이제 행복해져도 되는데... 그런데 정말 그래도 되는 거야?'


물론 불행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며, 힘든 일은 있기 마련이다. 고통도 상대적이라 비교하는 것에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로지 내 삶만 바라본다면 나는 성실히 살아왔고, 이제껏 운명의 장애물들을 잘 넘어왔다.


이로 인해 내가 얻은 교훈은 '흐르는 강물처럼 살자'였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파울로 코엘료의 산문집에 있는 이야기와도 맞닿는 이야기다. 이 책은 나의 삶에도 영향을 주었지만 여행하는 스타일에도 큰 길잡이가 되었다.


살다 보면 내 뜻대로 안 되고, 생각대로 되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큰 계획안에 있지만 앞으로 벌어질 일들과 만날 사람들을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 그럼에도 내가 무엇인가를 위해 애쓰고, 바란다면 오히려 아픈 건 나였다. 모든 일이 그렇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끔은 흐르는 강물처럼 사는 지혜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좁은 길이 나오면 얕고 빠르게도 가보고, 넓은 길에선 깊고 고요하게 흐를 줄도 알며, 새로운 물길을 만나면 합쳐지기도 하고, 길이 갈라지면 헤어지기도 한다. 인생도, 여행도 그냥 그렇게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가 보고 싶다.


2020년은 나에게 터닝포인트가 될 해다. 올해가 지날 때쯤에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하고, 그로 인해 나의 삶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여행은 나에게 큰 의미가 있고, 앞으로 흘러갈 강물이 되고자 시작하는 첫 흐름이었다. 단순히 보고 즐기는 여행 그 이상이었다. 그렇게 나는 이탈리아에 깊게 몰입하고 있었다.


돌아가는 길은 정말 아무런 별 탈 없이 돌아왔다. 한국은 다소 쌀쌀했고, 익숙한 사람들과 익숙한 글자들이 눈에 보였다. 가장 좋았던 것은 이제 더 이상 영어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아주 잠깐 동안은 어색하기도 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다음 여행을 꿈꾸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한국에 오자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국을 강타하고, 곧 전 세계를 뒤집어 놓았다. 그중에서도 나에게 소중한 의미가 담긴 이탈리아가 코로나의 가장 큰 피해국 중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흘러서 몇 달이 지나고, 고난의 연속이 이어졌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우리의 삶은 달라졌다. 하루에만 확진자 수가 3만 명이 넘기도 했다. 어쩌면 마스크 없는 이탈리아를 다시 볼 수 있을지 확신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나의 기억 속에 장면화 되어있는 이탈리아를 꺼내어 몇 장의 사진과 글로 남겨서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들을 꺼내어 보고 싶었다. 어쩌면 다시는 보지 못할 순간들일지도 모르는 장면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이전 12화 #12 베네치아 - 급할수록 돌아갈 수 없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