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출산 자체는 괜찮았다.
운이 좋게도 아기의 위치나 크기, 상태 등이 다 괜찮아서 자연분만과 제왕절개 모두 선택이 가능했다. 아기를 뱃속에 품고 있는 건 내게 힘들지만 즐거운 일이었기에 나올 때까지 함께 하고 싶었다.
하지만 외부 상황이 너무 번잡했다. 우선 이사가 코앞이었다. 예정일 또는 그보다 늦게 아기가 나온다면 핏덩이를 데리고 이사를 해야 했다. 이사를 가지 않는 것도 고려했지만 아기에게는 그 집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소중한 신혼집이었지만 수압이 약하고 녹물이 심해서 아기에게는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보다도 전에 남편이 커리어상 중요하게 치러야 하는 시험이 있었다. 이래저래 변수가 많은 상황에서 출산까지 변수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제왕절개를 선택했고 이왕 날이 잡힌 거 그전까지 먹고 싶은 거 다 먹자 이러면서 가계 앵겔지수를 마구 높였다.
양수가 수술일 전에 터지면 낭패였지만 아기도 그다지 빨리 나오고 싶지는 않았던지 수술일까지 큰 진통은 없었다. 병원에 도착해 옷을 갈아입고 수술을 위해 수액을 연결할 때도 별 생각이 없었다. 긴장하고 떨리기 시작했던 건 남편과 헤어져 수술실로 들어가 수술대에 누웠을 때였다.
그때부터는 '드디어 임신의 마지막 장, 출산이 코앞이구나.' 싶어서 좀 벅차고 좀 긴장되었던 것 같다. 생소한 수술실의 냄새와 소리, 배에서 느껴지는 압박감 등이 나를 두렵게 했지만 아기를 생각하며 꾹 참았다.
입술을 깨물고 있자니 어느 순간 우렁찬 소리가 들렸다.
정신이 없는 내 볼에 따뜻한 아기의 볼이 닿았다. 이 순간을 많이 상상하며 할 말을 준비했는데 괜시리 눈물이 나 "안녕?"한 게 다였다. 가까스로 진정시키고 나서 간호사 선생님께 물었다. "선생님, 아기 누구 닮았어요?"
간호사 선생님은 싱긋 웃으며 아무 말도 없이 나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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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하며 당황했지만 후처치를 위해 재워주셔서 나는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었다.
나중에 들으니 엄마는 아닌 것 같은데 아빠 얼굴을 못 본 상태라 말을 아끼셨다 한다. 마취가 깨어난 직후에 "아빠 판박이더라구요!"하고 호탕하게 웃어주셨다.
병실로 올라와서도 무통주사와 페인버스터의 합작으로 생각했던 것보다는 살 만했다. 제왕절개는 회복이 빠르려면 조금씩이라도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 생각나 누운 상태로 운동을 했다. 가족, 친구들한테 '나 아기 낳았다!'하며 연락을 돌리고 축하를 받으며 신이 나버리기도 했다. 남편이 면회에 가서 찍어온 사진을 보며 "여보랑 똑같아."하고 깔깔대다가 피곤에 못 이겨 잠에 빠져들었다.
새벽에 눈을 떴는데 몸이 덜덜 떨렸다. 출산의 고통은 이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