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사실을 안 날 눈물을 줄줄 흘리며 두려워했던 게 무색하게 다음 날부터 조금씩 들뜨기 시작했다. 잠시 억눌려 있었던 기쁨과 설렘이 그제야 고개를 살며시 들었다.
병원에서 조그마한 아기집을 목격하고 피검사 수치상 임신임을 확인받았을 때는 신이 나버렸다. 남편이랑 둘이서 아기 예정일에는 봄이 온다는 둥, 아들일지 딸일지 궁금하다는 둥, 태명을 뭐로 해야 한다는 둥 온갖 설레발을 쳐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의 기쁨과 설렘이 지속되어 임신 기간의 나는 행복했다. 그게 얼굴에 드러날 정도였던지 주변 사람들이 좋아 보인다고 할 정도였다.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비 오는 날 길에서 풍기는 강아지 소변 냄새에 웩웩거리고 입덧이 좀 가라앉으니 속 쓰림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하지만 힘들어도 뱃속에서 존재감이 점점 커지는 아기를 생각하면 다 견딜 수 있었다.
정말 힘들던 어느 날 밤에는 잠을 못 이룬 채 남편을 붙들고 "이건 정말 내가 당신과 아기를 사랑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일이다!"라고 소리 지르기도 했지만 그것마저도 아기 태동 한 번에 참을 수 있는 일이 되었다.
아기를 생각해서일까 나의 예민함과 모난 구석도 완만하게 다듬어졌다. 원래 무슨 일이 벌어지면 나는 불안해하고 남편은 느긋한 편인데 임신 후에는 그 반대로 생각하는 게 우스웠다.(남편은 갑자기 세상 온갖 문제를 가져와 아기의 삶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여보 기후 변화는 어쩌지?"라며)
"다 잘 될 거야. 괜찮아."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둥글게 부풀어 오른 배를 쓰다듬으며 습관처럼 말하곤 했었다. 내 생애를 샅샅이 돌이켜보아도 몇 없는 안정되고 평온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출산을 기점으로 나는 불안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