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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력하는 행아 Aug 20. 2024

엄마가 되었다.

8. 조리원 퇴소 후에는 어땠나요?

  조리원에 있을 때 나는 예정에 없었던 완모(완전 모유수유)의 꿈을 꾸었었다. 모유가 영양가가 풍부하다고 하고 아기도 잘 물어주고 마침 양도 충분한 것 같으니 한 번 해볼까하는 욕심과 나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만심이 슬며시 함께 고개를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퇴소를 앞두고 그간 조리원에서 상냥한 태도와 현란한 손놀림으로 내 가슴을 책임져주셨던 모유 실장님께 이러한 포부를 털어놓았다.


  실장님은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유, 산모님 가슴 모양이나 유선 발달, 유축량까지 다 좋아요.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요."

   상냥한 응원에 더욱 의기양양해지려는 찰나 뒷말이 이어졌다.

  "근데 조건이 충분해도 쉽지 않을 수 있어요. 나간 직후 제일 힘들 텐데 그때 힘내서 잘 버티세요."


'응? 가능하다는 건가? 어렵다는 건가? 가능한 거겠지?'

  어떤 뜻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때는 그저 자신감에 차 좋은 쪽으로만 해석했었다.

  그리고 조리원울 퇴소한 후 일주일만에 나는 무슨 의미인지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퇴소 후 제일 힘든 건 수면 부족이었다. 조리원에서 엄청난 호사를 누리면서 편히 지냈다는 걸 나오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신생아는 위가 작아 1시간 내지 1시간 반, 길어봤자 최대 2시간마다 배가 고프다고 운다. '처음 친구한테 이 얘기를 들었을 때는 2시간마다 일어나서 밥 주면 되겠네. 좀 피곤하겠지만 2시간씩 끊어서 자면 되지.'라고 아주 멍청한 생각을 했었다.

  그 2시간 안에는 아기를 먹이는 것과 트림시키는 것, 재우는 것 등이 모두 포함된다. 고로 내가 잘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1시간. 그마저도 안되는 경우도 많다. 잘 먹는 아기면 10분이면 충분하지만 우리 애처럼 먹다가 자꾸 잔다면 깨우고 먹이고 깨우고 먹이고를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나하게 취한 아저씨처럼 널부러진 딸에게 가슴을 들이밀며 "슨생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슨생님!"이라고 외쳐야 했다.

  그리고 와, 트림. 신생아는 트림을 안 시키면 게워내는 경우도 많고 눕혔다가 토사물 때문에 호흡이 곤란해질 수도 있어서 나는 늘 공포심에 시달리며 트림에 집착했다. 그런데 신생아는 정말 정말 정말 트림을 잘 안한다. 몸을 세워야 축적된 가스가 올라오는데 먹기만 하면 잠에 취해 힘을 다 풀어버려서 아무리 등을 두드리고 쓸어도 트림을 안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때는 어깨에 얼굴을 얹게 해놓고 30분 동안 도닥이곤 했다. 진짜 너무 졸린데 따끈한 아기 체온이 더해지면 정말 환장하게 피곤해진다. 실제로 아기 안고서 깜박 졸다가 화들짝 놀라 뺨을 때리며 정신을 차리곤 했다.

  그리고 먹다가 잠이 들어서인지 안긴 상태로 잠이 들어서인지 한동안은 침대에 눕히기만 하면 바로 깨어나 뒤집어지게 우는 통에 안았다 눕혔다 안았다 눕혔다를 무한 반복해야 했다. 어떻게든 눕혀 재우려는 엄마와 안겨 자려는 아기의 고독한 싸움이 몇 날 동안 이어졌다. 나는 이때쯤 잠을 안 재우는 게 왜 고문에 속하는지를 뼈저리게 이해할 수 있었다.

  부모님이 함께 계셨지만 두 분 다 아침에 출근을 하셔야 했고 그게 아니더라도 차마 나이 든 분들께 나도 힘든 짓을 해달라 부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매일 창밖에 동이 터오는 걸 멍하니 지켜보며 산후 관리사가 오는 시간까지 버티다가 장렬히 전사하곤 했다.

  이렇게 수면부족으로 몇 주 살았더니 모유 실장님의 염려대로 충분했던 유량이 준 게 느껴졌다. 친정 엄마와 산후 관리사가 모두 우려를 표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모유만 고집할 수 없었다. 모유와 분유의 비중이 이렇게 조금씩 주객전도되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모유는 에피타이저 수준으로 전락해 있었다.


  완모의 길은 이렇게 요원해졌다. 엄마의 아쉬움과 상관없이 우리 아기는 석박사들의 연구물을 먹고 무럭무럭 자랐고, 불면증이 좀 있었던 나는 머리만 대면, 아니 눈만 감으면 꿈나라로 직행할 수 있는 새로운 능력을 얻었다. 그렇게 신생아의 밤이 조금씩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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