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위험한 생각을 담은 책.
소설 <편지>는 잘못된 선택을 한 형 때문에 불행한 인생을 사는 동생의 이야기입니다. <편지>의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읽기 거북한 불편한 이야기를 매우 편리한 방법으로 써 내려갑니다. 바로 감정에 기대서 말이죠.
작가는 먼저 독자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 이 소설의 내용들을 극단적으로 다룹니다. 나오키의 형 츠요기가 어떻게 살인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프롤로그부터 이야기는 극단적입니다. 변변한 학력이 없는 츠요시는 사회에서 육체노동을 하며 어린동생 나오키를 홀로 부양하고 있습니다. 이삿짐센터에서 요령 없이 무리하게 일하던 츠요시는 얼마 안 가 허리가 망가지고 육체노동마저 못하게 되죠. 자기와 달리 머리가 좋은 나오키를 대학에 꼭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츠요시에게 이 경제적 어려움은 매우 치명적이었습니다.
그렇게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츠요시는 결국 이삿짐센터의 동료에게 들은 노파 혼자 사는 집을 도둑질하기로 합니다. 빈 집인 걸 확인하고 돈이 될 만한 걸 챙긴 후 그 집에서 나가려 할 때 그의 눈에 나오키가 좋아하는 톈진군밤 봉지가 보입니다. 츠요시가 톈진군밤 봉지 때문에 고민하고 있을 때 집에 없다고 생각한 노파가 방문을 열고 나타나고 츠요시와 실랑이를 벌입니다. 츠요시는 이미 허리가 망가져 노파를 쉽게 제압하지 못하고 오히려 노파에게 제압당할 처지에 놓이죠. 그 때 정말 우연히 츠요시의 손에 드라이버가 잡히게 되고 츠요시는 자기도 모르게 노파를 죽이게 됩니다. 집을 나가기 전 우연히 보게 된 톈진군밤 봉지(심지어 나오키는 이 톈진군밤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츠요시의 착각이었죠), 집에 없었어야 할 시간에 우연히 있었던 노파, 츠요시의 망가진 허리, 실랑이할 때 우연히 옆에 있었던 드라이버 등 우연과 우연이 겹치고 겹쳐 츠요시는 결코 해서는 안 될 살인을 하게 됩니다.
츠요시의 이 비극적인 살인은 츠요시의 동생 나오키의 인생을 불행의 수렁으로 밀어 넣습니다. 처음 나오키는 형 츠요시가 살인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합니다. 나오키는 교도소에서 처음 만난 형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나오키는 사회에서 살인범의 가족이 어떤 취급을 받는 지를 곧 알게 됩니다. 임대빌라 주인은 나오키에게 방을 빼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유는 밀린 방세였지만 사실은 살인범의 가족이 같은 임대빌라에 사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이죠. 학교에서 우등생이었던 나오키는 이제 살인자의 동생으로 불편한 존재가 되었고 자퇴를 종용받게 됩니다.
사회에 나온 나오키는 담임선생님의 도움으로 선생님 지인의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게 됩니다. 레스토랑 사장은 일에 열심이고 성실한 나오키를 좋아했고, 단골손님들도 일을 똑부러지게 하는 나오키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나오키의 전 학교의 친구가 우연히 레스토랑에서 나오키의 형 이야기를 합니다. 그 순간 나오키는 성실한 알바생에서 살인자의 동생이 됩니다. 단골손님들은 예전처럼 나오키와 친근하게 이야기를 하지 않고, 레스토랑 사장은 나오키가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기를 바랍니다. 나오키가 사회에서 처음 접한 자기의 잘못이 아닌 불행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오키는 범죄자의 가족이 사회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 지를 계속해서 뼈저리게 깨닫게 됩니다. 자기 때문에 살인까지 한 형을 처음에는 불쌍하게 생각했지만, 이제는 형의 그 실수 때문에 자기가 불행을 겪게 되자 서서히 교도소에 있는 형을 멀리하게 됩니다.
이 레스토랑의 불행을 시작으로 교도소의 벚꽃마크가 찍힌 형의 편지는 낙인처럼 나오키를 따라다니며 그를 괴롭힙니다. 검정고시로 들어간 대학교에서 마음이 통하는 절친과 밴드활동을 시작하려 할 때, 정말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서 그녀와의 결혼을 결심할 때, 평범한 직장에서 성실하게 근무할 때마다 벚꽃마크의 편지는 나오키를 쫓아와 살인자의 동생이라는 평판 때문에 밴드활동을 그만두어야만 했고, 살인자의 동생이기에 사랑하는 여자와 헤어져야만 했고, 살인자의 동생이기에 직장에서는 한직으로 밀려나게 됩니다. 나오키가 형과의 관계를 끊기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벚꽃마크의 편지는 더 끈질기게 나오키의 삶에 파고 들어 나오키에게 불행을 줍니다.
아마도 다수의 독자들은 이 책을 맘 편히 읽지 못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작가가 이렇듯 주인공의 삶을 극단적으로 몰아가 독자들의 감정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죠. 주인공이 살인자의 동생이라는 원죄를 자기힘으로 극복하려 할 때마다 벚꽃마크의 편지는 마치 낙인처럼 쫓아와 주인공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반복해서 떨어뜨립니다. 이 이야기 구조는 그리스비극과 매우 유사한데, 원죄를 갖고 태어난 비극신화의 주인공은 자기 운명을 스스로 헤쳐나가지만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결국 원죄에 의해 파멸되고 맙니다. 독자들은 이런 극단적인 이야기를 읽고 감정이 충만해 질 수 밖에 없죠. 특히 주인공 나오키에게 심한 감정이입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작가는 이 감정의 소용돌이로 소설의 많은 문제점들을 매꾸려 합니다.
소설 중반 이후 나오키가 직장에서 한직으로 밀려날 때, 나오키 회사의 사장이 등장합니다. 이 사장 캐릭터는 마치 영화 <곡성>의 일광처럼 주인공이 가장 힘들어 할 때 힘을 빡 주며 등장하는데 당연히 독자들은 이 사장이 나오키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사장 캐릭터는 그냥 NPC 입니다. 주인공에게 '살인자의 동생이라는 원죄를 받아들이고 사회에서 받는 불행들을 당연하게 여겨라' 라는 주인공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말만 하고 퇴장하죠. 그 뒤에도 나오키의 아내와 딸이 살인자의 제수씨와 조카라는 이유로 동네 사람들에게 이지메를 당할 때 뜬금 없이 사장이 나오키 앞에 나타나서 위와 같은 말을 또 다시 하고 퇴장합니다.
사장은 이 소설에서 NPC이자 작가의 분신입니다. 주인공을 불행하게 만들긴 만들었는데 이야기의 끝을 어떻게든 내야 하니까 그냥 작가의 분신이 소설에 나타난 겁니다. 그리고 사회에서 범죄자의 가족은 당연히 불행해야 한다는 개소리를 하는 거죠.
나오키에게 심하게 이입한 감정을 진정하고 보면 이 이야기는 말이 안 되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벚꽃마크 편지가 그렇습니다. 소설에서 범죄자 가족의 낙인을 상징하는 벚꽃마크 편지는 우선 심각한 인권 침해입니다. 범죄자의 가족을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전근대의 연좌제도 아니고 범죄자의 죄를 범죄자의 가족들도 같이 짊어져야 한다고 당당하게 말하다뇨. 이 무슨 쌍팔년도 이야기입니까? 앞에도 말했지만 소설 자체가 매우 감정적이여서 독자들이 이 위험한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납득을 할 수도 있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었을 때 히가시노 게이고가 낭만적인 성격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 <편지>는 매우 염세적인 성격을 띄고 있어 도저히 같은 사람의 글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어찌어찌 끌고가 끝맺음을 하는 것을 보면 프로 작가로서의 역량은 있는 것 같지만, 이 <편지>의 위험한 생각과 내용은 그의 다른 작품들에 부정적 시선을 던지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