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내가 초등학교(실은 국민학교) 다닐 때는 가정환경 조사가 있었다. 가족과 재산 등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적어 내야 했던 걸로 기억한다. 가끔씩은 무언가 통계를 내려고 그랬는지 선생님이 교탁 앞에 서서 전체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고 손을 들게 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이야 기겁할 일이고, 그 때도 민감한 질문을 할 때는 아이들에게 모두 눈을 감으라고 하셨던 걸 보면 자칫 아이들 마음이 다칠 수도 있겠다는 걸 아셨을 게다. 지금도 그때 젊은 여자 선생님이 “정말 정말 미안한데 ‘나는 아빠가 안 계신다’ 하는 친구 조용히 손들어 줄래?” 했던 기억도 난다. 그럴 때면 여기저기서 실눈을 뜨고 누가 손을 드는지 살펴보는 애들도 있었다 (그걸 안다는 건 나도 실눈을 떴다는 얘기다…).
그때 가정환경 조사서나 선생님의 질문에 꼭 등장하는 내용이 있었다.
부모의 학력.
대체 그게 왜 필요했을까?
아마 초등학교 1학년 때였던 것 같다.
선생님이 나눠주신 가정환경 조사서를 집으로 가져가 엄마에게 드렸다. 다음날 엄마가 되돌려준 서류 중 아랫 편에 ‘부: 고졸, 모: 중졸’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때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아마도 고등학교까지 그렇게 늘 적었다. 내가 어린 시절 친구 부모님들의 평균 학력은 ‘고졸’이었기에, 엄마의 ‘중졸’ 학력도 40년대생이 살아왔을 힘든 시절을 생각하면 그다지 눈에 띄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일은 느닷없는 때 터졌다.
경찰간부후보생 시험에 합격하고 1년의 교육을 마친 나는 스물일곱의 나이에 경위 계급장을 달고 청와대 경내를 지키는 101경비단의 소대장으로 선발되었다. 근무지가 근무지인 만큼 신원조회가 엄격했다.
신원조회 과정에서 제출한 서류 중에 가족에 대해 묻는 내용이 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가정환경 조사서와 비슷한 양식이 있었다. 그런데 예전과 달랐던 것은, 부모님의 학력을 묻는 데 그치지 않고 어느 학교를 졸업했는지까지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부모님이 어느 학교를 졸업하셨는지 여쭤본 적이 없었다. 공중전화로 고향에 계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발 소식을 듣고 좋아하시는 엄마에게 신원조회에 대해 설명드린 후 “다른 건 내가 적으면 될 것 같은데, 근데 엄마가 어느 중학교 나오셨지?”
잠시 머뭇거리셨다. 그러고는 말씀하셨다.
“정확히 적어야 하는 거지? OO국민학교라고 적어라”
아차 싶었다. 속으로 당황했지만 얼른 “아 알았어, 그럼 아버지는?”하니
다시 한번 짧은 침묵 후 “…OO중학교”라고 말씀하셨다.
아마도 내가 어렸을 때는 혹시라도 아들이 괜한 일로 기죽을까 봐 학력을 부풀려(?) 말씀하셨을 게다. 그런데 장성한 아들이 좋은 자리에서 근무하게 되자 서류에 잘못된 정보를 썼다가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사실대로 말씀하신 것일 테고...
전화를 끊고 자책이 몰려왔다. 쓸데없는 걸 여쭤봤다.
중요하지도 않은 내용이었을 텐데. 괜히 여쭤봤다. 바보…
몇 년이 지났다. 나는 승진을 한 후 고향 바로 옆 도시의 경찰서에 지원해 부모님 댁에서 30분도 안 걸리는 곳에서 1년간 지내게 되었다. 주말이면 아내와 아이와 함께 부모님 댁에서 자고 오고 평일에도 보고 싶으면 언제든 차를 몰고 갔다. 그때가 그나마 효도했다고 생각되는 시기이다.
그러던 어느 날 누나가 나에게 불쑥 얘기했다.
“너 엄마 검정고시 준비하고 계신 거 알아?”
몰랐다. 엄마에게 여쭤봤다. 수줍게 인정하셨다. 당시 60대인 엄마는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고 계셨다.
내가 알게 된 다음부터는 나에게 수시로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영어를 특히 어려워하셨는데, 학원 선생님이 '모르면 3번을 찍으라'고 한다며 웃으셨다.
엄마가 시험을 치시던 날 나는 엄마를 시험장까지 모셔다 드렸다.
엄마가 교실에 들어가시고 운동장으로 나와 차 안에 앉는데 속에서 뜨거운 게 올라왔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혹시 그때 전화드린 날부터 줄곧 맘에 걸리셨던 건 아니었을까… 이렇게 검정고시를 통해서라도 당신의 어린 아들에게 말씀하셨던 학력을 진짜 학력으로 만들어야 그 마음이 편해지시는 건 아닐까…
엄마가 검정고시를 치르고 계시는 학교. 운동장에서 아들은 그렇게 속절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해 엄마는 중졸 검정고시에 당당히 합격하셨고 여세를 몰아 같은 해 고졸 검정고시까지 합격하셨다. 엄마에게 이왕 하시는 거 대학까지 가시라고 말씀드렸지만 젊은 애들과 학교까지 함께 다니는 건 못내 부담스러우셨는지 거기서 멈추셨다.
어제는 한국에 계신 엄마와 오랜만에 30분이나 전화기를 붙들고 수다를 떨었다. 이제 70대 중반을 훌쩍 넘긴 엄마. 만 나이로 바뀌면서 두 살이 젊어지시는 것 같아 난 그게 너무 다행이고 좋다.
엄마 사랑해요. 그때 엄마의 도전, 너무 멋있었고 지금도 늘 자랑스러워요.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