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오늘은 죽지 마> 1화
지아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 나무를 그리면 잎이 흔들리는 느낌까지 살았고, 개를 그리면 눈빛이 살아 움직였다. 마치 그녀의 손끝에서 생명이 스며들 듯, 세상의 모습이 그대로 옮겨졌다. 특별히 애쓰지 않아도 자연과 동물, 모든 것이 그녀의 손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두 딸 중 막내인 지아가 첫째와 다르게 뭔가 특별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저 '지아는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라고 생각하며 지켜볼 뿐, 더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1990년, 지아가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바른생활> 교과서를 읽고, 그림일기를 써보라고 했다. 영희와 철수가 바둑이와 놀고 있는 이야기였다. 지아는 책 속 삽화를 아무렇지 않게 공책에 그대로 옮겨 그렸다.
“와, 이것 봐! 책에 나온 바둑이랑 완전 똑같아!”
지아의 짝꿍이 흥분해 외쳤다.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순식간에 지아의 공책을 둘러싸며 감탄을 터뜨렸다. 교실이 소란스러워지자 담임 선생님도 지아의 노트를 집어 들었다. 선생님은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정말 훌륭하구나.”
그날 이후, 지아의 재능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교내 미술 대회에서 상을 휩쓸었고, 더 나아가 송파구, 서울시 대회에서도 학교 대표로 출전해 매번 입상했다. 월요일 아침, 전교생은 각 교실의 텔레비전으로 지아가 교장 선생님에게 상을 받는 장면을 지켜봤다. 학교 사람들은 지아의 이름까지는 몰라도 그 얼굴은 기억하게 됐다.
“지아야, 넌 어떻게 이렇게 그림을 잘 그려?”
짝꿍의 질문에 지아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냥 보이는 대로 그리면 되지.”
지아는 연필을 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왜 다른 사람들은 이런 일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그녀에게는 눈으로 본 것을 손으로 그대로 옮기는 일이 너무 당연했다. 타고난 재능이란 종종 그 소유자조차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설명하지 못하는 법이다. 지아도 자신의 재능을 설명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며 지아는 미술뿐 아니라 과학, 음악, 체육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그녀는 매년 반장을 맡았고, 상을 받는 일이 마치 일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지아를 보며 '모든 걸 다 가진 아이라고 부르곤 했다.
그러나 지아에게는 그 모든 재능보다 중요한 한 가지가 있었다. 그녀는 그저 특별해지고 싶었다. 반짝이는 존재로, 남들과 다른, 세상에 빛을 내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5학년이 되었을 때, 담임 선생님이 장래 희망을 물었다.
“지아야, 넌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지아는 잠시 머뭇거렸다. 화가? 성악가? 선생님? 여러 직업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나 그녀의 대답은 단순하고 분명했다.
“저는 특별해지고 싶어요.”
지아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잘하는지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세상에서 빛나는 특별한 존재로 기억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