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의 독서
나단이를 낳고 한동안 책을 읽지 않았다.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고 나면 허리는 아프고 눈은 침침했다. 아이를 재우고 나서 그냥 자려니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책을 펼쳐보았지만 글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아 덮어버렸다. 대신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보다가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아침이 되면 나단이가 나를 깨웠다. 하루가 막 시작되었건만, 나는 이미 피곤했다. 아이를 쫓아다니고, 세끼 밥을 챙기고, 어질러진 장난감을 치우는 지리멸렬한 일상이 반복되었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다. 나단이가 “엄마, 엄마”라고 두 번만 불러도 나도 모르게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몸이 지칠수록 의욕도 사라졌다. 스스로가 쓸모없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마흔 살이 되었을 때,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공한 사람들이 어떻게 해냈는지 찾아봤다. 사람마다 성공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독서’였다. 돌아보니 나도 힘들 때마다 책에서 답을 구하곤 했다. 고3 수험 기간 내 가방에는 이문열의 《삼국지》와 이우혁의 《퇴마록》이 들어있었다. "문제집 10장만 풀면 삼국지 한 장을 읽자" 목표를 달성한 나 자신에게 주는 작은 보상이었다. 장수와 퇴마사가 불리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장면을 읽으며, 고된 입시 생활을 견뎌낼 수 있었다.
이십 대 후반, 직장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주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무릅쓰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 사람에 관한 책을 읽으며 용기를 얻었다. 조숙영의 《뉴욕에서 별을 쏘다》도 그중 하나였다. 마음이 답답하고 앞이 막막할 때면 습관처럼 서점에 갔다.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을 먼저 경험하고 슬기롭게 극복한 사람들이 쓴 책을 읽었다. 운이 좋으면 당장 해볼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았다. 때로는 시간이 지나 예전에 읽은 책의 내용이 떠오르며 뒤늦게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이번에도 책에서 답을 찾기로 했다. 서미숙의《50대에 도전해서 부자 되는 법》을 읽었다. 그녀는 25년 동안 미술 학원을 운영했지만, 경영이 어려워지자 문을 닫게 되었다. 생계를 위해 50세에 찜질방 매점에서 3년 동안 일했다. 그러던 중, 딸이 아나운서 면접을 갔다가 '없는 집 자식'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돌아와 울었다. 그 모습을 보고 부자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꿈꾸는 서여사’라는 닉네임으로 온라인에서 식비 절약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1년 6개월 만에 콘텐츠 사업, 자기 계발 강의, 부동산 투자 등을 통해 25억 원의 자산을 모았다. 50대인 그녀도 이렇게 해냈으니, 40대인 나도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책을 읽었다. 가계부를 작성하고 예산을 세웠다. 식비를 이전의 절반으로 줄이고 저축을 시작했다. ETF와 주식도 구매했다. 그 과정을 매일 블로그에 기록했다. 처음에는 돈이 너무 천천히 모여 답답했지만, 석 달 정도 지나자 조금씩 금액이 불어났다. 무엇보다 매일 계획한 일에 집중하다 보니 걱정하는 시간이 줄었다.
그다음에 읽은 책은, 꿈꾸는 서여사가 멘토로 소개한 원효정의《한번 해보는 거지 뭐》였다. 원효정은 20대 초반에 결혼해 남편과 함께 중식당을 운영하며 세 아이를 키웠다. 그녀는 자식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돈을 모으고 투자하는 과정을 블로그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부자마녀'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며, 엄마들의 자기 계발을 돕는 커뮤니티를 운영한다. 재테크, 독서, 글쓰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고소득을 창출하고 있다. 나는 평범한 여성이 자기 경험과 지식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이를 사업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에 감명받았다.
나는 결혼 후 미국에서 전업주부로 살았다. 5년쯤 지나자, 남편 월급으로 빠듯하게 살아가는 현실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이러다 평생 이렇게 살겠구나' 어느 날, 지인이 새로 산 명품 가방을 들고 왔다. 그날 저녁, 남편에게 "당신은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왜 우리는 이렇게밖에 못살아?"라고 따지듯 물었다. 나 자신은 변하지 않으면서 상황이 저절로 좋아지길 바라고 있었다.
그때 경제적, 정신적으로 어려웠던 여성이 스스로 변화를 이끌어낸 이야기를 읽었다. 나 자신을 돌아봤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쉽게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일단 작가가 제시한 방법을 따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집중할 수 있는 일이 생기니 에너지가 차올랐다.
2022년부터 꾸준히 책을 읽으며 세 가지 변화를 경험했다.
첫째, 문제 해결 능력이 높아졌다. 책에서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해결한 여러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그중에서 어떤 방법이 나에게 맞을지 고민해 보고 몇 가지를 직접 해보았다. 효과가 있으면 왜 효과가 있었는지, 효과가 없으면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이런 과정을 반복할수록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점점 나아진다.
둘째, 삶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자기계발서를 쓴 작가들은 대개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에 감사하는 자세가 삶의 기본이다. 자신과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생각과 행동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하루가 뜻대로 풀리지 않는 날에는 김혜남 작가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을 읽는다. 파킨슨병을 앓으면서도 감사함을 잃지 않는 그녀를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셋째, 시야가 넓어지며 다양한 사고를 하게 되었다. 독서하기 전에는 내가 처한 상황에 갇혀 있었다. 미국의 작은 도시에서 다섯 살 아들을 키우는 전업주부. 생활비는 빠듯하고, 취업하려니 영어 실력도 부족하고 경력도 애매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생각에 무력감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책을 읽고 온라인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으니 다양한 아이디어를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또한 경제 관련 책을 읽으며,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은 여러 분야의 서로 다른 관점에서 쓴 책들을 읽으며 사고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책은 나에게 다시 꿈을 꾸게 해주었다. 나폴레옹 힐은 《생각하라 그리고 부자가 되어라》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없다. 부는 나의 가치가 커지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돈의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먼저 생각하고, 그려보라. 돈은 그저 가치를 측정하고 교환을 쉽게 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이제는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보다 '어떻게 하면 나의 가치를 높일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한 가지 주제를 깊이 생각하고, 그에 대한 내 생각을 글로 적어 보는 과정에서 나 자신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사랑, 감사, 신뢰, 성실, 열정, 끈기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들이다. 나는 이 가치들을 내 삶과 글로 표현하고, 널리 알리고 싶다. 삶을 좋은 태도로 살아간다면, 죽는 순간에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초점을 바꾸니 목표와 행동도 자연스럽게 달라졌다. 내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 일, 그리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나는 나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믿는다. 내가 꿈꾸는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 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불안은 희망으로, 좌절은 믿음으로 변했다. 독서를 통해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 꿈은 가장 먼저 나 자신을 변화시켰고, 내 주변도 바꾸었으며,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