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프로비던스로 이사 왔어요_Ellie's Cafe
크리스마스 이틀 전,
매주 외국인 엄마, 아빠들에게 무료로 영어를 가르쳐주시는 제인 선생님네 갔다,
제인은 72 세의 은퇴한 학교 선생님이다.
평소에는 영어를 배우러 가지만, 이번에는 아이들도 데리고 가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다.
각자 가지고 온 디저트를 나누어 먹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캐럴을 불렀다.
내가 처음 제인 선생님을 만난 것은 임신을 했을 때였다. 아이가 6살이 되었으니 어느새 7년이 다 되어간다.
제인과 그의 남편 더글라스는 처음 만났을 때나 지금이나 한결 같이 온화하고 친절하다.
크리스마스 파티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어 배가 출출했다.
일본인 엄마들 두 명과 아이들 넷을 데리고 프로비던스 다운타운에 있는 Ellie's에 갔다.
디저트가 맛있고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어서 좋아하는 곳이지만, 다운타운에는 주차 자리를 찾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자주 오기는 힘들다.
이번에도 카페 주변을 한 바퀴 돌았는데도 주차 자리가 없어서 하마터면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갈 뻔했다.
다행히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주차 자리가 있어서 각자 차를 세우고 카페에 모이는 데 성공했다.
엘리스는 Providence Performing Art Center 맞은편에 있다.
실내 장식이 매우 아름답다는데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극장에서 공연이 있는 날이면 카페는 극장에 공연을 보기 전에 요기를 하기 위해 온사람들로 가득 찬다.
다행히 목요일이라 그런지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자리가 생겼다.
엘리스에서는 페스트리와 마카롱, 샌드위치, 프렌치 어니언 수프, 간단한 식사류 등을 판다.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껍질이 바삭한 크루아상이다.
이번에는 오후라서 좀 달달한 것이 당겨서 아몬드 크루아상과 아이스 라테를 주문했다.
아몬드 크루아상 안에는 아몬드 페이스트가 들어있는데, 다른 곳에서 파는 아몬드 크루아상은 아몬드 페이스트가 좀 퍽퍽하고 인공 아몬드 향이 많이 나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기 아몬드 크루아상은 아몬드 버터가 녹아있는 것처럼 부드럽고 가볍다.
겉에는 곰보빵에 붙어있는 달달한 딱지들처럼 바삭하고 달콤한 아몬드 크럼 같은 것이 붙어있다.
나의 6살 아들인 나단이와 친구의 4살 난 딸, 사쿠라는 처음 만났는데도 둘이 잘 놀았다.
마카롱도 먹고, 엄마들이 주문한 빵도 나눠먹고, 카페에 아이들을 위해서 마련해 놓은 보드게임도 하면서 놀았다. 나단이는 눈동자가 유난히 반짝거리는 사쿠라가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다.
자꾸만 사쿠라랑 놀이터에 가고 싶다며 졸랐다. 다행히 다른 날보다 날이 조금 따뜻해졌다.
결국 근처 놀이터에서 만나기로 하고 엘리스 카페를 나가려고 짐을 챙겼다.
그런데 막 나가려던 계산대 옆에 작은 바 자리에 혼자 앉아 있는 키가 아담한 동양 여자가 눈에 띄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녀가 오른쪽 어깨에 메고 있던 핑크색 상자와 도넛이 그려져 있는 에코백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내가 하와이에 갔을 때 너무나 맛있게 먹었던, Leonard's Bakery의 에코백!
하와이 호놀룰루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여기 도넛을 알 것이다.
남편이랑 렌트한 빨간 캠리를 몰고 찾아간 베이커리 앞의 주차장에는 한국 신혼부부들을 비롯해서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을 태운 차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곳의 도넛은 우리나라 팥 도넛처럼 생긴 통통하게 튀긴 도넛 안에 여러 가지 맛의 크림이 들어있고, 겉에는 설탕이 살짝 물었는데, 한 박스만 사가지고 온 것이 아쉬울 만큼 금방 먹어버렸었다.
이후로도 종종 그 도넛이 생각이 난다.
그런데 그 도넛 집 가방을 든 사람이 내 눈앞에 앉아 있으니, 나는 말을 걸지 않을 수가 없었다.
"I love the donuts! Where did you get it / 어머! 나 그 도넛 엄청 좋아하는데, 그 가방 어디서 샀어요?"
"Oh, it's from Hawaii! / 아, 이거 하와이에서 샀어요! "
그럴 줄 알았다...... 프로비던스에 그 도넛 집이 있을 리가 없지.
그녀는 동그랗고 앳된 얼굴에 동그란 검은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좋은 시간 보내라며,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웬일로 나단이 가 나를 보며 "엄마!"하고 불렀다.
평소에 나단이는 나를 '마미!'라고 부르지 '엄마!'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러자 그녀가 엄청나게 반가운 얼굴로 나를 돌아보며 "한국분이세요??"라고 물었다.
그때부터 흥분의 도가니!
"네! 한국분이었어요!!??"
"네, 저 어제 여기로 이사 왔어요!"
"진짜요? 우리 담에 다시 만나요. 연락처 주실래요?"
"네!"
친구, 사나에가 두 딸과 함께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순식간에 연락처를 주고받고 헤어졌다.
그날 저녁 나는 그녀에게 '다음 주 목요일에 엘리스에서 커피 한 잔 어떠세요?'라고 문자를 보냈다.
일주일 후, 목요일 아침에 나와 G(그녀의 사생활을 위해 G라고 부른다)는 엘리스 카페에서 다시 만났다.
한국인이라는 것 이외에는 서로 아는 것이 없는 사이라 무슨 말을 해야 하나 하는 걱정이 들 법도 한데, 그녀에 대해 알고 싶다는 설렘이 앞섰다.
개인적인 이야기라 다 적을 수는 없지만, G는 나와 공통점도 많고 다른 점도 많았다.
재미있는 것은 나와 친구들이 카페에 가면 카페에서 일하는 분들이나, 처음 보는 사람과도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하는 나를 보고 친구들이 신기해하는데, G는 나보다 한수 위였다.
카페 직원과 오늘의 디저트는 물론이고 아직 계획 중인 디저트에 대해서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대방의 사소한 것 하나도 칭찬을 해주고, 상대가 말을 하면 크게 웃어주었다.
엘리스에는 카페가 처음 오픈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일하고 계시는 중년의 여자 직원분이 계신다.
볼 때마다 자신의 가게처럼 일하는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저 사람이 사장인가?"하고 착각한 적도 있었다.
나는 이제까지 그 직원분과 인사를 나누기는 했지만, 그녀의 이름은 몰랐다.
그런데 G는 여기 온 지 두 번째 만에 그녀의 이름에서부터, 이 카페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일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 답례로 직원분은 카페가 생기기 아주 오래전에 이곳이 파머시(약국)이었고, 그곳에서 그녀의 아버지가 일했다는 가족 역사까지 말해주었다.
G는 프로비던스에 있는 유명한 미술대학인 리즈디 대학에서 공부했다고 했다.
그동안 시애틀, 뉴욕, 보스턴에서 살았는데, 그 어떤 곳도 이곳 프로비던스에서 처럼 모르는 사람과 편하게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없었다고 했다.
혼자 왔다가도 인생에서 가장 친한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곳.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
그녀 외에도 이곳에서 학업이나 일 때문에 이곳에 2년 정도 있다가 다른 주로 이사를 한 친구도, 단지 이곳의 친구들을 보기 위해서 일 년에 한두 번씩 프로비던스로 돌아온다.
G 역시 이곳에서의 추억과 따뜻한 사람들에 대한 좋은 기억 때문에 가족들이 있는 시애틀을 떠나 이곳에서 홀로서기를 시작했다고 했다. 더욱이 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큰 상실감을 회복하기 위해 이곳을 선택했다는 것은 이곳에서의 시간이 그녀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G의 첫 자취생활을 응원한다.
가능하다면 그녀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
그리고 그녀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 떠올랐다.
미셀 조너의 <H마트에서 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