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동그라미니깐. 떼굴떼굴 굴러가.
설 연휴 모두가 잠든 캄캄한 밤. 올해 5살이 된 조카 진욱이가 불빛을 발견하고 내방으로 쪼르륵 달려온다. 진욱이를 안고 함께 거울을 보며 서로의 닮은 모습을 찾는다.
은영 : 우리 귀요미 진욱 씨 사랑해요! 뽀뽀.
아이는 좋은 건지 쑥스러운 건지 혀를 내밀고 몸을 뒤로 젖힌 채 까르륵 웃는다.
은영 : 진욱아 너는 사랑이 뭔지 알아?
진욱 : 아니 몰라.
은영 : 진욱이 엄마 좋지?
진욱 : 응!
은영 : 진욱이가 엄마를 좋아하는 감정이 엄청 커진 게 사랑이야.
그러자 아이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활짝 웃는다.
은영 : 진욱이한테 사랑은 어떤 느낌이야?
진욱 : 어... 어... 동그라미!
(진욱인 그래서, 그러나 같은 접속사 활용 대신 어어어...라는 말을 즐겨 쓴다)
어라? 별 기대 없이 물어봤는데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 나왔다. 왠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좋은 느낌이다. 아이의 집중력 3분을 활용하기 위해 스피드를 높였다.
은영 : 왜 사랑이 동그라미야?
진욱 : 어어... 떼굴떼굴 굴러가니깐.
흥미진진하다. 손에 땀이 날 지경이다. 갑자기 현기증이 난다.
은영 : 왜 사랑이 떼굴떼굴 굴러가는 느낌이야?
진욱 : 어 어 어... 사랑은 동그라미니깐. 어... 어... 떼굴떼굴 굴러가.
이런!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기분이 드는 건 기분 탓일까? 알쏭달쏭 퀴즈를 내듯 대답하는 아이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을 때였다. 그 순간 어김없이 내 안의 그분이 나타나 숨겨진 뜻을 풀이해 준다.
5살 아이가 느끼는 사랑은 동그라미.
순수한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열어
동그라미 사랑을 꺼내어 굴린다.
얘야. 동그라미 사랑은 지치지도 않고 멈추지도 않는단다. 밤이고 낮이고 마음의 문을 열고 떼굴떼굴 굴러간다. 대가 없이 준 작은 사랑과 친절은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속에 굴러 다닌다. 한 사람에서 출발한 작은 동그라미 사랑은 둥근 세상을 누빈다. 그렇게 한 처음 시작된 작은 사랑의 동그라미는 눈덩이처럼 커져 더 큰 동그라미가 되어 제 주인에게로 되돌아온다. 동그라미를 그리기 시작하면 처음과 끝은 반드시 만난단다. 그래서 지구도 둥글고 사랑도 둥글다.
순수한 아이들의 사랑은 상처를 입을까 봐 마음의 문을 꼭꼭 걸어 닫고 상대의 마음만 확인하려 드는 겁쟁이 어른들보다 훨씬 용기가 있단다. 아이들은 연애 글을 읽지 않아도, 밀당의 기술을 익히지 않아도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가장 잘 알고 있다. 순수한 사랑인 신의 본성과 가장 가까운 존재가 바로 순수한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얘야. 아이가 사는 집안을 살펴보아라.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는 아이가 행여 다칠까 봐 집안 곳곳 뾰족한 모서리에 둥근 보호막을 씌워 놓는단다. 아이가 마음껏 뛰어놀아도 다치지 않도록 말이다. 이와 같이 뾰족뾰족 모가 난 인간의 마음에 신의 순수한 사랑을 씌우면 모두가 다치지 않고 어울려서 행복할 수 있단다.
사랑은 동그라미. 언제나 옳다.
사람은 순수한 사랑으로 하나 되기 때문이란다.
역시 순수한 아이와 사랑의 신은 확실히 연애의 고수였다. 혹시 또 다른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5살 아이의 어깨를 부여잡고 물었다.
은영 : 동그라미 말고 다른 느낌 또 있어?
진욱 : 어... 어... 공동 티나노따우루뜨!
오! 진보다. 뭔가 스케일이 다르다. 설레는 마음을 간신히 추스르고 계속해서 물었다.
은영 : 어머! 진욱아. 사랑이 왜 공룡 티라노사우르스야?
진욱 : 어 어 어... 진욱이는 공농이 좋아. 티나노따우루뜨가 제일 좋아 어 어 어... 사랑은 티나노따우루뜨 공농이야.
하... 아이의 집중력 3분이 넘은 것인가? 이대로 끝인가? 인내심을 갖고 아이의 관심사에 귀 기울이며 질문을 이어 나갔다.
은영 : 그렇구나! 우리 진욱이는 티라노사우르스 공룡이 제일 좋구나. 그래서 사랑이 티라노사우루스 공룡처럼 느껴져서 제일 좋구나. 그럼 어린이집 친구들 중에 누가 제일 좋아?
어눌한 발음으로 해님반 달님반에 자신이 기억하는 친구들 이름을 모두 읊는다. 여전히 해석되지 않는 이름이 하나 있다. 병재? 변재? 형재? 아이의 발음을 열심히 따라 해보지만 계속 아니 병재!라고 한다. 내가 병재?라고 하면 아니 병재!라고 한다. 그렇게 옥신각신하며 자신이 기억하는 친구들 이름을 모두 꺼낸 후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친구는 다 좋지!
5살 아이가 자신의 친구는 다 좋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좋아하는 친구도 싫어하는 친구도 없이 친구는 다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은영 : 그럼 진욱인 밉거나 싫어하는 사람 있어?
진욱 : 아니. 없어. 다 좋아.
은영 : 진욱이 괴롭히는 사람 있잖아. 그런 사람들 안 싫어?
진욱 : 어어... 그건 생각을 안해봐서 모르겠어.
꿈속에서 가족과 박물관을 놀러 갔는데 가짜로 만들어야 하는 공룡을 진짜로 만들어서 자기의 뒷 목을 물었다며 밤새 서럽게 울던 5살 꼬마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운다.
아이에게도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이 분명 존재한다. 이유 없이 서로의 소중한 장난감을 망가뜨리기도 하고 장난감을 빼앗기 위해 물고 때리기도 한다. 그러나 순수한 아이의 마음이나 머리 속에는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을 가두어 미워하는 감옥은 존재하지 않는다. 순수한 사랑이 가득한 사람의 세상에는 지옥이란 없었다.
지옥이란 자신의 생각과 마음 안에 감옥을 만들고 미운 사람을 가두어 함께 살아가는 곳이다. 스스로 신의 자리에 앉아 싫어하는 사람을 악인이라 심판하며 자신이 살고 있는 지옥불에 내 던진다. 마음과 생각 안에 세상과 사람을 향한 시기와 원망, 증오가 가득한 사람들이 불행한 감정을 느끼는 이유이다.
스스로를 불행의 감옥에 가둔 채
미워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함께 살아가는 그곳이 지옥이기 때문이다.
웃음도 전염되고 미움도 전염된다. 어른은 동심을 간직한 아이와 함께 하면서 잃어버렸던 신성을 다시 기억해 낸다. 대다수의 어른들은 자신들이 아이들을 보살펴 주고 키워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신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어두운 마음과 진실을 보지 못하게 된 어른들을 아이가 순수한 사랑으로 보듬으며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있다.
- GOOD BOOK과 이야기의 연결고리 -
*예수님께서는 그 아이들을 가까이 불러 놓고 이르셨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루카 복음서 18,16-17)
*너희는 사람의 기준으로 심판하지만 나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는다. (요한복음서 8,15)
*우리도 수가 많지만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을 이루면서 서로서로 지체가 됩니다. (로마서 12,5)
*그래서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고 지체들이 서로 똑같이 돌보게 하셨습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코린토 1서 12,26)
*그러므로 거짓을 버리고 "저마다 이웃에게 진실을 말하십시오."우리는 서로 지체입니다.(에페소서 4,25)
*여러분의 싸움은 어디에서 오며 여러분의 다툼은 어디에서 옵니까? 여러분의 지체들 안에서 분쟁을 일으키는 여러 가지 욕정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까? (야고보서 4,1)
*이튿날 모세는 서로 싸우고 있는 동족들에게 나타나 그들을 평화롭게 화해시키려고, '여보시오, 당신들은 한 형제 라오. 그런데 왜 서로들 해를 끼치는 것이오?'하고 말하였습니다. (사도행전 7,26)
*형제애에 관해서는 누가 여러분에게 써 보낼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하느님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테살로니키 1서 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