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은 고통 속에서도 피어오르는 희망의 꽃이 되어 사랑을 노래한다
아침에 눈을 떴다. 언제나 그렇듯 오늘은 새로운 오늘이다. 전신 거울을 보며 의식을 치르듯 주문을 건다.
오늘 하루도 순수한 사랑의 마음을
지켜낼 수 있기를,
어제 보다 나은 내가 될 수 있기를,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를.
신이시여 저의 기도를 들어주세요.
그 순간 더욱더 후회가 밀려온다. 그저께의 일들이. 기회였는데 놓쳐버렸다. 오늘의 기도처럼 예쁜 마음을 지켜낼 수 있고, 전 보다 나은 내가 될 수 있고, 그래서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순간의 유혹에 넘어져 놓쳐버렸다.
사건 날 저녁. 어김없이 가족끼리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처음엔 웃으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점점 아빠의 근심 걱정이 커지면서 언성이 높아져갔다.
용기 : 너 앞으로 어떻게 하려 그래? 이런 식으로 계속할 거면 그냥 좋은 남자 만나서 빨리 시집이나 가. 아니면 당장 이 집에서 나가!
은영 : 예전에 아빠 친구 영식이 아저씨랑 나랑 셋이 치맥 먹을 때 한말 생각나? 가장 후회되는 것이 많이 배우지 못해 더 큰 꿈을 꾸지 못한 것이라고. 그땐 너무 가난하고 먹고사는데 급급해서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과 서울 하늘 아래 내 집 한 채 있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어느덧 뒤돌아 보니 어릴 때 아빠가 꿈꾸던 것은 다 이루어져 있었다고. 진작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큰 꿈을 갖고 실현해 나갈걸 후회된다고 그렇게 말했잖아. 내가 지금 그래. 2000년 전부터 내려오는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어. 단순히 먹고살려고만 인간이 태어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세상은 자신이 바라고 믿고 희망하는 대로 돼. 내가 꿈을 포기하지만 않으면 언젠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어. 하지만 그것을 성취해 내기 전까지는 지금과 같이 인내해야 하는 시간들이 있고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철부지,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아야 한다고 성서에도 쓰여있어. 지금 까지의 실패는 모두 밑거름이야. 이 시간을 극복하는 사람만이 자신이 원하는 또 다른 세상으로 갈 수 있어.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도 모두 똑같이 하는 말이야. 나는 미래의 아이들에게 내 삶으로 보여 줄 거야. 아빠가 보기에는 지금 내가 철없어 보이고 정신 나간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겠지. 그래서 계속해서 언성을 높이고 근심 걱정의 소리만 하는 거야. 하지만 그건 내가 잘 못된 길을 걷고 있어서가 아니라 아빠 스스로가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라고!
아빠는 당신의 생각과 전혀 다른 내 대답에 속이 터져 나갔다. 버릇없는 말대답으로 받아들이셨다. 상대의 다른 의견을 자신을 향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게 될 때 우리는 언성을 높여 방어한다. 내 생각을 존중하지도 이해하지도 않는 아빠의 모습이 서운했다. 상처받은 아픔을 비열한 방식으로 위로받고 싶은 유혹에 또다시 시달렸다. 조용히 입가에 히죽히죽 미소를 퍼트린다. 아빠가 눈치채고 화가 나길 바라면서. 그리고 나도 모르게 본심을 쏟아낸다.
난 지금 내가 상처받은 만큼 아빠한테도
똑같이 상처 주고 싶어!
결국 저녁 밥상머리 앞에서 가족 모두가 기분이 상했다. 언성이 높아졌고 사랑의 자리에 원망이 싹텄다.
그 모든 일이 오늘에 와서는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지만 후회의 감정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조금 더 지혜롭고 현명하게 대처할 것을. 논리적인 반박이 아닌 아빠의 근심 어린 마음을 헤아려 주는 편이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의 마음이 가득하다. 그 순간 책상 위에 낯선 편지지가 보인다.
은영아! 내 이름을 부르는 걸로 시작하는 총 4장의 편지다.
恩永. 부모님이 나를 낳고 기쁜 마음에 옥편을 펼치며 몇 날 며칠 고심 끝에 지어주셨다. 신의 은혜를 길게 받는 것이 사랑하는 딸아이에게 가장 좋은 삶인 것 같다는 생각에서 지어주신 이름이다. 그렇게 당신이 처음 나를 품에 안고 앞길을 축복하는 의미에서 지은 은영이란 이름.
은영아!로 시작하는 아버지의 편지.
그 순간 또다시 내 안의 누군가가 이야기를 들려준다.
"얘야. 네 할아버지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자녀들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단다. 몸이 아파 늘 병석에 누워있었고 기침이 심했지. 그런 자신의 괴로움을 이기기 위해 밤새 휘파람과 노래를 불렀다. 어린아이들이 거짓말을 했을 때는 회초리로 때렸다. 그것이 네 아버지가 들려줄 수 있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전부라고 하지. 그의 어머니는 전쟁통에서 자녀를 잃고 남은 8남매를 끌어안고 강해져야 했다. 그렇게 자녀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아버지가 이런 편지를 너에게 쓰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뇌와 망설임이 있었을까? 편지의 내용보다 보이지 않는 사랑을 향한 한 인간의 피나는 노력이 내 가슴을 울린다.
그 옛날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성장한 외로움에 나중에 자녀를 낳으면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되리라 다짐했던 가난한 시골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이 경험하지 못한 부모의 다정한 사랑을 스스로 부모가 되어 베풀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지 생각해 보았니? 사랑받은 사람이 사랑을 꺼내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사랑받은 기억이 없는 사람이 사랑을 꺼내어 놓는다는 것은 본인의 간절한 노력이 없고는 불가한 일이다. 그렇기에 가진 사랑이 별로 없는 가운데 꺼내어 놓는 사랑은 인간은 물론 신에게도 큰 감동을 준단다. 네 아버지는 누구보다 그러한 간절한 바람이 컸던 사람이다.
한 인간의 간절함은 고통 속에서도
피어오르는 희망의 꽃이 되어
수십 년간 자라나는 아이들의 삶에
사랑의 향기로 스며들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사랑으로 보호해 주던 신을 언젠가부터 잊어버렸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좇아 방황하면서 눈에 보이는 신을 찾아 헤매게 되었지. 그 결과 자신 안에 있는 사랑의 신에게는 눈을 감아 버렸단다. 오래전 자신의 바람대로 신의 은혜 속에 커가는 딸아이를 보면서도 눈 앞이 어두워져 불안감에 휩싸였다. 인간은 신의 본성과 멀어질 때 미래에 대한 근심과 걱정, 과거에 대한 집착, 현재에 대한 불만 등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다. 세상은 그것을 두려움이라 부르고 성서는 영혼의 적신호라 표현한다. 악마는 언제나 인간의 귓가에 대고 '세상을 두려워하라.'고 속삭인다. 그러나 신은 인간의 마음 안에서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라고 외친단다."
나는 성서에서 신神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좋다.
육신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체험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영혼의 아버지 사랑이 존재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성당에서 가족의 사랑과 결혼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한 청년이 계속해서 고개를 숙이고 불안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차례가 되자 이렇게 말했다.
"저는 사실... 결혼이 두렵습니다. 폭언과 폭행 속에서 절 키운 아버지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따뜻한 사랑의 기억이 없어요. 결혼을 한다 해도 자녀에게 과연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너무 걱정이 됩니다.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줄 수 있다고 했는데 전 줄 수 있는 사랑을 받아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청년을 향해 말했다.
"성서에는 신을 아버지라고 부르잖아요. 자신이 먼저 성서를 읽고 전지전능한 아버지인 신의 사랑을 가슴 안에서부터 느껴봐요. 그다음에 미래의 자녀에게 그대로 해주면 되지 않을까요?"
내 대답에 주변에 있던 청년들이 웃었다. 그 청년도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오늘은 이 글을 읽게 될 세상 사람들도 웃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우리 아버지도.
- Good Book과 이야기의 연결고리 -
*살아가면서 많은 재산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면 모든 것을 이루는 지혜보다 더 큰 재산이 어디 있겠는가? 예지가 능력이 있다면 만물을 지어 낸 장인인 지혜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진 것이 어디 있겠는가? (지혜서 8,5-6)
*누가 폭넓은 경험을 원하는가? 지혜는 과거를 알고 미래를 예측하며 명언을 지어 내고 수수께끼를 풀 줄 알며 표징과 기적을, 시간과 시대의 변천을 미리 안다. (지혜서 8,8)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고 찾지 마라. 염려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이 세상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이것들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오히려 너희는 그분의 나라를 찾아라. 그러면 이것들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너희들 작은 양 떼야,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기로 하셨다.” (루카 복음서 12,29-32)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마르코 복음서 12,43-44)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 복음서 1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