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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생 김 아무개

‘82년생 김지영’ -조남주-&‘거꾸로 가는 남자’ -엘레오노 포리아트-

by 이은영

새롭게 시작하는 [북씨-플릭스] 독서 모임 첫 책과 영화로 다소 예민할 수 있는 주제 '페미니즘'을 선택했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과 엘레오노르 포리아트 감독의 ‘거꾸로 가는 남자’ 영화를 택한 것도 바로 그 이유다. 과연 남성분들이 모임에 참석할까? 만약 참석한다면 어떤 성향의 분들이며, 어떤 독후감을 쓸지도 궁금했다.

페미니스트를 검색하다 보니 어쩌면 한국에서 말하는 페미니즘과 성 평등은 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다. 왜냐하면, 오로지 여성만을 관점, 극단적인 측면까지 나타나면서 남. 여 싸움으로 번지고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강한 페미니즘, 성 평등 이야기를 책과 영화를 함께 보며 견해를 나누고 싶었다. 오늘은 일상에서 비일비재하게 갈등을 일으키는 세 가지 주제를 가지고 말해 볼까 한다.

# 1. 데이트 비용 부담 어떻게 하고 계세요?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나 혼자 여자인 상황이 있었다. 그때 80년생 김 아무개 씨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얼마 정도의 생활비가 있어야 일하지 않고, 먹고 놀며 살 수 있나요?" "여자와 데이트 한번 하는데도 돈이 엄청 많이 들어요. 데이트 비용은 항상 남자인 내가 내게 되더라고요. 선을 보거나 소개팅을 할 때도 항상 제가 다 냈어요." 그는 이렇게 이야기하고는 전에 사귀던 남자 친구와 데이트 비용은 어떻게 했느냐며 물었다. 그래서 나는 "전에 사귀던 남자 친구가 대부분의 데이트 비용을 냈고, 저는 부모님과 함께 살아서 아주 적은 금액으로도 생활이 가능해요."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나의 전 남자 친구는 단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대부분의 데이트 비용을 내야 했던 것일까?


남자 친구를 사귀던 당시 나는 자발적 백수였다. 글만 집중해서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상태로, 가끔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했다. 그랬기에 최소한의 생활비로 살아야 했다. (지금은 다시 직장인이 되어 낮에는 근무하고, 밤에는 글을 쓰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전 남자 친구 역시 80년생 김 아무개 씨였다. 내가 운동모임에서 탈퇴하면서, 서로가 자연스럽게 마주칠 일이 없어졌다. 그러다가 그가 SNS에서 내 글을 읽게 됐고, 새롭게 알아가며 사귀게 됐다. 그렇게 내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된 그는, 계산대 앞에 서면 항상 나를 가로막았다. 이유는 나보다 형편이 나았기 때문에, 그리고 내 꿈을 응원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의 사려 깊은 마음이 고마웠기에, 나 역시 이별할 무렵 투자 이익금이란 명목으로 그에게 목돈을 주었다. 그 전 남자 친구를 사귈 때도 데이트 비용은 함께 부담했다. 여자인 나도 이렇게 냈어요!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데이트 비용의 황금비율이란 게 정말 있는지 묻고 싶은 것이다. 데이트의 본질은 잊은 채 남. 여 편 가르며 열을 올리는 상황을 마주하면, 소중한 감정과 추억을 놓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서로의 상황을 배려하며 비용을 내다보면,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인간에 대한 신뢰와 추억이 생긴다. 그런 사랑의 신비를 더 많은 사람이 경험해 볼 수 있기를 꿈꿔본다.



# 2. 싸운 뒤 누가 먼저 화해 요청을 하나요?

사귀는 남자와 자주 싸우는 여자를 알게 됐는데, 그녀가 또 싸우고는 단톡 방에 이런 글을 남겼다. ‘친구가 그 사람과 주고받은 톡을 보더니, 속에 여자 100명은 들어 있는 것 같다고 했어요.’ 그녀는 종종 자신의 남자 친구를 겨냥하며, 왜 남자가 돼서 여자랑 똑같이 굴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스스로 여성 비하 및 혐오 발언을 하면서도, 심각성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여성 혐오(misogyny)는 단순히 여성을 싫어하는 멸시, 비하, 편견만을 뜻하지 않는다.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열등한 존재 또는 성스러운 존재로 숭배하는 것 까지 포함한다.

우리는 사랑할 때 알아야 한다. 남. 여를 떠나 모든 연애의 기초는 동등한 인간관계다. 그러므로 남. 여 성별을 따지고 들 것이 아니라, 잘 못 한 사람이 사과하는 게 맞는 것이다. 여자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남자니깐 사과해야 할 이유는 없다. 싸울 거라면 남. 여가 아닌 사안을 두고 논리적으로 제대로 대화해야 한다. 그러나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릴 수 없는 상황이라면 서로 안쓰럽게 생각하고 안아주는 것이 좋다. 남자니깐 더 큰 그릇이 되어 여자를 안아줘야 한다는 생각은 아버지에게만 하자. 여자 친구가 어머니가 아니듯, 남자 친구도 아버지가 아니다. 사랑하는 사이라면 싸울 때조차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존중해 주자.



# 3. 결혼할 때 집 장만은 누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지금도 주변에 결혼 준비를 하는 사람을 보면 대부분 남자가 집을, 여자가 살림을 준비한다. 서로 형편이 되면 그렇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90% 남자는 군대란 곳을 다녀와서 월급을 모아, 서울에 내 집을 마련하기란 군대에 두 번 가는 일보다 어렵다는 것을 여자들은 알아야 한다.

그러니 결혼 준비할 때 남자의 현실과 마음을 헤아려 행동해야 한다.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지 말고, 나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며 살아왔는가? 스스로 돌아보는 것이 좋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함께할 연인을 위해 차곡차곡 돈을 모아 (라고 쓰지만, 부모님이 임대사업자여서 가능했음을 밝힌다. 여자도 자력으로 서울에 자기 나이만 한 평수의 아파트를 구입하기란 한결같은 몸매를 유지하는 것만큼 힘들다) 집을 샀다. 결혼할 때 왜 여자가 집을 사야 해?라는 의구심은 없다. 오히려 내 것을 줌으로써 행복할 수 있는 존재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이란 것을 하게 되면 남. 여 구분하지 말고, 전우애로서 삶의 무게를 함께 나누며 살아가자.

딸이 살아갈 세상은 제가 살아온 세상보다 더 나은 곳이 되어야 하고, 될 거라 믿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딸들이 더 크고, 높고, 많은 꿈을 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p.178)


이 밖에도 수많은 성차별을 겪고 있는 80년생 김 아무개 씨가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는 좀처럼 말이 없다. 대신 자신의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됐다며 쓴웃음을 짓고는, 달 빛만이 밝혀주는 방 한구석에서 작은 소주잔에 얼굴을 비춘다. 나는 그런 80년 생 김 아무개 씨의 세상을 이해하고 싶어서 이 책과 영화를 선택했다.

여전히 성별뿐만 아니라 인종, 연령, 계층 등의 차별은 존재하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완벽하지 않은 다양한 인간이 모여사는 세상은 부조리로 가득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갈등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가느냐가 그 사람을, 그 사회를 말해준다고 본다. 나와 다른 세계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내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82년생 김지영 씨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80년생 김 아무개 씨에게도 어깨를 내어 주면 좋겠다. 당신 혼자 애쓰지 말고, 우리 서로 의지하고 토닥이며, 험난한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자고 말해주기를 소망한다. 그것이야말로 미래의 내 딸을 위해 더 크고, 높고, 많은 꿈을 꾸며 실현해 나가는 더 나은 세상일 테니 말이다.




칸 영화제만큼 권위 있는 칸 라이언즈 광고제 2018년 수상작 ‘The Talk’입니다.

마지막 문구가 이 글의 주제와 맞닿아 있어서 소개합니다.


LET’S ALL TALK ABOUT “THE TALK”

이제 “불편한 대화”를 해야 할 때입니다.


SO WE CAN END THE NEED TO HAVE IT.

그럴 필요가 없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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