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 타임> -리처드 커티스- & <숨> -테드 창-
누구나 한 번쯤 후회되는 순간으로 돌아가 상황을 뒤집는 상상을 해보지 않나? if라는 키워드에 꽂혀 만약에 그때 이랬더라면... 이렇게 달라져있지 않을까?라는 가설을 세우면서 말이다. 언젠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주 오래전, 글로 쓰면 문학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인생을 좀 먹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얻으면서 그 끝도 없이 이어지는 놀이를 그만두었다. 그러한 이유로 독서 모임 [북씨-플릭스] 동료들과 함께 타임슬립에 관해 토론해보고 싶었다. 혹시 내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면 배우게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에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어바웃 타임>과 테드 창의 <숨>을 선택했다.
침대 위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쓴 채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손을 둥글게 말아 주먹을 쥔다. 그 순간 지인의 초대로 저녁 식사를 함께하던 그날로 나는 돌아간다. 곧이어 베란다에서 달을 구경하는 나에게 그가 다가와 구름에 번진 달빛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과거의 나는 주체할 수 없이 나대는 심장 소리가 그에게 들킬까 봐 자리를 피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내 감정을 기만하지 않으리라는 다짐과 함께 그의 눈빛을 바라보며 마주 선다. 그리고 당신과 함께하는 이 순간이 더 아름답다고 말하며 입을 맞춘다. 면 이야기는 달라졌을까?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내가 아니었다면 그 집에 오래 있지 않았을 거라는 그의 말 뜻을 이해하고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까? 커피를 마시자며 두 번이나 말했는데 내가 반응이 없었다는 그의 말에 적극적으로 해명하며 오해를 풀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까? 함께 밥을 먹고 글쓰기 모임에 참석하자는 그의 제안에, 누군가 우리 관계를 질투하며 훼방 놓을 수 있으니 관계를 견고히 한 후 함께하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까? 첫 데이트에 긴장해서 40분이나 늦게 나타난 이유를 부끄러워 둘러대지 않고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까? 그날 와이드 좌석을 선택하지 않고, 스위트 좌석을 선택해 나란히 앉아 팝콘 박스 안에서 손을 스치며 영화를 봤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까? 아니면 그보다 더 오래전으로 돌아가 그가 정성스럽게 적어온 수업내용을 텍스트로 보내 달라고 하지 않은 것은 직접 만나서 전해 듣고 싶은 거여서라고 말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불안한 눈빛으로 자신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사람이 아니며 사귀면 실망할 것이라 말할 때, 인간관계는 상대적이기에 평생 한 사람에게만 실망하면서 그 실망까지 사랑할 것이라 말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까?
그와의 과거에 수많은 가설을 세우고 허물기를 수십 번. 그 과정을 통해 예전에 나를 스치고 지나간 남자들도 나와 같은 과정을 겪었을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렇다면 만약 내가 그렇게 했다손 치더라도 인연이 아니라면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는 진실을 마주했다. 또한, 내 글의 남성분이 같은 상황을 경험했을지라도 똑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을 것이라는 진실도 보게 됐다.
테드 창의 소설 <숨>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사람은 수많은 이야기로 이루어진 존재다. 기억이란 우리가 살아온 모든 순간들을 공평하게 축적해놓은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애써 선별한 순간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서사이다. 설령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건들을 경험하더라도 우리가 똑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특정 순간들을 선별하는 기준은 각자 다르며, 그것은 우리의 인격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우리들 각자는 우리의 주의를 사로잡는 세부 사항들을 인식하고, 우리에게 중요한 것들을 기억하며, 그 결과 구축된 이야기들은 우리의 인격을 형성한다. (p.301)
아마 그와 나는 그동안 누적된 경험과 가치관에 따라 특정 순간들을 선별하여, 기억하고, 유추하며, 선택하고, 결정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추억이 앞으로도 서로의 삶과 인격을 형성해 나갈 것이다.
인연이라면 먼길을 돌고 돌아서라도 다시 만나게 된다는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인연은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말도 진실인지 아닌지도 여전히 모르겠다. 그러나 그 시간을 통해 재확인한 진리가 있다. 지나간 과거에 얽매여 가설을 세우며 자신을 끝도 없이 괴롭히거나, 지울 수 없는 과거의 고통에 오늘의 기쁨을 저당 잡히거나, 알 수 없는 미래를 두고 근심, 걱정하며 소중한 마음을 허비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런 식으로 아쉽게 흘려버린 오늘을 다시 살기 위해 미래에서 시간 여행을 온 것인지도 모른다.
과거를 반추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과거를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며 회개하고, 속죄하며, 용서하기 위함에 있다. 언제나 현재는 과거가 되고, 과거는 또 다른 미래를 만들어 간다. 그러니 바꿀 수 있는 과거란 오늘뿐이다. 지나간 과거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용서와 자기 성찰이다. 용서는 타인을 향할 때도 있지만 어리숙했던 자신에게 베풀 때도 있는 법이다. 우리에게 지혜를 가져다준 과거의 실수를 잊지 않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삶을 통해 얻는 유일한 PRESENT (현재라는 뜻과 동시에 선물이라는 뜻이 있다)이다.
어릴 때 신이 인간에게 준 최상의 선물이 자유의지라고 배웠다. 그러나 성경 속 그와 대조적인 이야기를 읽을 때면 다양한 상상을 하곤 한다. 이를테면 운명이라는 커다란 톱니바퀴와 선택이라는 작은 톱니바퀴가 맞물려 인생은 돌아간다. 하지만 때론 나의 선택조차, 심지어 날 향한 타인의 감정조차-더 나은 나로 만들기 위한-거대한 섭리에 의해 짜인 각본이라 상상하면 오히려 겸손한 자세와 위안을 얻는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삶이란 어쩌면 신이 만들어놓은 운명을 경험하며, 그것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할지를 선택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어바웃 타임>과 소설 <숨>에는 이런 나의 마음을 대변하는 대사가 나온다.
“인생은 모두가 함께 하는 여행이다.
매일매일 사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이 멋진 여행을 만끽하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 선택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내리는 모든 결정은 당신 성격의 일부가 되고, 당신이라는 사람을 형성하니까요. (중략) 선한 일을 할 때마다, 당신은 다음번에도 선한 일을 할 가능성이 많은 인물로 스스로를 만들어가고 있는 겁니다. 그건 의미가 있는 일이지요.” (p.476~477)
그렇다.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운명을 체험하며 교훈과 지혜를 얻고, 실수를 통해서도 성장한다. 그때 나의 선택은 당시의 나로서는 최선이었으며, 오늘날 그 일을 아쉬워하거나 후회한다는 것은 그때의 나보다 성장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한 깨달음을 얻어-이미 벌어진 상황과 최선이었던 선택, 그로 인한 상처까지도-감사하고 사랑할 때, 멋진 인생 시나리오를 다시 쓰게 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므로 인생이란 여행길에서 소중한 추억을 함께 만들어 준 지난 사랑에 감사인사를 보낸다. 마지막으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던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남겼던 말을 공유하며 글을 마친다.
“인생은 누구나 비슷한 길을 걸어간다.
결국엔 늙어서 지난날을 추억하는 것일 뿐이다.
결혼은 따뜻한 사람하고 하거라.”
p.s. 함께들을 음악 - 박효신의 <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