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사랑학 수업>, 마리 루티 + <더 랍스터>, 요르고스 란티모스
연애 코치 글을 보면 마치 진리인 것처럼 공통으로 쓰여있는 팁이 있다.
1. 연애에 밀당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상대방을 헷갈리게 하여, 잡힐 듯 말 듯, 안달 나게 해야 더 좋아합니다.
2. 단점은 최대한 감추고, 장점은 최대한 부각하세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줄 사람은 엄마밖에 없습니다.
3. 상대방과 공통점을 찾거나, 없으면 몸짓이라도 따라 하세요. 동질감은 서로를 가깝게 느끼게 하여 연인 사이로 쉽게 발전할 수 있습니다.
4. 남자는 사냥꾼 기질이 있습니다. 그가 당신을 쫓아다니도록 튕기고 유혹하세요.
5. 여자가 다른 사람 욕을 하면 무조건 그녀의 편을 들어주세요. 당신은 해결사나 심판자가 아닙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 <더 랍스터>와 마리 루티 교수의 <하버드 사랑학 수업>은 이러한 명제를 뒤집어 관객의 눈앞에 들이민다.
영화 <더 랍스터>는 사회의 시스템에 갇힌 현대인의 모습을 블랙코미디로 보여준다. 45일 안에 커플이 되지 않으면 동물로 변해야 하는 호텔에 갇힌 주인공 데이비드는 짝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단, 규칙이 있는데 반드시 자신과 공통점이 있는 사람 하고만 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망할 규칙 때문에 그 어떤 여자와도 공통점이 없던 데이비드는 짝을 찾는데 계속해서 실패한다. 그 사이 절름발이 남자는 커플이 됐다. 그는 자신과 같은 절름발이 여자가 없자, 코피를 자주 흘리는 여자를 따라 -매일 자신의 코를 가격하여-코피를 자주 흘리는 남자가 됐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지켜본 데이비드도 랍스터(커플이 되지 못하면 그는 랍스터가 된다)가 되지 않기 위해, 감정이 없는 비정한 여자를 선택한다. 그리고 자신도 비정한 남자인 척 연기한다. 그런 노력 덕분에 그들은 커플이 되어 인간으로 살 게 되지만, 곧 정이 많은 남자라는 것이 들통나(?) 이별을 맞이한다.
정이 많은 남자 데이비드는 호텔을 빠져나와 솔로만이 살 수 있는 숲 속으로 뛰어든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에서 자신과 같이 근시인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아뿔싸! 이들은 솔로 숲의 규칙을 어겼다. 그리하여 솔로 숲의 리더는 근시 여자를 시각 장애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근시라는 공통점이 사라진 이들은 갈등을 겪는다. 그러자 시각 장애인이 된 여자는 남자의 손에 칼을 쥐여주고 자신과 같이 되라며 강요한다. 그래야 완벽한 사랑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이런 나르시시즘적 인간은 자신 안에 갇힌 채 사랑에 대한 경험도, 인식도 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자신은 물론 세상에 대한 성찰 능력도 상실한다. 언제나 타인 속에서 자신과 같은 모습만 발견하며 자기 존재감을 확인한다. 그녀가 눈을 상실했을 때 리더에게 외친 말이 "왜 그가 아닌 나야!"였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정한 사랑을 줄 수
영화와 함께 읽은 <하버드 사랑학 수업>은 문학, 철학, 심리학, 사회학 등을 두루 섭렵한 마리 루티 교수가 하버드 대학교에서 3년간 진행한 강의를 책으로 묶은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 호기심에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은 그동안 진리라고 믿고 있던 연애 지침서 속 밀당과 튕기기 전략 등이-사랑과는 거리가 먼-얼마나 형편없는 기교였는지 깨닫게 된다. 튕기기는 전략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확신하지 못할 때 하는 행동이다. 연애를 게임 정도로 치부하는 것은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연애의 힘을 앗아가는 것이며, 사랑이 우리에게 더 폭넓은 영향을 미치고 훨씬 더 신비롭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라 일침을 놓는다. 자신의 말에 맞장구치며 무조건 맞다고 하는 사람은 당신을 진실로 사랑해서가 아니라 영혼이 없기 때문이고, 그런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아도취형 인간일 뿐임을 말해준다.
만일 시각 장애인이 된 그녀가 <하버드 사랑학 수업>을 들었더라면, 그에게 칼을 주며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변화시키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절름발이 남자 역시 상대를 소유하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이나 자아 존중감을 잃어버리면서까지 그녀에게 맞추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참사랑이 무엇인지 한 번이라도 체험했더라면 오히려 시각 장애인이 된 그녀는 보이지 않는 자신의 눈이 되어 손을 잡고, 솔로 숲을 탈출하게 해 준 그에게 고마움을 표시했을 것이다. 절름발이 남자 역시 절름발이가 된 자신의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말하던 처음의 모습을 유지하며,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또 사랑하고자 했을 것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연애 코치 글과 댓글을 읽다 보면, -이기심과 탐욕에서 출발하는-그런 글과 말이 진리라고 믿고 행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이 '눈먼 자의 도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세상은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이라 믿고 행하며 살도록 서로를 부추기고 있다. 눈뜬장님이 된 그들이-자칭 연애 코치라며-서로를 인도하다 다 같이 구덩이에 빠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눈을 뜨고 있어도 볼 수 없는 눈먼 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이러한 예술작품을 보고, 생각하고, 쓰고, 말하고, 실천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다 보면 참사랑이 무엇인지 점점 더 선명하게 보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정한 사랑을 줄 수 있게 될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