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고민에 밤잠을 설치는 이들에게
32살쯤 된 청년과 커피를 마시는 중에, 본인이 앞으로 커리어를 기업가로 가야할지 아니면 박사 과정을 하고 학계로 가야할지 고민이 된다는 말을 들었다. 유망한 인공지능 회사에서 머신러닝 전문가로 일하고 있는데, 나이가 들어가기 시작하니, 현재 하고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 고민도 되고, 안가본 길에 대한 미련도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냥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느라 너무 애쓰지 말고, 그냥 전부 다 해버린다고 생각하고 계획을 다시 짜보라고 했다. 하나의 직업 혹은 하나의 역할로 우리 자신을 '정의(define)'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우리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공식(?)에 너무 묶여있어서 오히려 이것이 본인을 제한하는 경우도 많이 있는 것 같다. '선택과 집중'은 인생의 모든 단계에 적용해야 되는 공식이 아니다. 이 보다는 '발산과 수렴'이라는 표현들이 더 현실적일 때가 많다.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의 철학자 블레이즈 파스칼(Blaise Pascal, 1623 – 1662)에 대해 구글을 통해 검색해서 보면, 그는 수학자, 물리학자, 발명가, 철학자, 작가, 그리고 심지어는 신학자이다. 현대의 직업에 대한 관념에서 보면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수학자, 물리학자, 발명가는 이공계에 속하는 직업이고, 철학자나 신학자는 문과에 해당하는 직업이다. 고등학교때 이과냐 문과냐로 한번 분리되면 평생을 따라다니면서 우리의 재능 성향을 분류하게 되는 한국 상황에서 보면 말이 안된다. 이 사람이 1600년대에 활동했던 사람이니까 확실히 이런 것에서 만큼은 과거보다 현재가 후진 것이 맞다. 미래는 더 후져져서는 안되는데. 미래가 가장 올드해질까 걱정이다.(참조: 미래가 가장 올드하다 https://brunch.co.kr/@yoelsquare/33)
비단 이 파스칼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대부분의 유럽의 역사적 인물들은 다 저렇다. 대부분 투잡도 모자라서 5-6개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이들이 시간이 많아서 저렇게 복수 개의 전공을 했겠는가. 파스칼은 수명도 겨우 40년 정도도 못 살았다. 컴퓨터도 없고, 인터넷도 없는 오늘날로 말하면 인프라적으로 깡촌보다 더 후졌을 시대에 그들은 당당하게 복수 분야에서 엄청난 성과들을 이루어 냈다.
이런 것을 미루어 보면, 우리가 우리의 커리어적 정체성을 정립해가는데 있어서 '선택과 집중'의 공식에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다. 그냥 하고 싶은 것 다해도 될만큼 중세 시대의 사람들보다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도구를 이미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하고 싶은 것 그냥 다하고 살자. 누가 뭐라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