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친구가 자녀의 교육과 진로 문제로 고민을 나누었던 적이 있다. 자녀를 둔 사람이라면, 대학 입시가 닥쳐 있지 않아도 주요 관심사 중의 하나이다. 친한 친구였기에 현실적이고 불편한 얘기를 있는 그대로 해줬다. 이 글은 그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대학이 줄 수 있는 것이 브랜드 밖에 없는 시대가 금방 올것이다.(사실은 이미 왔는데 못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대학이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크게 지식, 네트워크(동문), 브랜드 세가지였다. 그런데 그중 두 개가 크게 없어졌다. 바로 지식과 네트워크. 최고의 지식 교육 기관을 유지해왔던 전통적인 대학이 이제는 이 '지식'부분을 포기해야하게 생겼다. 구글, 유튜브, 코세라(coursera), 클래스101, 모두의 연구소 등 때문에. 네트워크 부분도 시원찮다. 요새 누가 동문회 모임에 나가는가. MZ 세대는 특히나 잘 안나간다. 동문회 나가느니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카톡방, 디스코드, 슬랙 등에서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끼리 모이고 교류한다. 단순히 알고 지내는 것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도 같이 한다. 같은 학교 출신이라고 해서 옛날처럼 밀어주고 당겨주는 것도 다 옛날 일이다. 요즘도 그러고 있다면, 당신은 50대일 가능성이 많다. 그나마 어디서 뭐 공부했는지가 대화주제가 되는 마지막 세대가 현재 40대 이지 싶다. 지식과 네트워크를 제껴놓고 보니, 이제 마지막 하나 남은게 브랜드다. 그 대학 졸업했다는 브랜드.
그런데 한국에서 이 브랜드를 줄 수 있는 대학은 10개가 넘지 않는다.(이 10개가 어디인지는 조심스러워서 얘기하지 않겠다.) 나머지는 그냥 다 같다고 보면된다. 만약 이 브랜드를 가지고 외국에서 커리어를 쌓으려고 하면 그 브랜드 프리미엄을 줄 수 있는 대학의 수는 더 줄어든다. 일례로, 한국 대학 브랜드들 중에서 외국 학계에서 설명을 안해도 알아봐주는 대학들은 5개 정도다.
만약 당신의 자녀가 이 10개 대학에 입학할 입시 성적이 아니라면, 그 4년간 낼 수업료로 예를 들어 창업을 시키는 것이 훨씬 많은 것을 배우게 할 것이다. 4년간 수업료를 대충 따져봐도 5천만원은 어렵지 않게 넘을 것 같다. 이 돈이면 창업할 수 있고, 좋은 아이디어면 엑셀러레이터들의 도움도 받고, 시드 투자도 받을 수 있다. 그러다 운좋으면 성공도 한다. 애매한 곳에서 공부해서 배운 것도 시원찮고, 특별한 네트워킹이 되는 것도 아니고, 브랜드도 얻지 못하는 것보다 100배 낫다. 한국사회에서 더 큰 문제는 애매한 대학을 졸업했다는 이유로 실력과 잠재력이 저평가되는 경우를 종종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느니 애매하면 그냥 가지말고 그 '수업료'의 용도를 바꿔라.
그러다 창업해서 망하면 어쩌냐고 물어볼 수 있다. 그러면 이렇게 반문한다. 당신이 대학에 수업료를 내고 다니면서 공부해서 취업에 실패했다고 당신은 대학에 따져 묻는가? 창업했다가 망해서 5천만원을 다 날렸다고 치자. 그래도 그 5천만원의 수업료는 대학 4년 다닌 것보다 100배 많은 지식과 네트워크를 가져다 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마 이미 전투력과 다음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 그리고 다시 한다고 했을 때 함께 할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모두다 고분고분 애매한 대학 4년 다녀도 얻지 못하는 실제적 가치들이다. (여기서 예로 든 창업 외에도 다른 길은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이런 파격(?)적인 결정을 할 때는 한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자녀가 대기업, 중소기업, 공무원 등 일반적인 직장인의 커리어를 생각하고 있다면, 굳이 이런 결정을 내릴 필요가 없다. 그냥 최대한 열심히 해서 성적에 맞추어서 대학을 가고, 그 안에서 진로 개척을 하면 된다. 어느 길이든 본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놀라운 성공들이 있다.
만약 당신의 자녀가 일반적인 직장인 커리어 보다는 창업 등 다른 길을 갈 의지가 있고, 재능이 보인다면, 과감한 결정을 하기가 수월해진다. 그리고 요즘은 '고졸', '중퇴'라는 타이틀이 일반적인 직장 생활의 루틴을 벗어난 사람에게는 오히려 '매력'포인트일 수 있는 시대이다.
사실, 태어나서 20살까지의 교육이 온통 어느 대학에 가느냐의 문제로 골머리를 썩는 교육은 문제가 좀 있다. 심지어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도, 학교에서는 막상 얻는 것도 없으면서 수업료는 필사적으로 내고, 진짜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일에는 필사적으로 수업료를 아낀다. 30년전 쓰여진 번역도 이상한 5만원짜리 대학교재는 묻지도 않고 사지만, 주옥같은 명저를 사는데는 1만원도 주저한다. 그 이유는 우리의 교육이 과도하게 학교라는 '기관' 중심의 교육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업료'에 대한 유연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학교에 내는 것만이 '수업료'가 아니다. 그 '수업료'의 사용처에 대한 자유권이 우리에게 있다. 그리고 그 선택할 수 있는 옵션들이 넘쳐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