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난 성인이 되기까지
가족 앞에서 울었던 기억이 없다
연애를 할 때도 그랬다
연인 앞에서도 울어본 적이 없다
막내작가 때 일이 너무 힘들어서
같은 회사서 일하던
작가 친구 앞에서 글썽인 정도..?
언젠가 친한 친구가
네가 울면서 돈 빌려달라면 무조건 빌려줄 거 같다는 우스개 소리도 했었다
그런데 30대에 접어들면서
조금씩 ‘눈물의 경험’이 쌓이고 있다
(그래 봐야 다섯 손가락에 꼽히지만)
그러다 올해 초 결정적으로 터지고 말았다
작년에 심리상담을 통해 지쳐있던 나를 발견하고
우울의 늪에 빠져있던 때..
집에서 아빠랑 사소한 걸로 싸우고
한밤 중에 자취집으로 가네 마네
한바탕 쏘가지를 부리고 방에 들어갔는데
동생이 따라와선
언니가 아빠를 이해하라는 말 한마디..
그거에 그냥 터져버리고 말았다
그냥 누구든 살짝만 건드리면 터질 듯한
풍선 같은 상태였던 거다
동생 품에 안겨 정말 꺼이꺼이 서럽게 울었다
한 번도 언니가 우는 걸 본 적 없는 울보 동생은
당황했고, 같이 울었고
내가 좀 진정됐을 때 엄마를 불렀다
그리고 세 모녀가 같이 또 울었다
그제야 난 처음
번아웃 때문에 힘들었던 이야길 했다
지금껏 일하면서 힘든 이야길
한 번도 하지 않았기에 엄마는 적잖이 놀란 듯했다
(엄마가 반대했던 일.. 난 10년 넘게
의식적으로 일하면서 힘든 이야길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후로 엄마가 가장 자주 하는 질문이 바뀌었다
“그래서 밤샜어?”
“잠은?”
“대본 써야 되면 밤새야 돼?”
“지금 프로그램 오래 했으면 좋겠다.
밤 안 새도 되잖아.”
결혼 잔소리만 하던 엄마에게
우선순위가 바뀐 듯했다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겠으면
울기라도 해야 한다
사실 아직 익숙하진 않지만 경험이 쌓이면
좀 더 편안하게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