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사람은 몸과 마음, 이 두 가지로 나뉜다. 둘 다 개발이 가능하지만, 몸은 그 성장에 한계가 있다. 아무리 용을 써도 모든 인간은 ‘병과 사’로부터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은 다르다. 마음은 무한히 개발할 수 있다. 여러 군데로 떨어지는 빛을 한데로 모으면 뜨거운 불이 피어나듯이, 산란한 마음을 한데로 모아 집중력을 기르면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 힘이 부귀영화를 가져다준다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시끄러운 이 사회에서 고요한 마음으로 평화롭게 살 수 있게는 해준다. 그렇다면 마음은 어떻게 개발해야 하는가. 요가 아사나(asana, 자세) 수련은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내가 주로 수련 중인 아쉬탕가 빈야사 요가는 ‘호흡, 자세, 응시’가 기초를 이룬다. 한 번의 호흡에 하나의 자세가 취해지며, 각 자세에는 각각의 응시점이 정해져있다. 처음 수련을 시작했을 땐, 이 셋을 동시에 취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동작을 완성하려 애쓰다 응시는커녕 호흡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무호흡(?)이 길어지며 사마스티티(samasthiti, 바르게 서는 자세)로 돌아왔을 때 어지러워 휘청하는 상태, 요가 수련자라면 누구나 한 번은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수업 중 선생님들이 가장 많이 말씀하시는 것도 “호흡하세요!”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많은 요가 이론서에서도 깊은 호흡을 하며 아사나 수련을 해야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심신의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고 나온다.
또한, 아쉬탕가 빈야사 요가는 다양한 ‘자세’로 각 시리즈가 구성된다. 크게 보면 몸을 앞으로 굽히는 전굴 자세, 상체를 비틀 듯 짜내는 비틀기 자세, 척추를 활처럼 뒤로 젖히는 후굴 자세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나는 요즘 후굴 자세의 기본 우르드바 다누라아사나(urdhva danurasana, 위로 향한 활 자세)에 집중하고 있다. 컴업(come up, 후굴 올라오기)과 드랍백(drop back, 후굴 내려가기)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허벅지 안쪽 근육에 집중하며 발바닥을 바닥에 안정적으로 고정시키고, 척추 마디마디가 고르게 구부러지도록 노력하며 손을 한 걸음 한 걸음 발쪽으로 걷는 중이지만 아직까진 손과 발 둘 사이 간격이 매우 멀다. 드랍백을 시도할 땐, 상체를 뒤로 젖히는 게 두려워 나도 모르게 무호흡(?) 상태가 되는데, 그 때마다 메스꺼움과 어지러움이 곧바로 와 호흡을 할 수 있는 선까지만 상체를 젖히고 있다. 조금씩 용기 내 하다보면 언젠가 두려움 없이 바닥을 안정적으로 디디는 날이 오겠지 라는 마음으로.
호흡과 자세를 올바르게 취하면서도 자주 놓치는 부분이 바로 ‘드리시티(drishti, 한 점 응시)’다. 아쉬탕가 마이솔 수련 중, 다른 요기들을 잠시 지켜볼 때가 있다. 물론, 내 시선이 혹여 수련에 방해될까 싶어 응시 시간은 1~2초에 불과하지만. 근데, 이 호기심이 나에게도 좋지만은 않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본 다는 건 이미 집중력을 잃었다는 것이고, 균형을 잡는 동작의 경우 응시점을 놓치면 몸은 바로 휘청한다. 구루지 파타비조이스는 “드리시티를 하지 않으면 마음이 약할 수밖에 없고, 마음이 약하면 요가의 목적지에 이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만큼 한 지점을 응시한다는 건 내면에 집중하는 과정이며, 이는 마음을 훈련하는 방법이라는 뜻일 것이다.
나는 매일 아침 요가 매트 위에서 마음을 개발 중이다. 수치로 측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 자신은 개발 정도를 알아챌 수 있다. 안 좋은 생각이나 잡념으로부터 전보다 빨리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게 척도 중 하나다. 20대 때는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주로 술을 마셨다. 취해있는 동안은 그 생각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다음 날 아침, 결과는 달라질 게 없었다. 말 그대로 시간을 죽이는 날이 많았다. 지금의 나는 적어도 그 방법은 취하지 않는다. 요가 수련을 하며 눈에 보이는 육체 뿐 아니라 내가 하는 생각이나 에고(ego) 또한 진짜 내가 아님을 알게 된 뒤로, 그 생각과 마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내가 생겼다. 진짜 나, 참된 나라 불리는 ‘아트만(atman)’. 2주간 이어진 <바가바드 기타> 수업을 통해, 이에 대한 공부를 명확하게 할 수 있었다. 아직 아트만을 만나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만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 존재만큼은 내면에서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아트만의 무한한 힘을 믿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