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요가적인 삶

by 서빈

2007년부터 시작된 나의 요가 수련. 그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요가 진짜 잘 하시겠네요?”란 말을 종종 듣곤 한다. 물론, 이들 대부분은 요가를 하지 않는다.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분들이 대다수다. 그렇기에 할 수 있는 질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요가 수련자도 이와 비슷한 맥락의 말을 많이 한다. 가령, 이효리님 덕에 한창 유행했던 핀차 마유라아사나(pincha mayurasana, 공작 자세)나 손바닥을 지지대삼아 거꾸로 서는 핸드 스탠드(handstand) 같은 어려운 자세를 누군가 거침없이 해낼 때. 나 또한 고난이도 자세가 ‘요가를 잘 한다’의 기준이 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요가를 잘 한다’는 말은 사실 어불성설이다. 이러한 오류는 요가에 대한 정의를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힌두교 정통 요가학파의 창시자 파탄잘리는 <요가 수트라>에서 요가를 8단계로 정의한다. 야마(yama, 도덕률), 니야마(niyama, 자기 정화와 공부), 아사나(asana, 자세), 프라나야마(pranayama, 호흡 제어), 프라티야하라(pratyahara, 감각 제어), 다라나(dharana, 집중), 디야나(dhyana, 명상), 사마디(samadhi, 삼매)가 그것이다. 즉, ‘요가를 잘 한다’는 말은 요가를 3단계 아사나(asana, 자세)만으로 생각할 때 범하는 실수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바로 지난 주 아헹가 요가 교육 때 선생님께서도 같은 맥락의 말씀을 하셨기 때문이다. 선생님 또한 “요가 잘 하세요?”란 질문을 많이 받으셨단다. 당시 인도에서 긴 학업을 마친 뒤 한국에 막 돌아왔을 때였는데,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한참동안 답을 고민하셨다고 한다.


인도 뉴델리의 공원 'Lodhi Garden'


질문자의 의도를 넣어 교정해본다면 “너 요가 아사나 잘해?”지만,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yes or no" 이 두 가지로 답할 수 있는 건지도 애매하다. 요가 아사나를 ‘잘 한다’는 기준이 되는 자세가 정해진 바 없고, 있다 하더라도 그 자세를 어떤 상황에서든 늘 완벽하게 취할 수 있는지를 그 누가 확신할 수 있는가. 사람의 생김새가 제각각이듯, 각 개인이 지닌 신체적 특징과 유연성, 근력이 다르기에 한 동작을 몸에 익히는 데 필요한 시간이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어떤 이에겐 매우 쉬운 자세가 또 다른 이에겐 노력해도 끝내 할 수 없는 것도 있다. 때문에 이를 가지고 잘하고, 못하고를 나누기보다는 요가의 목표를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



선생님은 요가를 하는 이유는 결국 두 가지라 말씀하셨다. 첫째는 ‘알아차림’이다. 매일 매트 위에서 수련을 해도, 내 몸은 하루하루 다르다. 식단을 잘 유지한 다음 날은 가볍고 유연한데 반해, 그 반대 날은 무겁고 뻣뻣하다. 식단 외에도 생리 주기, 수면의 질, 스트레스 여부 등이 몸과 그날의 수련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사실 요가 수련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변화를 알아차릴 새 없이 그저 바쁘게 일상을 살아갔을 거란 생각도 든다. 가끔은 그게 더 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몸과 마음의 미세한 변화까지 감지되니 분명 좋기만 한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인 점은 나에 대한 알아차림이 조금씩 시작되니, 나 외의 것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더 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바탕으로, 말이나 행동을 할 때 전보다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인도 뉴델리의 간디 추모공원' Raj Ghat'


이는 요가를 하는 두 번째 이유와도 연결이 된다. ‘선한 마음의 강화’가 그것이다. 어느 순간 매트 앞에 선다는 것 자체가 내 몸이 아프지 않고, 나에게 별일이 생기지 않아 가능한 시간임을 알게 되었다. 수련 할 수 있는 오늘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며, 이 날을 계속해서 이어가기 위해 나에게 좋은 걸 한다. 페스코 채식(pesco, 육식은 금하고 유제품, 계란과 생선까지만 먹는 채식자)도 그 때문에 한 선택이었다. 난 감히 채식주의자라 말하지 않는다. 동물권 보단 철저히 내 위주의 선택이었으니까. 또한, 요즘은 남에게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할 때, 최대한 내가 해본(받은) 것 중에 좋았던 걸 나눠주려 노력한다. 결과에 집착할 행위 같으면, (가능하다면) 아예 삼가게 된다. 물론, 꾸밈없는(?) 이 태도는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확실하게 정리해줬다. 아직은 대부분이 내 위주의 선한 마음이지만, 이 마음이 조금씩 넓고 깊어지면 남을 위한 선한 마음도 강화되지 않을까. 뚜렷한 인생의 목표가 없다면 ‘요가적인 삶’는 인생의 좋은 방향성이 될 수 있다.

keyword
이전 10화#9. 진짜 나, 아트만(at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