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탄잘리는 <요가 수트라>에서 요가를 8단계로 정의한다. 개인의 도덕적 규율과 관련한 야마(yama, 도덕률)와 니야마(niyama, 자기 정화와 공부), 요가 동작과 관련한 아사나(asana, 자세)와 프라나야마(pranayama, 호흡 제어), 꾸준한 수련을 통해 요기(yogi, 요가 수련자)가 궁극적으로 가야할 지향점인 프라티야하라(pratyahara, 감각 제어), 다라나(dharana, 집중), 디야나(dhyana, 명상), 사마디(samadhi, 삼매)가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5단계 ‘프라티야하라(pratyahara, 감각 제어)’에 관한 이야기가 지난 주 이론 교육의 주된 내용이었다.
우리가 흔히 ‘오감’이라 말하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이 다섯 가지의 감각을 제어하는 것이 바로 프라티야하라(pratyahara)다. 이 다섯 감각 중 하나만 부재해도 사는데 큰 불편을 겪는데, 요가에선 왜 이를 제어하라고 말할까. 바로, 이 감각들을 먹고 사는 게 ‘생각’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는 생각의 대부분은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거나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차지한다. 그러한 생각이 많아지면 마음이 산란해지고, 이내 불행에 빠진다. 원장님은 인간이 배우지 않고도 가장 잘 하는 것이 바로 ‘생각’이라며 이를 잘 다스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이에 매우 동감했다. 내가 10년 넘게 요가를 꾸준히 수련하는 이유 중 하나도 생각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요즘은 아쉬탕가 마이솔 수련을 할 때 잡생각이 거의 나지 않는다. 지난 번 교육 때 선생님이 알려주신 대로 각 동작마다 산스크리트어 구령을 마음속으로 외며 호흡과 동작을 이어가니, 다른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다. 그렇게 수련을 한지도 꼬박 한 달이 넘어가고 있었는데, 의문점 또한 있었다. 후반부 자세로 갈수록 구령이 끝나는 숫자가 책 마다 다른 것이다. 그래서 뉴욕 요가 여행을 갔을 때 녹음해 둔 사라스와티 조이스와 에디스턴 선생님의 구령을 들어봤는데, 두 분 또한 구령이 달랐다. 선생님께 여쭤보니, 그 때문에 인도 마이소르에 꾸준히 수련을 가신다고 말씀하셨다. 조금씩 과거의 것들을 보완해가며 변화되는 자세나 구령 등을 배우기 위해서. 또한, 현재는 구루지 파타비 조이스의 손자 샤랏 조이스의 구령을 기준 삼으면 된다고 귀띔해 주셨다.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지난 주 교육은 굳어있던 마음 또한 풀리는 시간이었다. 중반을 넘어선 TTC 과정과 요가 수련에 대해 교육생 각자가 돌아가며 소회를 나누는데, 다들 비슷한 이유로 불안해하고 있었다. 동작이 이렇게 잘 안 되는데, 과연 교육이 끝난 이후에 내가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을까란 두려움. 특히, 아쉬탕가 빈야사 요가의 경우는 동작의 순서와 수련 단계가 정해져 있어 남들과 비교하기가 쉽다. 옆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왜 나만 안 되지’와 같은 생각이 깊어져 동작이 흔들리며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문득 처음 이 요가원에서 아쉬탕가 마이솔 수련을 시작한 지난 1월이 떠올랐다. 시간표에는 오전 7시 수련 시작이라 쓰여 있는데, 10분 전에 도착했음에도 이미 꽉 찬 교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말 그대로 날아 다녔다. 그대로 얼음이 된 나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선생님의 지시도 받지 않고 맨 앞 줄 빈자리를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선 마음만 급해져 한 시간 만에 풀 수련을 끝내고, 재빨리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그전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못난 우월감이 깨끗이 씻겨 진 순간이었다.
그 날의 용기(?)덕에, 현재는 날아다니는 분들이 꽉 찬 공간에서 매일같이 초심자의 마음으로 수련에 임하고 있다. 그 시간 동안 매트 안에서 흘린 땀과 시간, 그를 이어가는 꾸준함만이 정답임을 알게 됐다. 그 덕분인지 지난 몇 년간 되지 않던 동작들을 현재 꽤 많이 잡아가고 있다. 며칠 전엔 드랍백(drop back, 후굴 내려가기)에 성공했다. 조금만 후굴을 해도 엄청난 두려움에 갑자기 어지럽고, 목이 마르며, 식은땀까지 뻘뻘 흘린 게 얼마 전의 일이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머리 한 번 바닥에 쾅 박을 용기를 내니 ‘얼렁뚱땅’ 해낼 수 있었다. 조금 느린 이 성장이 수련자로서 답답할 때도 있지만,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학생들의 마음을 백번 공감할 수 있는 선생님이 될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 조금은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