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요가 수트라> 이론 시간은 ‘마음’이 주제였다. “우리의 마음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란 질문에 교육생 모두가 답을 머뭇거리던 그때, 원장님은 이 질문 자체가 오류라며 “마음은 항상(恒常)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조건 따라 변하는 게 마음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하지 않는 것을 항상 한다고 착각해 고통 받는다. 돌아보면,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 어떤 상황에서든 변치 않고 영원한 적이 있었던가. 내 경우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언젠가부터 마음이 고요한 상태가 참 좋다. 슬프지도, 그렇다고 즐겁지도 않은 ‘별일 없음’의 무(無) 상태.
이러한 마음 상태를 최대한 유지하고자 프리랜서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생활 패턴은 매우 규칙적인 편이다. 지난 1월부터 6월까진 매일 새벽 5:30분에 일어나 아쉬탕가 마이솔 수련을 하러 갔다. 이후 집에 돌아와 밥 먹고 일하며 일상을 보냈는데, 언젠가부터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생각이 ‘대본’이 아닌 ‘요가’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현재 내가 요가 지도자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이란 사실도 위로가 안됐다. 드라마 대본을 쓰는 일은 점점 두렵고 피하고만 싶은데, 수련은 너무도 즐기는 나 자신이 어느 때는 너무 싫기도 했다.
결국,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루틴을 조정했다. 원래대로 오전에 글을 쓰고, 오후에 수련을 가는 방식으로. 글쓰기와 수련 시간을 단순히 맞바꾸면 될 것 같지만, 실은 그 외 시간도 조금씩 변화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오후에 수련을 하면, 수련 전 공복 상태를 위해 집으로 돌아온 오후 4시 경에야 밥다운 밥을 먹을 수 있다. 다행히도 새벽에 먹은 구운 가래떡 한 줄과 과일이 긴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해줬다. (이 과정에서 나는 그간 얼마나 많은 양의 밥과 간식을 먹은 건지 반성해야만 했다!) 무엇보다 오전 7시에 매트 앞이 아닌 책상 앞에 있으니 마음이 한결 편했다. 지난 6개월 간 요가를 하루의 우선순위에 두고 꾸준히 수련하며 전 보다 많은 성장을 한 것처럼, 대본에 보다 집중한 하반기를 보낸다면 내가 어떤 작품을 쓰게 될지 기대도 됐다.
하지만 이 마음 또한 며칠 가지 못했다. 생각의 꼬리를 이리 저리 비틀고 뒤집으며 캐릭터의 숨은 이면을 들여다보고 싶은데,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분명 내가 만든 캐릭터임에도 너무 낯선 존재들이었다. 그들과 친해지지 못해 다소 침울한 한 주를 보내던 때, 아쉬탕가 빈야사 요가 교육 시간이 다가왔다. 교육 시간의 절반은 그룹을 나눠 아쉬탕가 프라이머리 시리즈의 하이라이트(?) ‘부자피다아사나(bhujapidasana, 어깨 누르는 자세)’부터 ‘세투 반다아사나(setu bandhasana, 척추 들어 올리는 다리 자세)’까지를 복습했다. 프라이머리 풀 시리즈 수련자인 나는 ‘얼렁뚱땅’ 조장(?)이 되었고, 맡은 바의 임무를 다하고자 교육생들에게 각 자세마다 내가 알고 있는 최대한의 것들을 꺼내 알려주었다.
그렇게 신나게 웃고 떠들다 대망의 구령 테스트 시간이 다가왔다. 말이 테스트지, 선생님 말대로 실수해도 귀엽게 넘어갈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니 큰 부담을 가질 필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장이 좀 됐는지 물 한 모금을 마시고서야 입이 떨어졌다. 그렇게 아쉬탕가 마이솔 수련을 하며 마음속으로는 수없이 외웠던 구령을 입 밖으로 천천히 용기 내 꺼내놓았다. 수리야 나마스카라 A(surya namaskara A, 태양경배 자세)부터 파타하스타아사나(padahastasana, 손을 발바닥에 대는 자세)까지. 중간 중간 내 구령에 맞춰 수련 중인 교육생의 호흡 속도를 천천히 지켜보면서.
산스크리트어와 영어만으로 구령을 진행한 게 혹여 어색하게 들렸을까 걱정됐지만, 다행히 호평(?)을 받아 교육을 마친 뒤 요가 강사로서 수업에 나갈 용기도 조금은 생긴 하루였다. 그날 밤, 벌써 두 달 전인 아쉬탕가 빈야사 요가 교육 첫 시간이 생각났다. 그날 속엔 6년 넘게 수련했음에도 각 동작의 빈야사 개수도 정확히 몰라 헤매던 내가 있었다. 다시 한 번 몸소 깨달았다. 노력하면 되는구나. 대본은 아직 그만큼의 노력이 덜 된 거구나. 그러니 조급해말고 조금 더 애정을 갖고 써보자. 엉덩이의 신묘한 힘을 다시금 믿어보자. 결국, 요가가 나를 또 위로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