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요가 매트 위에서 만난 도반들

by 서빈

요가 수련을 함께하는 벗을 ‘도반(道伴)’이라 부른다. 본래 ‘함께 수행하는 벗’이라는 의미로 불교에서 쓰는 용어인데,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nirvana, 마음의 평정상태)으로 가는 여정이 요가의 궁극적 이유와도 일맥상통하기에 요가 수련자들도 도반이란 용어를 점점 쓰게 되었다. 올해 초, 요가 지도자 과정 교육(TTC)을 등록하면서 6개월 간 어떤 사람들과 함께 배우고, 성장할지 매우 기대하며 설렜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마음만큼 행동이 따라주진 않았다. 대부분의 교육생들이 직장 생활을 병행 중이라 퇴근 뒤 저녁 수련을 하는데, 나 홀로 새벽 수련을 나가고 있어 평일엔 동기들을 볼 기회가 없었다. 유일하게 마주 앉는 토요일마저도 대부분 교육에만 집중하고 쉬는 시간에 조용히 목례만 하기 일쑤여서,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사람이 몇 안됐다. 그래서 주변 선생님들이 “도반은 많이 생겼어요?”라 내게 물어올 때면, 딱히 뭐라 답 할 말이 없었다.


도반들과 함께 만든 'YOGA'


나는 낯선 사람들을 만날 때 종종 인터뷰(?)를 당한다. 솔직한 내 성격과 방송 작가라는 직업이 가진 특수성이 조합돼 만들어진 상황인데, 첫 만남에 인터뷰만 당하고 관계가 일순간에 멀어지는 경우가 반복되며 언젠가부터 낯선 이를 만날 때면 입을 굳게 다물게 되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나 또한 말 한마디 나눠보지 않은 상대에 대해 멋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렇듯 추한 내 모습을 보게 된 날이면 나 자신이 너무 싫고, 이런 내면을 가진 주제에 요가를 하고 있다 진정 말할 수 있는가 반성도 됐다. 왠지 저 사람은 나랑 안 맞을 거 같아. 마음속으로 품은 그 한 줄의 선입견이 관계의 가능성을 닫는 행위란 걸 깨달았다. 그리고 결론 내렸다. 누군가의 질문에 대해 솔직하게 답하는 내가 문젠가. 그저 호기심에 다가왔다 사라지는 일부 사람들의 가벼운 마음이 잘못 아닌가.



그렇게 마음먹으니, 교육생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점점 벽을 쌓지 않게 됐다. 다행히도 인근에 거주하는 교육생과 요가원을 오가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그분과 가까워지니 다른 교육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한결 편해졌다. 문득 얼마 전의 일이 떠오른다. 수련을 가기엔 너무 꿉꿉하고 비도 산발적으로 내리는 날이었다. 다행히 게으름과의 전쟁에서 승리해 매트를 들고 수련실에 들어갔는데, 반가운 얼굴들이 있었다. 바로, TTC 동기들. 반가움에 나도 모르게 “수련 끝나고, 다 같이 점심이나 먹을래요?”라 물었는데, 모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우리는 한참을 먹고, 떠들고, 웃었다. 본업은 다들 제각각이었지만, ‘요가’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으니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우리는 다음 교육 시간 때 요가원에서 프로필 사진을 찍자고 약속했다.


요가 프로필 '하누만아사나(hanumanasana)'


약속 당일, 우리는 원장님의 달콤한 휴식을 방해(?)하며 신명나게 사진을 찍었다. 각자 마음에 품어온 동작을 취하면서. 내가 입은 옷은 자신의 연분홍색 매트 위가 더 잘 어울린다며, 매트를 선뜻 내주곤 마치 아이 돌보듯 옷매무새를 정돈해준 사람. 그리고 자신의 손이 멍든 지도 모른 채 사진 속 멋진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핸즈온을 기꺼이 해준 사람.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따뜻하게 지켜보며 화면에 예쁘게 담아준 사람. 이 모든 이들이 이제는 나의 소중한 도반이 되었다. 교육 초반 때처럼 내가 입도 마음도 닫고 있었다면, 이 사람들을 다 잃었을 수 있다 생각하니 지금의 상황이 너무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작가로서 일을 하게 되면서, 인연을 많이 만드는 게 귀찮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많지도 않은 지인들도 제대로 챙기지 못해 자연스레 멀어지는 삶을 살고 있는데, 새로운 인연까지 감당하기엔 너무 벅찼고 한편으론 관계에 있어 또 다시 상처를 받을까 두렵기도 했다. 근데 그 생각 또한 오산이었다. 새로운 인연들 속에서 너무나 밝게 웃고 있는 나를 본다. 요가 수련을 하며 나는 그 누구보다 나 자신에 대해서만큼은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다. 나는 아직도 나란 사람을 잘 모른다. 그러니 그 누구에 대해서도 마음대로 판단하지 말자. 먼저 대화부터 천천히 나눠보자.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차도 마시고 맛있는 식사도 함께 하자. 이후 그 관계 때문에 웃게 될지, 울게 될 지는 하늘의 뜻에 맡기는 거다.

keyword
이전 17화#16. 친구 아닌 친구 같은 '요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