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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빈 Nov 15. 2019

#34. 시간 여행을 하다, 몬트리올(2)

Chapter2. 얼렁뚱땅, 요가 여행

요가 체어에 다리를 올려놓고 눈을 감고 누워 있던 그때, 귓가에 프랑스어가 아닌 영어가 들렸다. 실눈을 살며시 뜨니, 선생님께서 내 어깨와 가슴을 부드럽게 터치하며 다시 한 번 천천히 "Relax, Deep breathe"라 말씀하셨다. 이완하고 ‘있는 척’ 누워있는 나를 알아챈 것이다. 다시 눈을 감고 몸의 긴장을 완전히 내려놓던 그 순간, 선생님의 부드러운 터치와 곁에서 되뇌는 그 말이 왠지 모르게 고마웠다. 짤막한 그 말이 그 날의 나에겐 “너무 긴장 하지 마. 걱정도 하지 마. 지금은 그래도 되는 시간이야.”란 말 같아서.
 

일반적으로 한국의 요가원에선 리스토러티브 요가 수련을 찾기 어렵다. 전문 선생님도 적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데 있는 듯하다. 요가 수련에 입문하는 분들은 다이어트나 땀 흘리는 ‘운동’을 목적으로 요가원을 찾고, 그들 대부분은 가만히 이완하는 자세를 취하고 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비용 대비 효용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또한 정적인 그 시간 자체를 못 견디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기 때문에, 요가원에서도 리스토러티브 요가 수련에 시간 할애를 많이 하지 않는 것 같다. (*보통의 빈야사 요가 수련 뒤에도 10분 정도 사바아사나 시간을 가지며 균형을 회복하는 게 좋은데, 10분이나 누워 쉬냐며 불평하는 사람이 많아 일반 수업 시간 내 사바아사나는 3~5분 정도면 족하다는 말을 선생님들로부터 종종 듣곤 한다.)


캐나다 몬트리올의 요가원 'Ashtanga Yoga Montreal’


하지만 긴 시간 요가 수련을 이어나가보니, 분명 필요한 시간이 바로 이완하는 시간인 듯싶다 ‘restore’라는 어원 따라, 다시금 몸을 원래의 상태로 회복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할 때면 새벽엔 마이솔 수련을 하고, 일정을 마친 오후엔 리스토러티브 요가 혹은 인요가 수업을 듣곤 한다. 몬트리올은 요가에 익숙하지 않은, 평소에 가만히 있는 걸 못 견디는 엄마와 함께였다. 다행히 하루 이틀 지나니 엄마도 스스로 도구를 활용해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었다. 그를 곁에서 보고 있자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엄마에게도 이 여행이 진정한 휴식이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날, 수련을 마치고 나온 길엔 부슬비가 내렸다. 여행을 떠나온 지 열흘 만에 만난 비가, 코끝을 스치는 익숙한 냄새가 반가웠다. 내일까지 비가 이어진다는 예보를 확인한 뒤, 다음날은 이번 여행의 ‘일요일’로 정했다. 나는 무위도식의 ‘일요일’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다. 멍하니 드러누워 TV를 보고(좀 더 정확히는 리모컨으로 채널을 계속 돌리는 행위가 맞겠지만!), 배가 고프면 일어나 먹고, 그러곤 휴대폰을 들여다보다 졸리면 다시 누워 자고.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완전하게 멀어진 하루. 누군가에겐 그저 낭비처럼 소비되는 그 하루가 나는 참 좋다.


캐나다 몬트리올의 미술관 'Montreal Museum of Fine Arts'


열흘 만에 찾아온 ‘일요일’이지만, 특별할 건 없었다. 느즈막이 일어나 갓 지은 흰 쌀밥에 식사를 하고, 환기를 시킬 겸 거실 창을 활짝 열어 창밖의 빗소리를 배경삼아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봤다. 서울 살이에 지친 주인공이 고향에 내려가 삼시세끼를 정성스레 해먹으며 심신을 위로하고 삶의 균형을 회복하는 이야기. 영화를 보는 내내 이번 여행이 나에게도 비슷한 의미가 아닐까 생각했다. 2년간의 회사 생활 동안 8편의 드라마 기획에 참여하며 많은 배움도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마음 상하는 일이 많아졌고 내 작품에 대한 갈증도 심해져 일을 정리하고 떠나왔기 때문이다. 여행이 끝날 무렵,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다보니 영화도 끝이 났다. 뒤를 돌아 창밖을 보니 다행히 비가 멈춘 오후. 우산 없이 요가원에 가도 되겠구나. 그렇게 나의 ‘일요일’도 별일 없이 지났다.
 

몬트리올에서의 마지막 날은 몬트리올 미술관에 들렀다. 좋아하는 르누아르의 그림은 딱 2점이라 다소 아쉬웠지만, 떠나는 그 날이 피카소의 특별전시가 시작되는 날이라 운이 좋다 생각했다. 피카소는 아프리카 미술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고, 그때부터 그의 미술 방향성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큐비즘’이다. 전시는 큐비즘 발전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하면서도,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아프리카에 대한 선입견과 무관심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었다. 기괴하게만 느껴졌던 피카소의 작품에 담긴 따뜻한 시선을 알게 되어 감사했고, 나란 사람은 선입관 때문에 얼마나 많은 것을 놓쳤었는지 다시금 생각해본 하루. 그렇게 버스를 타고 토론토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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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주에 캐나다 토론토 편이 이어집니다.

<얼렁뚱땅, 요가 강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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