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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빈 Dec 27. 2019

#40. 눈물이 왈칵 쏟아진 날, 뉴욕(5)

Chapter2. 얼렁뚱땅, 요가 여행

매일 같은 곳에서 일상을 살면서도 특별히 기억에 오래 남는 순간이 있다. 하루하루가 지루하게 반복된 학창 시절, 교복을 입고 일정한 시간에 등하교를 했던 그 시절을 돌아보면 유난히 떠오르는 날이 있다. 고등학교에 넘어갈 중요한 내신 시험이 다 끝난 뒤, 다소 어수선했던 중학교 3학년 교실 안. 칠판 옆에 놓인 작은 TV속에선 뉴욕에 테러가 발생했다는 긴급 뉴스가 나왔다. 세상 떠나가라 재잘대던 나와 친구들 일순간 조용히 숨죽이며, 보고도 믿기지 않는 그 상황을 꽤 오랜 시간 지켜봤다.
 

우연찮게도 이듬해 여름 나는 그 현장에 다녀올 수 있었다. 무너진 건물, 아니 그 구역을 둘러싼 대형 펜스와 주변에 놓인 희생자들의 사진, ‘보고 싶다, 사랑 한다.’는 메시지, 그리고 수북이 놓인 꽃들. 뉴저지 숙소에서 이곳에 오기까지 쉼 없이 떠들던 나는 그 앞에서 또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모습을 한참 지켜보던 아저씨는 내 손을 붙잡고, 이내 식당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던 기억이 난다. 나 역시 그 이후, 이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또 지워지며 어느 순간엔 까맣게 잊고 살았다.


미국 뉴욕의 뮤지엄 'National September 11 Memorial Museum'


그렇게 다시 10여년이 흘렀다. 요가 수련 겸 뉴욕에 한 달을 머물기로 정한 뒤부턴 이상하리만큼 그에 대한 기억이 다시금 선명해졌다. 그리고 궁금했다. 과연, 어떤 모습으로 바뀌었을지. 순식간에 폐허가 된 그 자리에 다시금 멋지게 세워진 월드트레이드 센터와 대형 추모 분수, 9.11 메모리얼 뮤지엄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뉴욕에 도착한 다음 날, 엄마와 함께 월드 트레이드 센터 꼭대기에 올랐었다. 천천히 한 바퀴 둘러보면서도 허드슨 강을 둘러싼 맨하탄 보단 코앞에 설치된 두 개의 대형 추모 분수에 유난히 눈이 갔다. 결국, 내려와서 꽤 오랜 시간 분수대 테두리에 새겨진 희생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읽어 나갔다. 실은 그 마저도 힘들어, 9.11 메모리얼 뮤지엄엔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느덧 뉴욕에 머무는 마지막 날. 정해진 일정은 사라스와티 조이스 선생님의 워크샵 말고는 없었다. 그녀의 옴 소리에 눈물을 왈칵 흘리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문득 다시금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안가면 후회할 것 같았다. 그렇게 용기 내 9.11 메모리얼 뮤지엄에 들어갔다. 당시 희생자들이 지니고 있던 물품, 무너진 건물의 잔해, 테러 비행기의 파편 등까지 모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었다. 그날의 공기마저도 완연히 머금고 있는 듯 한 공간 한 편엔 테러 희생자들을 국가별로 검색해 볼 수 있는 대형 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한국인 희생자는 총 13명. 그들 개개인의 사진부터 출생연도, 언제 미국에 왔는지, 평소 어떤 걸 좋아했는지, 직업은 무엇이며 왜 그날 그 시각에 이곳에 머물러 안타까운 희생을 당했는지. 이 모든 것들을 상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 기록의 과정에선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이 있었을까 짐작도 되지 않았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월드 트레이트 센터 내 입주한 회사에 근무하는 분들이었고, 컨퍼런스 참석차 들렀던 사람들, 심지어 납치된 비행기 안에 있던 분도 계셨다.


미국 뉴욕의 뮤지엄 'National September 11 Memorial Museum'


이들의 안식을 기도하며 돌아 나오는 길엔 2001년 9월 11일, 그날의 하늘 색깔을 기억하고자 만든 미술 작품을 봤다. 대형 벽면에 다양한 색감의 종이가 붙어있었는데, 한 발자국 떨어져 바라보니 너무도 아름다운 하늘이었다. 결국, 참았던 눈물이 또 다시 왈칵 쏟아졌다. 이 사건 전에도, 후에도 계속해서 믿기지 않는 일들이 펼쳐졌으니까. 아픔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 이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또 다른 비극을 막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한 달간의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곰곰이 나란 사람을 돌아봤다. 아픔을 오래 기억하고, 그 아픔을 심신 깊숙이 새긴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 궁금한 사람이 바로 나구나. 그래서 지금까지 썼던 작품들 모두가 결국 인간이 지닌 상처와 이를 극복하는 방식을 다룬 거였구나. 나도 몰랐던 나의 방향성이 조금씩 잡혀갔던 날들. 그 날들 중 하나가 2018년에 뉴욕서 요가 수련을 하며 쉬어간 한 달간의 안식일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방향성을 잊지 않고 살며, 쓰고자 한다. 나만의 방식으로 비극을 막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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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2장: 얼렁뚱땅, 요가 여행>편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엔 <3장: 얼렁뚱땅, 요가 강사>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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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렁뚱땅, 요가 강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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