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르면 알게 되는 것들.

2장 46절

by 김은희
요가 쑤뜨라 2장 46절
STHIRA SUKHAM ASANAM.
좌법(아싸나)은 확고하고 편안한 자세다.


47. 불안정한 경향을 자연스레 줄임으로써(의지적인 노력 없이 저절로 됨) 그리고 무한에 대해 명상함으로써 자세(좌법)는 완성된다.

48. 그후로 수행자는 이원성(양극단적인)에 의해서 방해받지 않는다.

49. 그것[확고한 자세]이 얻어지게 되면, 들숨과 날숨의 움직임들이 조절되어야 한다. 이것이 호흡법이다.

50. 호흡작용은 숨을 내쉬거나 들이쉬거나 혹은 멈추거나 한다. 호흡은 공간, 시간 그리고 횟수에 의해서 조절되며 길거나 짧다.

51. 내적이고 외적인 대상에 집중하는 동안에(호흡을 멈추는 동안) 일어나는 것이 쁘라나야마(호흡법)의 네번째 단계이다.

52. 그것의 결과로, 내적인 빛(지혜)을 가린 장막이 파괴된다.

53. 그리고 마음은 집중을 위해 적합하게 된다.

54. 감각들이 스스로 대상으로부터 물러나고 모방한다. 그것처럼 마음-재질의 본질을 모방할 때, 이것이 쁘라뜨야하라이다.

55. 그런 다음 감각들에 대한 최고의 통제력이 따른다.


아싸나는 편안하고 안정됨을 가져오는 자세를 의미합니다. 어떤 자세든지 이러한 편안함과 안정감을 가져오면 아싸나입니다. 만일 당신이 한가지 자세를 성취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이것은 쉬운 것같이 들립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자세들에서 우리는 편안하고 안정됩니까?- 편안한 자세는 쉽게 얻어지지 않습니다. 육신과 정신의 독소들은 뻣뻣함과 긴장을 생기게 합니다. 우리를 뻣뻣하게 하는 어느것도 또한 우리를 방해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유연한 의지라면 우리는 결코 중단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못하겠다.


아이들을 키우며 요가를 하지 못하는 날이 늘어났다. 아니, 요가 뿐 아니라 어떤 것에도 시간을 할애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는 핑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잠시라도 쉬는 시간이 생기면 요가 보다는 곧장 누워야했다. 더이상 체력을 소진할 수는 없었다.


어릴때부터 체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편식이 심하고 먹는 양도 적었다. 엄마는 아직도 열살때 까지 나를 쫓아다니며 밥을 먹였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하신다. 그러다 보니 자연적으로 나는 늘 작은 아이, 마른아이였으며 잠이 없고 예민했다. 한마디로 키우기 참 힘든 스타일이었다. 너 같은 딸 낳아라 라는 말은 누가 정의한 과학인건지 나는 꼭 나같은 딸을 낳았다. 아들 키우는 것도 너무 힘들었는데 꼭 나같은 딸은 더 힘들었다. 그래서 요가는 또 멀어져 갔다.


체력이 없어.


그때의 나는 몸도 마음도 뻣뻣했다.

굳은 몸을 일으킬 유연한 의지가 없었으며, 굳은 의지(마음)를 깨부술 유연한 몸이 없었다.

어느쪽도 유연함과는 거리가 멀어있었다.


살아 있다는 것이 다행인 것은 어떻게든 시간이 흘러 간다는 것이다. 사방이 막힌 큐브 속에 꼬깃꼬깃 구겨져 들어가 있던 나는 꼭 나 닮은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했다. 다시 요가를 시작했고,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유연성도 되찾았다. 몸이 유연해지자 자연히 마음도 유연해지기 시작했다. 조금 흐트러진 집안 살림도 용납할 수 있게 되었으며 내가 정한 틀 속에 들어 맞아야만 직성이 풀렸던 육아에 있어서도 한결 너그러워졌다.


모든 것이 꼭 내가 정한대로 되는 것은 아니더라.


그런 마음을 갖고 나니 많은 것이 수월해졌다. 아이들 걱정에 절대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혼자 여행하기도 가능해졌고, 가족들의 응원을 받으며 프라하 현지에서 요가 프라하를 배우는 시간까지 얻었다. 스스로 만든 바운더리를 조금씩 깨내고 더 넓은 곳을 마주하게 되자 나의 요가는 예전과 달라졌다.



아사나.


요가를 쉬게 되었을때 가장 불안한 것은 그때 그 아사나가 안되면 어떡하지? 하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 10년전에 아주 쉽게 되었던 아사나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또 그때 되지 않았던 아사나가 되기도 한다. 몸은 늘 불안정하고 흔들린다. 그것이 아주 당연한 것이었는데 예전엔 미처 알지 못했다.


몸과 마음은 상호작용 한다. 몸이 유연해질때 비로소 마음이 유연해 지고, 유연한 마음을 가질때 몸은 언제든 유연해 질 수 있다. 후자의 통찰을 얻는 것이 아마 요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아이들을 키우며 요가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때는 모든 것이 뻣뻣해져 고된 마음만이 가득 했는데 요가를 다시 하며 어느정도 유연한 마음을 갖고 나자 요즘- 코로나로 인해 다시 요가를 하지 못하는-의 상황에서도 다시 하면 되지라는 생각이 나를 지탱해준다. 특히 아사나에 대한 두려움은 말끔히 사라졌다. 아사나에 집착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나를 더욱 더 요가롭게 한다. 자세는 언제나 흔들릴 수 있고, 그것을 다잡는 것은 의지라는 것을 알기에 더는 불안하지 않다.



2장 46절.

요가 쑤뜨라에 '아싸나'에 관해 언급한 단 한단락 언급 된 것은 요가에서 아사나가 덜 중요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아사나 너머에 있는 삶의 중요한 것들을 알아차리기 바란다는 일종의 메세지인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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