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 대하여
바닷가에 앉아 저 멀리 올곧게 뻗어 있는 지평선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저 지평선 건너편에는 무엇이 있을까.
내가 알 수 없는 세계가 펼쳐질까. 가보지 못한 곳이 있으려나.
의미없이 쳇바퀴가 굴러가듯 평화로운 상상을 이어가던 중 돌연 바람이 세차게 불어 닥쳤다.
세상을 반으로 갈라놓은 선을 응시하던 시선은 바람에 너울 치는 바다로 향했다.
나는 곧 일정한 주기로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는 파도를 보며 감상에 빠졌다.
파도는 바람의 작품이었다.
흐름과 너울을 만들어내며 수면 아래 펼쳐진 미지의 세계를 끊임없이 순환시키고, 환기시키고 있었다.
수면은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었지만 그 아래 세상의 평화를 지켜주고 있던 건 아닐까.
그래, 바람은 고요를 원하는 바다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게 아니라
어쩌면 바다가 포용하고 있는 세상을, 바다의 진정한 의미를 건강하게 지켜주고 있는지도 몰라.
바다를 향했던 시선은 천천히 나의 마음을 향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누군가의 바다에 파도를 일게 만들어
그 사람의 온전하고, 건강한 세상을 펼쳐 나아갈 수 있도록 함께할 수 있는 사람.
다른 세상으로부터 배웠듯이 사랑의 진정한 의미는 헌신에 있음을 몸소 실천할 수 있는 사람.
조건없는 위로를 얻기 위해 찾은 바다는 돌연 나에게 새로운 숙제를 안겨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숙제를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사랑에 있어서 만큼은.
당신의 바다에 너울을 일게 만들 수 있는 그런,
그런 바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