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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작가 May 31. 2018

미치도록 착한 사람이고픈, 위선자

나는 결코, 착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 보이고 싶은 것일 뿐.

저를 너무 좋게 봐주시는 거 아닌가요?


사람들이 나를 보는 평가는 언제나 후하다. 성실하다, 바르다, 착하다, 진중하다 등등. 부모님 속을 한 번도 썩인 적 없었고,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도 마쳤다. 세상의 시선에 어긋나지 않기 위함도 있었지만, 딱히 어긋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말답게 하루를 살았다. 그저 사람들과 적당한 합의점을 지키며 살았을 뿐인데, 어느새 나는 새장 속에 들어와 있었다.


- 나는 성실하지 않다. 사실, 게으르다.

- 나는 착하지 않다. 사실, 이기적이다.

- 나는 진중하지 않다. 사실, 또라이다.


나는 나를 잃어버렸다. 나에게 날개가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날개의 존재를 깨달았을 땐, 이미 새장에 갇힌 뒤였다.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좁아졌고, 그 속에서 사는 법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계속 가면을 쓰고 사는 수밖에. 그런데 나를 흐트러 놓고 싶다는 사람을 만났다. 바로 당신이다.




- 뭐해 지금?


친구랑 문자 중이었어. 그렇게 친한 친구는 아닌데, 매번 먼저 안부 물어봐주는 친구 있잖아.


- 고맙네. 그렇게 찾아주는 사람들이. 그 친구는 어떤 친구인데?


내가 재작년에 교통사고 당했었다고 말했었나? 그때 병원에 열흘간 입원했었거든. 그 병원에는 대부분 장기간 입원 중인 사람들이었지. 짧게는 석 달, 길게는 몇 년. 나는 잠시만 있다가 퇴원할 사람이니까 누구랑도 엮이기 싫었어. 늘 커튼을 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앞 침대 여자, 그니까 이 친구가 말을 걸더라고?


‘몇 살이에요?’


다짜고짜 서열정리부터 하더니 계속 말을 붙이더라고. 알고 보니 3년 전 사고로 하반신 불완전 마비가 와서 2년째 병원생활 중인 친구였어. 조용히 병원 생활하다가 퇴원하려 했는데, 이상하게 그 친구가 말을 걸면 간단히 넘길 수가 없더라. 나도 모르게 그 친구를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봤던 것 같아. 나는 그 병원이 잠깐 머물다 나갈 곳이지만 그 친구한테는 집이나 다름없는 곳이었으니까.


그래서 같이 병원 근처에 있는 카페도 가고 식당 가서 고기도 사 먹고 했지. 또 하나 알게 된 건, 휠체어 미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더라고. 세상 모든 게 다 불편한 것들 투성이고. 뭐가 이리도 턱이 많고 움푹 패인 곳이 많은지… 두 다리 건강한 나는 전혀 몰랐던 새로운 세상이었어. 그 순간, 그 친구가 참 외로웠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 당신 마음씨가 참 예쁘다


끝까지 들어봐. 열흘 후 퇴원하는 날, 나는 새벽에 도망치듯 나왔어. 함께 지낸 짧은 시간 동안 나름 정이 많이 들어서 자주 만나러 오겠다고 했었지만 나는 사실 알고 있었어. 한 번도 가지 않을 거란 걸. 그때 나는 왜 그런 말을 한 걸까? 아마 매정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 그 뒤로 딱 한 번 찾아간 적이 있는데, 그것도 내 말이 거짓말이 아니란 걸 증명하기 위해서 간 거였어. 그 친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나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 친구는 오늘처럼 나한테 간간히 연락 주거든. 근데 난 이게 불편해. 어떤 부담을 주는 게 아닌데. 만나자고, 오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연락만 할 뿐인데… 그냥 맘 한켠이 켕기는 거지. 내가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해서 불편한 거라고. 그 친구한테서 연락이 올 때면, 그 친구 이름 석자가 핸드폰에 뜨는 순간, 내가 나쁜 사람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는 것 같아서 불편한 거 같아.


- 나라도 그럴 것 같아. 근데 현실적으로 자주 만나는 게 어렵다는 걸 그 친구도 이해해주지 않을까? 지금처럼 연락하고 지내는 것만으로도 친구가 만족할 수도 있잖아.


연락도 자주 못 받았었어. 정확히 말하면 안 받았지. 솔직히 좀 귀찮았어. 내 머릿속에서 그 친구는 '고작 열흘 동안 잠깐 이야기 나눴던 친구'였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녔지. 연락한다고 해도 이게 무슨 소용인가? 찾아갈 것도 아니고, 분명 이 관계는 오래가지 않을 건데. 대화하는 그 순간에만 보이는 애매한 관심으로 그 관계가 얼마나 오래갈까? 앞으로 변하는 건 없을 거야. 나는 그 친구를 만나러 가지 않을 거야. 만나러 간대도 전처럼 내가 착한 사람이라는 걸 보이고 싶어서 일 테지. 그게 그 친구가 됐건 내가 됐건 간에 말야.


근데 힘든 건 지금 이런 순간이야. 이기적인 내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많이 슬퍼.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주려 할 때마다 내가 참 위선적이다란 생각도 해. 난 이런 사람이 아닌 줄 알았어. 그런데 나도 똑같더라. 내가 욕하던 그런 사람들. 겉과 속이 다른?


- 사람 다 그래~ 나도 그렇고.


그래, 나도 늘 그렇게 말하며 위로하곤 했었어. 그 말 밖에 해줄 말이 뭐가 더 있겠어. 사람 다 그래라고 말했지만, 정말 그 말에 진심을 담아서 했는가 하는 의문도 들고, 조금 가볍게 한 건 아닌가, 그 말의 의미를 알긴 하는가. 그저 통찰력 있는 어른처럼 보이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이 마저도 사람들 의식해서 한 건 아닐까. 뭐가 솔직한 걸까. 하는 혼란들이 연이어 터져 나와. 그냥 까놓고 말해서, 너무도 착하고 싶은 거지. 나란 사람이 말야.


나는 그냥, 착한 척하는 싸가지 없는 년이었던 거야
무지하게 착하고 싶었던 거지




그렇게 대화를 끝내고 멍하니 침대에 몸을 눕혔다. 담담하게 자신의 이중성을 고백하는 당신은 내게 당황스러움 그 자체였다. 나는 그럴 때 또 착하게 대답해줘야만 하니까. 그게 내가 갖고 있는 최선의 매뉴얼이니까. 분명 나도 누군가에게 모순적인 순간이 있었을 것인데. 굳이 그런 상황들을 깊이 들여다보려 한 적이 없었다. 그런 불편한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일수도 있겠고, 머리 아프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도 있었다. 언제쯤이면 갑갑한 새장에서 나갈 수 있을까. 이 날개를 자유롭게 펼칠 수나 있을까.


세상엔 정답이 있다. 선과 악의 구분이 분명하다. 선에는 박수치고 악에는 야유한다. 사람들에게 인정과 시선, 사랑 그리고 관심을 받기 위해 나는 나 스스로를 새장 속에 가뒀다. 정답만이 존재하는 새장 속엔 선으로 가득할 줄 알았는데… 목이 조여 온다. 숨이 막힌다. 당신이 나를 어서 여기서 구해줬으면 하고 바라본다.


위선은 내가 자초한 것이지만,

괜히 세상을 탓해본다.


가면은 나만이 벗을 수 있지만,

당신이 벗겨주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이마저도 나는 죄가 없다고 울부짖는 마지막 보루다.




@YogurtRa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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