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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작가 May 17. 2018

오직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마음을 얼마나 잘 전달하고 있는 것일까.




어느 연인이 남자의 동창 모임에 나갔다.

졸업 후 처음 나가는 동창 모임이라 남자는 적잖게 긴장했고 여자가 함께 가주지 않는다면 가지 않겠다고도 말했다.



남자 이야기:

남자는 여태껏 동창 모임에 나간 적이 없었다. 바빠서도 있었고, 관심이 없던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낯선 곳에서 벙쪄있기만 할 자기 모습이 눈에 선해 가기 싫었다. 굳이 시간 내서 '어색한 바보'가 될 필요는 없으니까.


그럼에도 남자는 여자에게 동창 모임에 가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남자는 여자 손을 붙잡고 있노라면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았으니까. 또 제 아무리 초라한 모습이라도 언제나 내 편인 사람과 함께라면 잠시나마 빛날 것 같기도 했다. 그것이 착각일지라도.


변호사, 의사, 교수 등

성공의 기준이 권력이나 재력 같은 것이라면 남자의 친구들은 하나 같이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남자는 명함을 건네기도 무안했더랬다. 하필이면 지갑 속에 몇 장 남지 않은 꼬깃한 명함일게 뭐람. 그래도 함께 와준 여자를 바라보며 든든해했다.


여자는 이 자리가 즐거웠는지 웃느라 바빠 보였다. 여자의 한 마디에 친구들은 자지러지듯 웃어댔다. 순간 남자는 초라함을 느꼈다. 무대 위 자기 위로만 조명이 켜지지 않은 듯, 자신의 존재감은 어디에서고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여자에게도. 


남자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나 하고 뒤돌았을 때, 역시나 여자는 남자의 빈자리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그 길로 집으로 돌아갔다.



여자 이야기:

여자는 남자가 동창회에 같이 가자 제안했을 때 뛸 듯이 기뻤다. 존재를 인정받는 기분. 자신이 정말 이 사람의 '사람'이구나 하는 기쁨.


여자는 남자를 위해 꽃단장을 했다.

내 남자가 기죽으면 안 되니까, 화장을 곱게 하고 이 날을 위해 산 새 옷도 꺼내 입었다. 여자는 남자를 위해 어색함 없이 남자의 친구들과 어울리려 노력했다. 남자의 친구에게 점수를 따기 위해서랄까. 이 남자가 얼마나 괜찮은 여자와 만나고 있는지를 증명해보이기 위해 그날따라 유독 성격 좋고 웃음 많은 여자로 변신했다. 편안했다면 거짓말이다. 작은 눈짓까지도 모두 남자를 위한 사랑이었으니까. 얘기하고 웃고, 웃고 또 웃고.


그런데 왜 일까. 남자의 표정이 좋지 않다. 별일 아니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더랬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 얘기하다 보니 남자의 자리는 비어있었다. 남자를 찾기 위해 그곳을 빠져나왔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남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전화 연결 조차 되지 않는 그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우산이 없었던 여자는 비를 맞으며 집까지 한 시간을 걸었다. 여름이 코앞까지 다가왔대도 밤비는 여전히 차가웠다. 물을 뚝뚝 흘리며 집 문을 열었는데, 남자가 소파에 누워있는 걸 보았다. 오늘 하루 동안 자신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계속 여자 이야기 :

여자는 남자를 흔들어 깨웠다. 본인을 빗속에 방치한 남자가 원망스러웠고 그 감정은 남자를 보자마자 분노로 폭발했다. 이유를 따져 물어봤자 소용없다는 걸 여자는 잘 알고 있었다. 남자는 쉽게 입을 열지 않았고 여자의 다그침에 외면으로 일관했다. 여자는 남자의 답답한 침묵에 남자를 끊임없이 몰아붙이는 듯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표출된 본인의 외로움이었다. 


나를 좀 사랑해줘.


남자를 위해 애쓴 자신의 사랑이 외면당한 순간, 여자는 사랑받지 못하는 불행한 여자가 됐다. 다른 것은 필요 없었다. 제어하지 못할 여자의 분노도, 남자의 진심 어린 고백이면 충분했다. 이것을 표현하는 순간 정말이지, 자신이 초라해지는 것 같아 대신 온몸으로 울부짖었다. 



다시 남자 이야기 :         

어두운 거실, 멍하니 소파에 몸을 눕혔다. 생각해보면 여자는 어딜 가나 주목받는 존재였다. 자신과는 다르게 분위기를 주도할 줄 알고, 사랑받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분명 그걸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제껏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가 이번에 그곳에 갔던 건, 그녀와 함께라면 괜찮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용기 덕분이었다.


남자에게는 여자가 있었다. 

자신의 부족한 면을 채워주는 여자, 자신의 어두운 면을 밝혀주는 여자 혹은 숨겨주는 여자. 이 여자의 손을 잡고 있노라면 자신은 더 이상 초라하지 않았다. 다시 가만히 생각해본다. 남자에게 여자는 분명 그런 존재였다. 그 사실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두 시간 전, 그곳을 떠올려본다. 

생기 넘치게 환했던 그녀를, 잘난 남자들에게 미소를 건네던 그녀를 그리고 그녀 곁에 한없이 작아지던 자신을. 그랬다. 남자는 더 이상 그 모습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을 예상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여자에게 많은 것을 바란 것은 아니었는데 하며 끊임없이 되뇌었다.


나를 좀 안아줘.

남자가 보낸 신호는 얄궂게도 계속 빗나갔다. 여자에게 닿지 못한 신호는 허공을 떠돌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깊은 좌절감에 빠진 남자는 지금 이 소파에 몸을 눕히게 되었다. 




여자가 비 맞은 채 돌아왔다. 남자를 다그치는 여자에게 속마음을 말할 순 없었다. 그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일종의 자기 방어랄까. 더 이상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여자와 남자는 서로 알 수 없는 수렁에 빠진 채 한동안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마음을 얼마나 잘 전달하고 있는 것일까.




@YogurtRa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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