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작가 May 24. 2018

상처 앞에 영원한
피해자도, 가해자도 없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돌고 도는 세상

그와 헤어졌다. 

나는 오늘 누군가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세 시간 전          

남: 이유가 뭐예요? 내가 뭐 잘못했어요? 

여: 아뇨, 없어요. 이유가 없어서 저도 슬퍼요. 미안해요. 


나에게 무한정 환히 웃어주던 그에게 난데없는 상처를 주었다. 그 상처엔 이유가 없었다. 정말이지 이유를 정말 찾고 싶었다. 우리가 헤어져야만 하는 이유가 뚜렷하기를 바랐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이유가 있어야만 내가 그나마 덜 ‘나쁜년’이 되기 때문이다. 불현듯 지금과 비슷했던 그때가 떠올랐다.


몇 년 전 

여: 이유가 뭐야? 내가 뭐 잘못했어? 

남: 아니, 없어. 이유가 없어서 나도 슬퍼. 미안해. 


한때의 사랑에게 이유모를 외면을 받은 적이 있다. 잘 걷다가 어디서 날아오는지 모르는 돌멩이에 맞고 쓰러진 느낌. 차라리 어디서 날아오는지 그 방향이라도 좀 알았으면 괜찮았을까. 이유를 모르기에 더 아팠고 이렇게 밖에 달리 해줄 말이 없다는 그 사람이 미웠다. 


단지 이해하고 싶었다.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면 아픈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들 것 같았다. 아니다. 사실 이유를 안다고 해서 아픈 마음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알고 있다. 그저 원망의 대상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사람의 입에서 저런 말을 하게 만든 장본인이 누군지. 그런데, 나는 끝까지 몰랐다. 그 이유는 오늘에서야 알았다. 


버스커버스커 2집 <처음엔 사랑이란게> MV



너를 그만큼 사랑하는 것 같지 않아



나는 그에게 ‘어디서 날아오는지 모르는 돌멩이’가 돼버렸다. 불현듯 툭 튀어나온 묵직한 한 방에 그때 내 마음을, 지금 그 사람의 마음을 덜컹하게 만들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은 항상 논리적일 수 없다. 이별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명확한 원인은 없대도 결과는 뚜렷하다. 상처받은 피해자와 상처를 준 가해자가 존재한다.


몇 년 전 나는 나에게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따져 물었었다. 당신을 이해하려야 이해할 수가 없다고, 뭐가 그리 힘들고 어려우냐고 눈물로 소리쳤다. 한동안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는데(마지막 남은 자존심일까? 사실 이해할 수만 있다면 하고 싶었다) 뜻하지 않게 지금 그 사람이 떠오른다. 


당신이 그때 이랬느냐고. 

당신도 참, 많이 힘들었겠다고. 


그때 그 사람을 이해한다고 해서 지금의 내 행동이 용납될 수 있다는 건 아니다. 내가 그때 그 사람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때의 내 상처가 아프지 않게 되는 것도 분명, 아니다. 상처를 주는 쪽도, 받는 쪽만큼이나 아플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해서 지금 아파하고 있을 그 사람에게 되지도 않는 용서를 구하지도 않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당신도 나처럼 깨닫게 될 거라는 어설픈 훈계 따위도, 소용없다. 


다만 지금 말하고 싶은 건, 

영원한 가해자는 없고 

영원한 피해자도 없다는 것이다. 


피해자라고 생각하며 마냥 아팠던 나는, 시간이 흘러 다른 사람에게 같은 방식으로 돌팔매질을 했고 같은 얼굴, 이름표만 다른 가해자가 되었다. 상처 앞에 영원한 피해자도, 가해자도 없다는 사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여기는, 돌고 도는 세상이다. 



@YogurtRadio




이전 08화 오직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