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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작가 Jun 14. 2018

유난히 빛나는 사랑은 없다

어느 사랑이라고 유독 특별하고 빛나는 사랑이란 없다.

사랑의 시작은 늘 특별했다. 첫사랑이라고 해서 더 설레는 것이 아니고, 두 번째 사랑이라고 해서 능숙했던 것은 아니었다. 매 사랑의 설렜고 특별했으며,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모든 사랑이 시시해졌다.






1) 끝없는 대화 - A씨

한 사람과 나누는 모든 대화가 재미있을 수가 있을까? 당신과의 대화는 내게 마약 같았다. 모든 대화가 흥미로워 쉴 틈이 없었고 전화통화로 밤을 지새우는 날도 허다했다. 그런 우리를 증명해주듯, 함께 있을 때면 내려야 하는 지하철 정류장을 종종 지나치기도 했다. 왔던 길을 돌아가는 그 우스운 상황에서도 '설렘'만으로 가득 찼다면, 그것은 분명 사랑이었다.


흥미로운 대화를 했다고 해서 우리가 꼭 맞는 사람이란 건 아니었다. 어느 정도는 달랐고, 또 어느 정도는 비슷했다. 사실 비슷한 정도가 얼마큼 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대개는 비슷한 사람에게 끌린다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한 사람. 서로가 가진 무수한 차이점들은 흥미로운 대화거리가 되기도 했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가 있는 한. 성적인 캐미스트리라고 해야 할까? 호르몬이 우리에게 저지른 장난질로 당신의 모든 차이점들에 눈 감을 수 있게 된 것이다.



2) 나와 비슷한 사람 - B씨

- 지금 되게 좋지 않아?

- 맞아, 바람에서 여름 냄새가 나.

- ...!!! 맞아! 내가 그 생각하고 있다는 거 어떻게 알았어?


지금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을 타인에게 내보일 때는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 그게 부족할 시 상대방은 오해를 하기도 하고, 당황스러워도 하며, 간혹 불친절하다며 거리를 두기도 한다. 당신과 이야기할 때면 딱히 부연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척하면 척. 다짜고짜 "지금 되게 좋지 않냐"라고 물었을 때도 그렇다. 내가 기대한 반응은 '왜? 뭐가?' 내지는 침묵으로 일관함으로써 다음 말이 나오길 기다리는 정도랄까. 언제나 당신은 예상 밖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소울메이트라 불렀다.


소울메이트. 감성, 취향, 여타 모든 정서적 코드가 통하는 사람. 육체적, 에로스적인 사랑 없이도 충만한 애정을 나눌 수 있는 관계를 말한다. 당신 하고는 스킨십 없이도 행복함을 느꼈다. 자체만으로 고요했고 편안했다. 사람이 쉼터가 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당신이었다. 내가 당신이고, 당신이 나인 상태. 바닥까지 훤히 보이는 계곡물처럼 투명한 마음 덕에 예측이 가능한 사람. 덩달아 마음의 어떤 불안도 느껴지지 않는 평온한 상태. 우린 정말이지 '하나'였다.



3) 단 하나의 사랑 - C씨

몇 년이 지나도 당신은 늘 새로웠다. 이해가 되지 않았고 또 (할 수만 있다면) 이해를 하고도 싶었다. 내가 멍청해서 그런지 어찌 된 건지 제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결코 이해되지 않았던 사람. 그럼에도 발길을 돌릴 수 없는 순간은 지속됐고 나이만 먹어가고 있었다.  


죽일 듯이 미워 밤을 지새우던 시간에도 그 사람이 보고 싶어 첫 차를 기다렸다. 어스름한 새벽, 죽은 듯이 조용한 동네 정류장에서 덩그러니 앉아있었다. 그때 왜 그 단어가 떠올랐을까. '관성'. 처음의 운동 상태를 유지하려는 성질. 일상의 단어로 바꿔 말하자면, '습관' 정도가 되려나. 외부의 어떤 물리적 힘 없이는 나의 의지로는 도저히 멈출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건 아닐런지.


세상에는 간혹, 논리적으로 풀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런 점에서 당신과 나는 비논리적인 관계였다. 이유가 없었고 괴로움 속에서도 서로를 붙들고 울기만 했다. 머리로는 백 번이고 헤어졌지만 마음으로 당신을 놓지 못했더랬다. 이유가 없었고, 그게 언제까지고 지속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 예감은 적중했고 몇 년이 흘렀다.


드라마 <연애시대>



1-1) 끝없는 침묵 - A씨

며칠 전에도 먹었던 햄버거 두 개, 무질서하게 쌓아 올린 감자튀김. 한 입 크게 햄버거를 베어 물고 주변을 살핀다. 갈피 잃은 눈동자는 주변을 헤맨다. 이때 맞은편 앉아있는 사람은 이미 의미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저 주말 오후, 나와 같은 테이블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 정도?


더 이상 궁금할 게 없는 사람에게는 머무는 시선마저 박하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만 제외하고 모두들 무언가의 의미를 나누고 있다.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 많은 이야기들이 우리 주변으로 빠르게 쌓여간다. 사소함 마저도 흘려보내는 게 아쉬울 때가 있었는데. 분명 우리에게도 촘촘했던 시간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무엇이 이 사랑을 이렇게 만든 것일까. 서로를 잘 알고 있다는 자만? 손쉽게 다음이 예측되는 권태?


한쪽 턱에 손을 괴고 앉은 그의 모습. 그 자세를 하고 있을 땐 항상 표정이 없다. 생기 가득했던 시절을 지나 초점 없는 눈동자가 되다니. 우리를 스치는 모든 것들이 자극제가 되던 그 날, 나는 당신의 삶에서 여주인공이었는데, 지금은 지나가는 여자1에 불과할 때. 끝 모를 것 같았던 대화가 끝이 보이게 된 순간, 그 사랑이 빛을 잃어간다.



2-1) 나와 다른 사람 - B씨

- 우리 좀 비슷한 사람인 것 같아. 그래서 좋아 당신이.

- ...(확실해?)


비슷하다고 했다. 우리가 닮은 것 같다고 했다. 그 사람은 이 말을 우리 관계가 '그린라이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신호 정도로 여기는 것 같았다. 여기서 그린라이트는 연인이 될 수 있을까 없을까의 테스트를 앞둔 신호가 아니었다. 인생의 동반자가 될 자격 여부였다.


간혹 생각했다. 지구의 70억 인구 중 나와 비슷한 성질을 가진 인격체가 존재하지 않을까 하고. '또 하나의 나'를 만난다면, 또 그 사람이 나의 반쪽이 되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했다. 그런 점에서 당신과의 결과는 슬프다.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한때는. 엄밀히 말하자면 비슷한 거 7, 다른 거 3 정도였다.


지금도 그 비중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내가 아닐까 싶다. 작은 것에도 우리가 비슷한 존재라며 오두방정 떨던 그 시절(사실 그렇게 안 똑같음에도)과 암만 똑같은 걸 들이밀어도 그저 그런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당신이 누른 입력값에 다른 결괏값을 내놓은 건 나였다. 우린 다른 사람이라고. 그렇게 말함으로써 이 사랑이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었다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사랑을 시작한 이유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이별의 정당성을 찾는 사람. 참 비겁한 합리화다.



3-1) 그렇고 그런 사랑 - C씨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처음부터 논리란 존재하지 않는 관계였기에 끝을 상상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만병통치약처럼 여기는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나, '사람으로 잊힌다'는 말들은 내게 효과 없는 약이나 똑같았다.


사랑이 끝나는 건 한 순간이라는 말, 그 말은 틀렸다. 결단코 한 순간이 아니었다. 이별의 시점을 찾을 수 없었다. 안 끝날 것 같다고 생각했던 사랑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랑이, 서서히 지고 있다는 걸. 당신이 아파하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아팠다.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이렇게 무기력한 거구나. 이렇게 슬픈 거구나. 그때 알았다. 우리 사랑은 이걸로 종지부를 찍었다는 걸.


그만하자는 말을 수백 번을 했어도 굳건했는데. 또 그 말을 하는 와중에도 그 말이 빈 깡통일 뿐이라는 걸 알만큼 관계에 신뢰가 있었는데. 이별이란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았던 우리는 그렇게 이별을 맞았다. 이별과는 별개로 슬펐던 건, 세상 특별할 것 같았던 사랑도 마침표를 찍으니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랑이었단 사실. 길거리를 손잡고 지나는 여느 커플과 다르지 않았다는 걸. 그렇게 끝나버리면 특별했던 모든 의미를 잃어버린다는 걸. 그냥 그렇게.






모든 사랑은 특별했고 모든 이별은 아팠다.

이별 후 다시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아픔도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다른 특별함을 찾아 신나 한다.

 
이전의 사랑과 지금, 그리고 이후의 사랑이
조금씩 비슷하고 조금씩 닮았다.
다만 이전의 실수들을 만회하려 노력할 뿐이다.


어느 사랑이라고

유난히 특별하고 빛나는 사랑이란 없다.




@YogurtRa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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