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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작가 Apr 09. 2019

내일이 없을 것처럼,
오늘을 사는 제주 행원리 부부

제주도는 제주도였다. 바람 없이는 이곳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집 빈틈으로 바람이 머리를 들이밀고 들어왔다. 기어코 들어오겠다며 소리치는 아우성과 함께. 창밖에는 모든 것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풍차는 다른 날보다 빠르게 움직였고, 집들도 휘청이는 듯 보였다. 혼자 그 모든 소리를 듣고 있는 게 무서웠지만, 나는 무서워할 수 없었다. 집주인 대신 이 집을 지켜야 한다. 거실로 나와 코타츠 속에 발을 집어넣었다. 덜컹이는 창문 소리에 다리는 한층 노곤해진다. 무서움을 외면하려 글을 쓴다. 무슨 문장을 쓰는 건지 손이 바삐 움직인다. 드디어 오늘 밤 집주인 부부가 돌아온다. 






제가 민박집 손님 같네요. :)



지난밤 그녀가 돌아왔다. 지붕이 날아갈 듯 바람이 휘몰아치던 밤, 대문마저 쿵쿵 울려댔다. 그 소리가 한참 지속됐을 때 범인은 바람이 아니란 걸 알았다. 스산한 배경을 뚫고 밖으로 나가보았다. 밤이라곤 했지만 어스레한 빛이 남아있었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그간의 여행 흔적을 보여주듯 온몸이 새까맣게 그을려있었다. 자기 집에 들어오면서 대문을 두들기는 모양새는 분명,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오자마자 분주하게 짐을 나르더니, 또다시 사라졌다. 4개월 만에 집에 오는 거라면서 또다시 누군가의 집으로 외출을 했다. 뒷말은 들리지 않았다. 4개월 만에 오다니. 예상보다 훨씬 비범한 부부인 것이 분명하다. 오늘 밤은 혼자가 아닐 줄 알았는데, 여전히 나 홀로 집에 있다.


내 방 창문으로 보이는 정류장 아침 풍경


바람이 심하게 부는 아침이다. 새벽 6시 즈음에 늘 들려오던 소리, 창문 밖 정류장에서 수다 떠는 어머니들 소리. 오늘은 그 외에 하나 더 추가되었다. 서울에선 이런 바람 소리를 8월쯤, 들어봤음직한 소리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그런 날씨. 지붕은 잘 견디고 있나 괜히 천장 한 번 쳐다본다. 오늘은 밖에 나가지 말아야겠다.


을씨년스러운 바람 소리 덕이었을까. 꿈자리도 뒤숭숭했다. 어수선한 아침, 이젠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주인 부부가 어느새 돌아온 것이다. 방 밖으로 나갈까 말까 망설이는 걸 보니 그들과 마주치는 게 어색한 모양이다. 아니다.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일어나도 두 번은 일어났을 시간에 계속 방안에 있는 것도 이상할 터. 이들은 오자마자 분주했고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였다. 마침 제주 MBC 라디오에서는 <정오의 희망곡> 시그널이 울려 퍼졌다. 이를 '노동요'라 말하는 걸 보니 그녀는 전형적인 주부였다. 주인 여자는 내가 어디에 있건 상관없이 말을 걸었다. 자리를 옮기려다가도 그녀가 말 건네는 소리 따라 다시 곁으로 돌아갔다. 그 짓을 몇 번 반복하다가 하릴없이 옆에 계속 있기로 했다. 영락없이 주인 따라다니는 강아지가 된 꼴이었다. 


이들 부부와 첫 티타임



저희는 김녕 해수욕장에서 텐트 치고 한 달 넘게 살았어요.



차 한 잔 마시겠냐 물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시간이 왔다. 주인 부부가 마음에 들어 이 집을 계약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들을 빨리 알아가고 싶었다. 일주일 넘게 혼자 앉았던 코타츠에 세 명의 발을 모아 넣고 앉았다. 이들이 행원리에 이사 온 때는 2014년, 그전에는 김녕 해변에서 한 달을 야영하고 살았다고 했다. 야..영이라고? 알면 알수록 충격적인 부부. 그 흔적인 것인지 이들 방에는 침대 대신 텐트가 있었다. 어쩌면 이들에게 일상 자체가 여행이 아닐까?


두 부부는 어떻게 만났을까 궁금해졌다. 인도에서 만났다는 두 부부. 스쿠버 다이빙 강사와 학생의 만남. "넌 선생이고 난 제자야!"라고 시대 지난 개그를 선보였지만 행복해 보였다. 말 그대로 현재를 사는 사람들. 남자는 이름이 '루피'였고 여자의 이름은 '파이샤'였다. 인도 화폐로 100파이샤가 1루피였다. 루피는 파이샤를 감싸 안아줄 든든한 남자인 걸까. 애정이 느껴지는 이름이다. 평정한 태도로 이들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만 나의 속은 그렇지 않았다. 아주 부럽고 예쁘고 난리가 났다.


가치관이 맞는 짝을 만난다는 건 정말이지 행운이다. 생활양식이야 조금 다를 수 있지만 그것은 맞춰가면 되니까. 삶을 여행하듯 살아가는 부부는 나의 꿈이자 로망이었다. 나의 이런 꿈을 상대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가치관이 맞는다 해도 마음 맞기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니까. 이런 인연을 만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안다. 두 사람이 함께 해온 지난날의 여정이 대단해 보였을 때 한 마디 거들었다. "정말 복 받으신 거예요"


앞으로 이 부부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될 것 같다. 

나를 자극하는 흥미로운 커플이다. 

계속 몰래 관찰해봐야지!




@YogurtRa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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