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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작가 Apr 23. 2019

오늘부터 우리 가족됐어요

어느새 세 사람은 동거인이자 가족이 되어 있었다.

함께 지낸 시간을 세어보았다.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오래되지 않은 날들. 그럼에도 우리는 오래전부터 함께한 사이 같았다. 비슷한 취향, 성향, 성격 등 각종 갖다 붙일 수 있는 조건들이 맞아떨어졌다. 어쩌면 나는 이곳, 행원리에 오기 전부터 그녀를 이미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 집에 들어온 지 열흘... 드디어 입방식


뒷마당에서 키우는 루콜라. 

주인 부부가 집을 비운 지 4개월이 지났어도 이것들은 알아서 잘 자라고 있었다. 잘 자라다 못해 중구난방으로 잎사귀가 나 있었다. 역시 집주인은 집주인이었다. 오랫동안 집을 비웠대도 그릇을 찾는 손길이 친숙했다. 동선이 자연스럽고 효율적이다. 파이샤는 루콜라 잎사귀로 금세 샐러드를 만들어왔다. 나 혼자 살던 열흘 동안만큼은 이 집은 나의 집이었다. 나의 체취, 부엌 테이블에 놓인 텀블러와 식빵, 화장실에는 젖은 수건과 칫솔... 나의 흔적이 가득했더랬다. 


그런 집에 나 이외에 사람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혼자 살 때는 느끼지 못 했던 것들. 버터 바른 식빵이 노릇해지는 냄새 위에 인도에서 가져왔다는 레몬 진저 향이 함께 났다. 이들 부부가 자식처럼 키우는 강아지 영희도 오랜만에 느끼는 안정감에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열흘간 이 집주인처럼 활보하던 나의 자신감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다시 나는 쭈구리가 되었다. 머물 곳 모르는 시선과 정의할 수 없는 묘한 표정이 나의 마음을 보여주었다. 


치명적인 매력의 영희씨


다시 발을 모으고 코타츠에 둘러앉았다. 

주인 여자는 나에게 항상 소파에 기대앉을 수 있는 상석을 내주었다. 작은 호의지만 나를 향한 세심한 배려가 느껴진다. 나는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말이 많지 않은 편이다. 상대를 관찰 혹은 파악하는 시간. 주인 남자는 줄곧 조용했고, 반대로 여자는 쉴 틈 없이 재잘거렸다. 여자의 재잘거림은 본성이 아니라, 어색한 침묵을 타개하려는 그녀의 노력이었다. 이를 알아챈 지는 그로부터 30분 정도 지켜본 뒤였다.


어느 정도의 알코올에 긴장의 끈이 느슨해졌다. 차가웠던 공기가 따뜻해지고 세 사람의 양볼도 뜨거워졌을 무렵, 주인 여자는 내게 대뜸 고백을 했다. 



나, 얘가 좋아!



남녀 관계가 되었건, 친구가 되었건 사람을 알아갈 때 주로 하는 질문은 '영화, 음악 취향'이다. 대화를 이어나가기에 이만한 소재가 없으니까.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나를 이루는 감성과 생각을 소개하기에 이만한 이야기는 없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대화가 끊이지 않았고, 영화 하나를 더 댈 때마다 주고받는 말들의 간격은 좁아졌다. 주인 남자도 조금씩 긴장이 풀리는 듯, 웃음을 자주 보였다. 웃음소리가 잦아질수록 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하루의 시작, 티타임


잔잔한 바람이 불어오는 아침. 

제주 행원리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늘 그랬다는 듯, 주인 여자 파이샤는 나에게 뒷마당으로 나오라고 했다. 눈곱도 떼기 전인데, 뒷마당엔 무슨 일일까 싶었다. 


주인 남자, 루피가 만든 간이 평상. '간이'라는 말을 붙이는 게 미안할 만큼 튼튼하고 목재가 좋았다. 주인 여자, 파이샤는 이 날 해야 할 일을 남편에게 말했다. 파이샤가 한 가지씩 읊었고, 남편 루피는 동요하지 않고 차분히 들었다. 나는 그저 청취자일 뿐, 지역 라디오 공개방송에 온 것 같았다.


파이샤는 차를 한껏 우리더니 잔에 따랐다. 사기그릇에 떨어지는 찻물 소리가 바람에 어우러졌다. 우리 셋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점점 진해지는 차 색깔을 들여다 보다가 고개를 들면 옆집 초록 밭이 보였다. 무슨 밭일까 궁금해 물어봤다. 당근밭이라고 했다. 곧 주황 작물이 열릴 걸 상상하니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렇게 별일없이,

오전이 흘러 머리 위에 해가 떴다.




#가족이 된다는 것


파이샤는 저녁때가 되면 나에게 식사 여부를 물었다. 식사를 제때 챙겨 먹지 않는 나를 위한 마음 씀씀이었다.간혹 나의 대답이 시원치 않기라도 하면, 그들 식탁에는 언제나 밥그릇이 하나 더 놓여있었다. 내 것이었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얼른 치킨너겟을 튀겨 반찬에 보탰다. 내가 내올 수 있는 반찬이 고작 치킨너겟이라니. 혼자 살 때 나에게 식사는 '일'이었다. 간편하고도 빠르게 생존이 가능할 정도로 먹는 일. 



명이나물, 계란말이, 그리고 치킨 너겟.

루피가 끓인 시원한 돌미나리 된장국까지 있으니 저녁 상차림이 화려해졌다. 그리고 빠지지 않는 것 하나, 술. TV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를 보면서 하루살이가 별것 없구나, 하루 세끼 챙겨 먹으면서 저렇게 행복해하는구나 싶었는데. 이곳에 와 시골살이를 해보니 언젠가부터 서울살이 하던 내가 어색해졌다.


밥그릇 부딪치는 소리, 국물 마시는 소리.

이것은 사람 사는 소리였다. 가족이 낼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소리. 나는 명이나물을 좋아했고, 자기들끼리 들러붙은 명이나물을 떼려고 고군분투했다. 파이샤는 밥을 뜨다 말고 젓가락으로 명이나물을 떼주었다. 누구도 먼저 부탁하지 않았고, 도와주겠노라 말하지 않았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뤄진 관계였다. 혼자 식사할 때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따뜻함과 충만함. 


어느새 세 사람은 동거인이자 가족이 되어 있었다.





@YogurtRa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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