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습게도 관계의 깊이는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
우습게도 관계의 깊이라는 게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
만난 지 하루도 안 된 사람이 한없이 편안할 때가 있는가 하면
평생 갈 줄 알았던 친구가 한없이 멀어지기도 한다.
제주살이 한 지 보름쯤 지났을까. 생일을 맞았다.
기다리던 연락이 하나 있었고,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연락이 하나 있었다.
새벽 2시, 제주 행원리는 그 시간에도 쉽사리 잠들지 않았다. 어두움은 사람 마음을 무장해제시킨다. 파이샤와 옆방 두 명의 처자들은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잠들기 위해 눈을 감고 있었지만, 두 귀는 거실서 떠드는 여인네들을 향해 열려 있었다. 야심한 시각, 그들은 차분한 공기에 이끌려 서로의 마음을 하나씩 열어보였다.
오늘은 나의 생일이다.
생일에 연연하지 않는 성격이라 말하고 다녔는데, 지금 기분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기다리던 연락이 있었고 그 연락은 몇 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내가 바란 건 '축하한다'는 연락 한 통이었는데...
새벽 3시. 잠을 자야 한다. 기다려봤자 실망만 깊어질 터이니 억지로라도 눈을 붙여야 한다. 잊어야 한다. 자야 한다는 주문은 나의 의식을 더욱 또렷하게 했고 그럴수록 비참해져 갔다. 애꿎은 전화기만 들었다 놨다 반복한다. 고작해야 3시 5분. 5분밖에 흐르지 않았다니.
기대하고 있었다. 연락이 올 줄 알았기에 일찌감치 방에 들어온 것이었다. 혼자 있고 싶었으니까. 나만의 감정에 빠져 그 속에서 허우적대고 싶었다. 그날은 그런 날이었다. 너에게 연락이 온다면, 혹은 오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들과 깊이 얽히고 싶지 않았다. 마음을 열어 보이는데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사람은 웬만하면 가까워질 빌미를 쉽게 제공하지 않는다. 수줍어하지는 않지만, 일정 간격 이상으로 자신을 내보이지 않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외로움을 자처하는 사람. 그날 밤, 관성을 깨보고 싶었다. 일상을 벗어나 제주로 왔듯이.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계속 이대로 혼자 있다간 절망에 빠져 감정의 널뛰기를 할 것 같았다. 미쳐버리기 전에 나를 구출해줘야겠다 생각했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파이샤는 이 의미를 알고 있었다. 상기된 목소리로 안줏거리를 더 만들어오겠다며 부엌으로 향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고소한 참기름 냄새와 미역이 함께 있는 미역국이었다.
그녀에게 미역국의 의미를 물었다. 그녀는 어떤 의도 없이, 그저 안주용 '미역국'이라 답했다.
언니, 고마워요.
단순한 안줏거리였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녔다. 냉장고에 남는 미역이 있어 미역국을 만든 것뿐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이 음식의 의미가 무엇이냐며 따지고 드는 사람은 정상이 아닐 것이다. 파이샤 역시 어떤 영문도 모른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 그녀의 팔목을 잡고 대뜸 고맙다 말해버렸다. 사실은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말과 함께. 당신이 미쳐버릴 뻔한, 땅 속 깊이 우울해하던 나를 구해주었노라고.
파이샤는 정말 까맣게 몰랐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기이한 현상을 본 사람처럼 온몸에 끼치는 닭살을 비벼대며 괴성을 질러댔다. 함께 있던 두 처자들도 우리 둘을 번갈아 보며 감탄사만 연발했다. 그때 시각, 새벽 3시 30분. 미역국을 케이크 삼아 생일파티를 열었다. 초를 대신하여 온 집에 있는 향초를 모아 불을 켰다. 다른 때보다도 더욱 향기로운 생일 케이크였다. 내 평생 겪어본 생일파티 중 알게 된 기간이 가장 짧은 사람들과 함께 한 시간. 보름의 시간 동안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관계에서 기간은 결코 중요치 않다는 걸 새삼 다시 깨닫는다.
마음이 힘들었던 지난밤. 새벽 내내 목 놓아 울었다. 마음을 눌러 담은 편지도 함께 울었다.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은 마음, 이대로 침전해 버려도 좋을 듯했다. 견디기 힘들 땐 더 어둡고 깊은 곳으로 찾아 들어가는 습관이 있었다. 출구가 어딘지 알면서도 자기 연민에 빠져 그곳을 즐기는 사람.
느린 템포의 음악
한쪽 벽만 멍하니 보고 누워서
어떠한 생각도 하지 않는 것
무표정이라지만, 세상에 무(無) 표정은 없다. 유(有) 표정이란, 사람들의 표정 속에서 적절한 감정과 의미들을 찾아낸 것. 그렇다면 무표정은 적절한 감정과 의미를 찾아내지 못한, 언어화하지 못한 것 일뿐이다. 내겐 우는 것보다 더 슬픈 표정은 무표정이다. 입꼬리가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았지만, 눈동자가 정처 없이 굴러가지만 그 갈길 잃은 눈코입들이 애처롭다. 이불도 눈치껏 숨죽이고 그림자마저 누워있다. 아침해가 밝고서야 맞은편 방에 파이샤가 있다는 걸 알았지만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저 울어야만 했다. 울어야 후련해질 마음이었다.
장작가 숟가락 하나 더 갖고 와.
볶음밥 했어, 같이 먹자.
아침식사로 먹기엔 많은 양. 작정하고 만든 음식인 듯했다. 그녀는 옆집 삼촌네서 막걸리까지 사들고 왔다. 이런 날은 막걸리라며. ‘이런 날’이라는 단어가 귓가에 잠시 맴돌았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흐린 날씨가 될 수도 있고, 누군가의 우울한 기분이 될 수도 있으니까. 어쩌면 부정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간밤에 그만큼이나 힘들었다는 사실을 들켰다는 걸. 그녀의 아침상은 나에게 보내는 말없는 위로였다. 이럴 땐 고맙단 말이 나와야 하는데…
청승맞게 난 그 말에 코가 시큰해졌다. 애써 괜찮은 척 입안에 밥알을 혀로 이리저리 굴려본다. 내가 별 볼 일 없이 나약한 사람이라는 걸 드러내는 것도 엄청난 용기라는 걸. 나는 울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고맙단 말도 못 하고 어중간한 노선 위에 있다. 그 용기가 없어 애꿎은 숟가락만 들었다 놨다 한다.
속을 든든히 채웠으니 이젠 비울 차례다. 다섯 사람과 영희씨는 차에 올랐고 얼마 안 가 내린 곳에서 마주한 풍경에 내 마음은 일렁였다. 봉긋이 솟은 여자 가슴처럼 굽이굽이 곡선이 출렁이는 곳. 이곳은 용눈이오름이다.
한 걸음씩 오를 때마다 바람에 흔들거리는 풀소리가 선명해졌다. 우리 집 젊은 처녀들은 탁 트인 풍경에서 자유를 만끽했다. 만화영화에서나 볼법했던,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언덕 위에서 떼굴떼굴 구르는 천진함. 같이 하자며 손을 흔들던 소녀들, 나는 그저 손을 흔들어 인사만 할 뿐이었다.
나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족쇄에 묶여있었다. 그다지도 남의 시선이 중요했을까. 하고 싶지 않았으면 말이나 안 해, 이곳에 나 혼자였다면 몇 바퀴고 굴렀을 거면서. 아무렴 창피하면 어떻고, 나잇값 좀 못하면 어때. 한 발자국만 내디디면 되는데, 그게 참 어렵다.
감정도, 행동도,
나는 아직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 족쇄를 풀 열쇠는 내 손안에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