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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작가 Apr 13. 2016


'헬조선'에 대한 책 <한국이 싫어서>

[소설 한국이 싫어서]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장강명 장편소설 <한국이 싫어서> ; 민음사

이 책을 읽고 난 후, 크게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YogurtRadio




#한국이 싫은 '디지털 노마드 세대'


우선 책 제목이다. 우리는 "한국이 싫었다."
매스컴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단어가 바로 '헬조선'이다.
그것도 20-30대 세대들의 입에서 나온 단어다. 이들의 삶을 면밀히 들여다 보자.


한국에서의 10대는 오로지 한 곳만을 보고 달린다. 이름하야 '대학'.
초등교육 6년, 중등교육 3년, 고등교육 3년. 도합 12년의 힘든 입시를 치러 대학을 가게 된다. 
어느 대학이든 상관없다. 이 나라에서는 '대학'이라는 이름만 붙으면 우선 가고 본다.
고졸보다 그게 낫다는 생각들 탓이다. 대학 나오지 않은 인간은 돌연변이 바라보듯 안쓰럽게 본다.
학문의 장인 대학을 가서도 젊은이들은 쉴 수가 없다.
잔디밭에 둘러앉아 베버를 논하고, 뒤르켐에 공감하는 대화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다.
캠퍼스의 낭만은커녕, 동아리 마저도 취업 스쿨로 변질된 지 오래다.
스무 살 난 어린 청년들은 동아리방이 아닌 토익학원으로 가기도 한다.

나는 20대 막바지의 청년이다. 
나의 새내기 시절과 비교했을 때, 지금 새내기들은 판이하게 다른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
'나 때는 안 그랬어! 시험 전날 공부해도 웬만큼 성적 받았는데!!!'
라고 한다면 그 자리에서 꼰대가 되기 십상이다.


어느 순간 생각의 다양성보다 정해진 답안이 놓인 세상이 되었다.
무엇이든 순위가 있었고, 학문에도 돈벌이에 따라 등급이 갈렸다.
누군가에게 끌려가듯, 이것저것 갖춰서 대기업을 가도 그것이 끝이 아니다.
결혼을 할 때도 남자의 성품이 아닌, 차가 있는지, 연봉은 어느 정도인지가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사랑도 사치가 된 세상. 끝나지 않은 레이스에 지친 청춘들은 자연스레 이민을 꿈꾸게 된다. 
"한국이 싫어서"라고.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중략) 아프리카 초원 다큐멘터리에 만날 나와서 사자한테 잡아 먹히는 동물 있잖나, 톰슨가젤. 
걔네들 보면 사자가 올 때 꼭 이상한 데서 뛰다가 잡히는 애 하나씩 있다? 내가 걔 같애. 
남들 하는 대로 하지 않고 여기는 그늘이 졌네, 저기는 풀이 질기네 어쩌네 하면서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있다가 표적이 되는 거지.


제목에서 호감을 잔뜩 얻고서 책장을 넘겨본다.
책을 든 그 자리에 서서 멈출 생각 않고 낄낄거리며 읽었다. 놀랍게도 솔직한 글이다.
요즘 말로 '사이다' 같은 글이다. 다만 신문 사설 속에서나 보던 '무서운' 비판이 아닌 것뿐이다.
문학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할 수 있는 은유적 비판. 

요즘 일부 청년들을 가리켜 '디지털 노마드 세대'라고 말한다.
정규직을 거부하고 이리저리 하고 싶은 것들을 따라 움직이는 유목민 같은 세대.
헷갈린다. 진짜 우리가 거부한 것인지, 그들이 우릴 거부하게 만든 것인지.
장강명 작가가 이야기한 아프리카의 톰슨가젤을 다시 바라본다.
사회에서 정한 틀에서 벗어나 행동하면 늘 그렇듯, 

세상은 이상한 시선으로 이들을 보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치부하게 된다. 

다만 이들을 디지털 노마드 세대라며 그럴싸한 이름을 붙여준 것뿐. 이들을 실상 반기진 않는다. 

사회 속에서 그들은 그저, '돌연변이'일뿐이다.


이 책은 이러한 우리들 모습을 '우리들의 언어'로 쉽게 이야기하였다.

술술 읽힌다. 친구와 메신저로 대화하듯 편하게.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늘 이야기하듯.





#무엇이든 거리를 둬야 빛이 난다



알면 알수록 이 나라도 그리 착한 나라는 아니야. (p.176)


주인공은 한국의 삶을 접고 호주로 훌쩍 떠난다. 

더 이상 한국에서의 삶에 미련도 비전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호주에서의 몇 년은 행복했지만 오래 지속되진 못했다. 

그곳도 정상적이지 않은 부분들이 곳곳에서 난무했다. 


나라도,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보았을 때, 타자가 매력적인 법이다.
그것으로 점점 거리를 좁히게 되면 이제껏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마련이다.
여드름도 보이고, 잔주름과 각질까지 보이게 된다.

영국에 1년을 거주하면서 잠깐 여행 온 한국사람들이 나를 부러워했을 때도 그랬다.
나의 남자친구를 멋있어하며 그와 사귀는 내가 부럽다던 후배들에게도 같은 느낌이었다.
부모에게 실망하며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를 칭송하던 동생에게도 그랬다.

우리는 딱, 그 정도만 보았기 때문에 그들이 멋있어 보일 수 있었던 건 아닐까.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런웨이를 멋지게 걷는 모델들을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관객처럼.
아무도 백스테이지에서의 모델들이 어떤 모습인지는 모른다.
관계자가 아니고서는.

그러니 한국이 답이 아니라고 해서 다른 곳이 답이 될 수는 없다.
모든 것에는 장단이 있기 마련이다.
이곳은 이래서, 저곳은 저래서 힘들다.
돈에 연연하는, 미쳐버린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디지털 노마드가 되든 목동이 되든 해야 한다. 
다만 변해버린 세상에 적당한 굴복을 하되, 우리의 행복을 놓진 말아야 한다. 


나의 경우에는 '약간의 타협'을 하려한다.

정상궤도에서 벗어났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제주도에서 한 달째 거주 중이다.

외주 원고를 간간히 쓰는 것으로 식비만 간신히 벌고 있다.

멋진 옷, 비싼 음식을 먹을 수는 없다. 이것이 나의 약간의 타협이다.

욕심을 버리고 내가 가진 꿈을 좇는 삶.


오늘도, 나의 행복을 놓지 않으려 부단히 애쓰고 있다.





@YogurtRa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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