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앙코르곡, 시벨리우스 '슬픈 왈츠'에 맞춰 한없는 슬픔을
오랜만에 찾은 서울시향 공연. 지휘자 한누 린투Hannu Lintu, conductor의 [시벨리우스 교향곡 5번 Sibelius, Symphony No. 5]와 피아니스트 보리스 길트 버그 Boris Giltburg, piano의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 16번Greig, Piano Concerto, Op. 16] 공연이었다.
2013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인 보리스 길트버그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지난 시즌 서울시향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로 꼽혔다. 이번 공연에서 그는 한층 대중적인 그리그의 협주곡을 선택했다. 온딘 및 하이피리언 레이블을 통한 활발한 녹음 활동으로 친숙한 한누 린투는 핀란드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 지휘자로 재직 중이며 2012년 서울시향을 지휘해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2번을 연주한 바 있다. 이번에는 명상적이면서 축제적인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5번을 메인 레퍼토리로 준비했다. (예술의 전당 홈페이지 내용 발췌)
필자는 이 날 서울시향이 준비한 프로그램이 아닌, 보리스 길트버그가 앙코르곡으로 연주한 곡에 대해 정리해보고자 한다. 시벨리우스의 <슬픈 왈츠>다.
원제 Valse triste Op. 44
음악 장르 관현악곡
작곡가 시벨리우스(핀란드)
작곡 연도 1904년
<슬픈 왈츠>는 핀란드를 대표하는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1865~1957)를 유명하게 만든 곡이다.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와 같은 맥락으로 시벨리우스의 죽음의 춤이라 일컬어진다. 드라마 <빠담빠담>에서 극 중 전과자 양강칠(정우성)의 예견된 암울한 미래를 표현한 장면에서도 쓰인 곡이다.
왈츠라면 '왈츠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를 떠올리게 된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신사 숙녀가 손을 잡고 무도회장을 빙글빙글 도는 장면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이처럼 왈츠는 사교용으로 만들어졌으나, 점차 곡의 목적이 변하기 시작했다. 춤을 추기 위한 곡이 아닌, 연주용이자 감상하기 위한 곡으로 위치가 격상되었다. 그중 하나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춤곡인 시벨리우스의 <슬픈 왈츠> OP.44-3 인 것이다. <슬픈 왈츠>는 북유럽의 특유의 자연경관을 반영하며 기괴하고도 야릇한 몽상미에 찬 음악이다.
<슬픈 왈츠>는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의 손위 처남, 아르운트 예르네펠트의 희곡 『쿠올레마(죽음)』을 위해 1903년 부수음악의 하나로 작곡된 것이며, 연극의 제목 '쿠올레마Kuolema'는 죽음이라는 뜻이다. 곡이 연주되는 부분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아들은 위독한 어머니의 간병을 위해 매일 밤 병상을 지키고 있다.
어머니의 병세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아들도 많이 지쳤다.
"밤이다. 침대 곁에서 병든 어머니를 간호하던 아들은 고단하여 잠이 들었다. 장미색 빛이 차차 실내를 밝히우고 멀리서 음악이 들려온다. 빛과 음악은 차차 가까이 와서 끝내 왈츠의 멜로디가 귀에 들린다.
자고 있던 어머니는 눈을 뜨고 침대에서 일어나 무도복과 비슷한 길고 하얀 옷으로 서서히 소리도 없이 이곳저곳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녀는 양손을 흔들며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손님을 불러들이는 것처럼 음악에 맞추어 청한다. 아들은 아연해서 그저 어머니의 춤을 바라볼 뿐이다.
드디어 그 손님들이 나타난다. 이들 기괴한 환영들은 무시무시한 이 왈츠 리듬에 따라 돌기 시작한다. 죽음에 처해 있는 그녀도 댄서들과 같이 춤을 추며 그네들의 얼굴을 보려고 하나 그림자와 같은 손님들은 그녀의 시선을 피한다.
얼마가 지나 그녀는 피곤해져 침대에 눕는다. 따라서 음악도 멈춘다. 조금 후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다시 한 번 먼저 보다 더욱 힘 있게 춤을 춘다. 왈츠의 멜로디는 포르테로 커지고 강렬한 비트를 울리면서 방안을 빙빙 돈다. 그림자와 같은 댄서들도 다시 돌아와 맹렬히 광적인 리듬에 춤추며 돈다. 이 어딘지 음산한 춤은 절정에 도달한다. 누군가가 문을 두들긴다. 문이 활짝 열린다. 모친은 절망의 비명을 지른다. 유령의 손님들도 사라져 없어졌다.
"음악도 사라진다. 죽음이 문 앞에 서 있다."
이튿날 아침 아들이 눈을 떴을 때, 침상의 어머니는 숨을 거둔 후였다.
브라보!
'다시 한 번 더'의 뜻을 지닌 앙코르. 피아니스트 보리스 길트버그의 앙코르 곡은 비가 내리던 6월의 수요일 밤과 더없이 어울렸다. 앙코르 곡의 특성상 관객이 어느 곡이 연주될지 미리 알기는 어렵다. 쏟아지는 박수갈채와 환호하는 브라보 속에서 그는 재입장했다. 그가 오길 기다리는 협연자들과 비어있는 피아노. 그 틈에 다시 앉았다. 지휘자 한누 린투도 함께 나와 협연자 틈에 앉아 그의 연주를 기다렸다.
누구 하나 숨 쉬지 않는 듯,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전체가 고요함에 파묻혔다. 그의 한 음 한 음 끌어당기는 듯한 연주에 따라 어디론가 따라갔다. 어둠 속에 바다빛을 품은 그곳, 시야는 또렷하지 않지만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상체를 일으켜 그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고 싶었다. 슬픔이란 반드시 눈물이 동반되는 것은 아니다. 저미는 마음 한 줌 부여잡고 선율 따라 몸을 너울거려본다.
<슬픈 왈츠>는 이야기의 내용처럼 강렬하고 때로는 그로테스크하다. 꿈과 현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춤을 추듯 몽환적인 <슬픈 왈츠>. 이 짧은 곡을 듣다 보면 어느새 묘한 집중력과 흡입력에 도취되곤 한다. 죽음뿐 아니라, 상실과 슬픔을 연주하는 <슬픈 왈츠>는 진지함 속에서 춤을 추는 것으로, 그 순간이란 영혼이 우리 곁을 떠날 때인 것이다.
#1. [관현악 버전] 시벨리우스 <슬픈 왈츠> 감상하러 가기.
https://www.youtube.com/watch?v=MwInRLZF0ps
#2. [피아노 버전] 시벨리우스 <슬픈 왈츠> 감상하러 가기
https://www.youtube.com/embed/U6mR_Ejil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