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작가 Jan 21. 2017

누군가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박웅현 <책은 도끼다>

[도서 리뷰] 좋아하는 남자를 알아가는 설렘으로 책의 첫 장을 넘겨본다.

우연찮게 읽게 된 책.
1월 19일 목요일 늦은 밤 10시 즈음을 시작으로
모레 날이 밝기 전, 끝낼 수 있기를.
좋아하는 남자를 알아가는 설렘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의 첫 장을 넘겨본다.
마지막 장을 넘길 땐 아쉬움으로, 나아가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가길 머뭇거리는 손을 마주하기를.
- 처음 만난 날.





1강. 시작은 울림이다.

논에서 잡초를 뽑는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벼와 한 논에 살게 된 것을 이유로
'잡'이라 부르기 미안하다
- 이철수 <이쁘기만 한데...> 전문  (P.23)

보고 만질 수 없는 <사랑>을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게 하고 싶은
외로움이, 사람의 몸을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 최인훈 <광장>

사람은 물입니다. 조용한 데 이르면 조용히 흐르고, 돌을 만나면 피해 가고, 
폭포를 만나면 떨어지고, 규정된 성격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영미 에세이 50선에 드는 헬렌 켈러는 책 첫 부분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숲을 다녀온 사람에게 당신은 뭘 봤냐고 물었더니, 그가 답하길 '별것 없었어요'라고 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겁니다. 자기가 숲에서 느낀 바람과, 나뭇잎과 자작나무와 떡갈나무 몸통을 만질 때의 전혀 다른 느낌과, 졸졸졸 지나가는 물 소리를 왜 못 보고 못 들었냐는 거죠.
이렇게 인생이 특별할 게 없는 사람들은 생의 마지막에 떠오를 장면이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거미줄에 달려 있는 물방울의 아름다움을 본 사람들은 죽을 때 떠오를 장면들이 풍성하겠죠.
(P.50)

파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파리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곳에 있을 시간이 삼 일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삼 일 있다가 떠난다는 걸 아니까 모든 게 난리인 겁니다. (p.51)


2강. 김훈의 힘, 들여다보기

니코스 카잔차키스도 그의 소설 속 주인공인 조르바를 통해 "그에게 두려웠던 것은 낯선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것이었다"라고 얘기합니다. 우리는 익숙한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습니다. 익숙한 것 속에 정말 좋은 것들이 주변에 있고, 끊임없이 말을 거는데 듣지 못한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P.90)


3강. 알랭드 보통의 사랑에 대한 통찰

상대의 짙은 눈빛이나 세련된 정신세계 때문이 아니라 저녁 내내 혼자 일기수첩이나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서 연애를 하려고 하는 것은 낭만적인 사랑 개념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 알랭드 보통 <우리는 사랑일까>

석 달째 주말에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서 벽만 보고 있는 '나'가 사랑의 출발점인 거예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상대가 운명적인 남자라서가 아니라 석 달 동안 데이트도 못 하고 주말이면 혼자 있어야 했던 외로움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거예요. (...) 그 남자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을 사랑하는 거죠. 내가 사랑하는 건 그 상대가 아니라 나예요. (P.109)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상대가 다른 누구도 주목해주지 않았던 어떤 부분을 주목해주거나 다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던 진가를 알아줬을 때 사랑에 빠진다는 거죠. (P.115)

이 세상에서 부유한 사람은 상인이나 지주가 아니라, 밤에 별 밑에서 강렬한 경이감을 맛보거나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해석하고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 - 알랭드 보통
삶, 즉 사람의 힘, 기쁨의 힘, 감탄의 힘을 모두 포함하는 삶 외에 다른 부는 없다. 고귀하고 행복한 인간을 가장 많이 길러내는 나라가 가장 부유하다. 자신의 삶의 기능들을 최대한 완벽하게 다듬어 자신의 삶에, 나아가 자신의 소유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도움이 되는 영향력을 가장 광범위하게 발휘하는 그런 사람이 가장 부유한 사람이다. - 존 러스킨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냐.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 - 카프카 (P.129)

키스는 모든 것을 바꾸어버린다. 두 살갗이 접촉하게 되면 우리는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들어가, 암호화된 말의 교환은 끝이 나고 드디어 이면의 의미들을 인정하게 될 터였다. - 알랭드 보통<동물원에 가기>


4강. 고은의 낭만에 취하다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고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 고은

봄바람에
이 골짝
저 골짝
난리 났네
제정신 못 차리겠네
아유 꽃년 꽃놈들! - 위 시들은 모두 고은의 시집 <순간의 꽃>

급한 물에 떠내려가다가
닿은 곳에서 싹 틔우는 땅버들 씨앗

이렇게 시작해보거라

살다보면 우리 뜻대로 되지 않아요. 급한 물이 밀려올 때가 있죠. 그럼 타야지 어쩌겠어요. 그러고 나서 결국 어딘가에 닿았어요. 사실 나는 거기에 닿고 싶지 않았는데, 아래쪽으로 3미터쯤 더 가고 싶었는데 그 지점에 가지 못하고 닿았단 말이죠. 그럼 어쩌겠어요. 땅버들 씨앗처럼 거기서 최선을 다해 싹을 틔워야죠. (P.154)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 - 고은 <낯선 곳>



장작가의
요거트라디오



> Part 1.0
광고를 만드는 사람 박웅현이 읽고 느낀 감동을,
그 사람 마음속 감정들의 향연을 들여다보았다.
원 저자가 살고 있는 세계 그리고 그 세계에서 놀다 온 박웅현.
그곳에 놀러 간 그를 지켜보는 나.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카페에 가면 늘 창가 자리부터 찾는다.
그 자리가 긴 테이블의 바 형태의 테이블이건, 의자가 불편하건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바깥에서 이뤄지고 있는 생의 움직임을 보기 위함이다.
나 또한 생의 한가운데를 살면서도, 그것에서 초연한 듯 관망하는 즐거움에 빠진다.

이 책을 읽는 사흘은 나에게 그런 시간이었다.
단 여러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의 마음속을 밀도 깊게 헤집어본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 Part 2.0

가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쉽게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이다.
- 알랭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 더 이상 '나는 누구인가'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보다 '나는 상대에게 누구인가'가 중요해진다는 이야기죠.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에서 내가 어떻게 보이느냐에 초점을 맞춘다는 겁니다. (...) 관점이 모두 상대로 돌아서는 것이 사랑인 겁니다. (P. 104)

언젠가 깨달았다. 시선을 사로잡고자 애쓰던 이는 늘 나에게 냉정했고, 그럼 초조함이 배가 되어 더욱 격렬한 몸짓으로 표현했다. 당연히 결과가 좋을 리 없었다. 그러한 과도함과 서투름은 '진짜 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간절히 얻고자 할 때, 상대방은 나에게서 도망가더라. 그것이 결론이다.

그렇담 반대의 경우는? 
언제부터였을까. 상대의 시선이 나에게 줄곧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본능으로 알았다. 나는 지금, 저 사람에게 무척이나 치명적인 여자라는 걸. 의도하지 않은 때, 꾸미지 않은 순백의 나를 보여주던 그 시간에 상대방은 나라는 위험에 빠진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나의 시선에는 그 사람이 머물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다.

사랑할 때의 나는, '나'를 버리고

세상의 모든 것들이 '너'를 중심으로 돌아가더라는 것.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당신을 사랑했고,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다.


@YogurtRadio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