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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Sep 19. 2024

사과받고 싶은 남자

살아가는 이야기







일본에서의 오래전 일이다.

어느 날, 슈퍼에 들어가다가 뒤에서 들리는 남성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발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저기요, 부딪쳤는데요”


결코 큰 목소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작은 소리도 아니었다. 어느 쪽이냐 하면 표정이 없는  말이라 할까, 감정이 없는 로보트 같은 말투라 할까, 그런 느낌이었다.

(혹시, 내게 하는 소리인가?)

하고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았지만 나를 보고 있는 시선은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잘못 들었나?)

생각하고 돌아서서 슈퍼 안으로 걸어가는데 다시 그 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요, 부딪쳤는데요”


나는 다시 뒤돌아보았다. 물론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머리에 털모자를 쓰고 가방을 멘 어떤 청년인지, 아저씨인지, 하여간 어떤 남자가 슈퍼 입구에 서서, 어느 한쪽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무표정한 얼굴의 그 남자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쇼핑백(어르신들이 쇼핑을 할 때 사용하는 물건을 가방에 넣고 밀고 다닐 수 있는 것으로 앉을 수 있는 가방)을 밀고 가는, 허리가 휘어질 대로 휘어진 할머니가 고개를 숙이고 무엇인가 물건을 고르고 있는 곳이었다.


(설마! 할머니?)


어쩐지 낯선 그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남자의 시선과 조금 전의 그 한마디가 신경이 쓰여서 물건을 고르는 척하며 주시하였다. 남자는 안 되겠다고 생각을 했는지 뚜벅뚜벅 걸어서 할머니 옆으로 갔다. 그리고는,


“저기요, 조금 전에 부딪쳤는데요”


이번에는 할머니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나는 저 남자가 왜 그러나 싶었다. 앞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허리를 굽히고 쇼핑백을 밀고 다니는 할머니인데 그냥 지나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그런 상황이 처음이기도 했고, 또,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이윽고,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무슨 일인가 하여 할머니와 그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할머니는 허리를 펼 수도 없는지 고개만 들어 그 남자를 보았다. 그리고는,


“으응? 뭐? 나?  …… 부딪쳤소?”


“네, 그렇습니다만”


“아, 그래요? 미안해요”


할머니의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그 남자는 만족했는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없이 뚜벅뚜벅 걸어서 슈퍼 안으로 들어갔다.


정말 이상한 사람도 다 있다. 보통 나이 드신 분들과 부딪치면 젊은이들이 사과를 하는 게 상식 같은데 어찌 된 일인지 그 남자는 끝까지 할머니에게 사과를 받고자 했다. 일본에서 지내며 그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일본에 처음 갔을 때 느꼈던 첫인상은 사람들이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말을 너무 자주 사용하여

 (이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이 그리도 미안하고 죄송한 것일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언가를 부탁할 때는 ‘반드시’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고멘, 와루이네(미안하다는 뜻), 고레 춋토 얏테 구레루?(이거 좀 해줄래?)

이런 식으로 부탁을 했다. 그래서 나 역시 무언가 부탁할 때는 그들의 말을 흉내 내어 사용했다.


우리 애들도 내게 무엇을 부탁할 때는

"고멘, 와루이케도(죄송한데요)"

라고 한마디를 하고 부탁을 한다.

아침에 준비해 놓은 도시락을 들고 갈 때는 "아리가토~(고마워요)"

라고 한마디 하고 가지고 간다.

자다가 이불을 덮어주면 잠결에도 "아리가토~( 고마워요)"라고 한다.


이런 습관은 좋은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예전에 자주 들리던 그 소리도 요즘은 아쉬운 느낌이 들 정도로 자주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부딪쳤는데도 사과하지 않는다고 싸움이 나기도 한다. 실제로 전철 안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데, 전철에서 내려 서로 옥신각신 하다가 선로에 떨어지는 사건도 있었다.

물론 그 좋은 습관들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아쉬운 생각이 든다. 


일본 사회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것을 자주 느낀다. 과학이 발전하고 편리한 용품이 가득하고

밖으로 나오지 않아도 방에서 TV를 보던지 게임을 하던지 하면 기간을 보낼 수 있으니 히키코모리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이미 오래되었다. 한국에 와서 보니 한국 또한 만만치 않다.


일본이나 한국뿐이겠는가. 유럽은 또 어떤가.

브라질 아마존강 유역의 밀림에서 지내는 소수민족들에게 누군가 안테나를 설치해 주고 휴대폰을 무료로 나눠주었더니 주민들 사이가 나빠졌다는 뉴스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이제 세상은 인터넷, 휴대폰을 사용하기 전과 후로 나뉘는 것 같다.


휴대폰이 편리하기는 하지만 우리의 좋은 것들을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나 많이 빼앗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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