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벚나무가 많다. 벚꽃이 필 때면 꽃잎들이 눈처럼 휘날리기도 하고 말없이 하늘거리며 떨어지기도 하는데 바람이 없는 날에 살짝살짝 흩날리는 벚꽃 잎을 볼 때면 추억의 한 장면처럼시간이 정지된 느낌이 든다. 가을에는 얼굴 붉힌 단풍이 계절을 일깨워준다. 가을바람에 우수수 낙엽이 떨어질 때면 말할 수 없는 그리움이 밀려오기도 한다.
딸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는 항상 걸어서 유치원에 갔다. 아이와 같이 천천히 걸어가면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유치원이 있었다. 일본의 엄마들은 자전거 뒤에 애들을 태우고 씽 씽 자전거로 달리든지 아니면 차에 태워서 애들을 유치원에 데리고 간다. 출근하는 엄마들에게 자전거와 자동차는 필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 일본 아이들의 발 사이즈가 길어지고 근육이 많이 없어졌다고 전하는 뉴스 소식을 들었다. 아이들이 많이 걷지를 않아서 뼈도 약해지고 옛날과는 신체 구조가 제법 달라졌다고 하는데 공감하는 바가 컸다. 나도 애를 자전거에 태우다가 그 뉴스를 보고 나서 가능한 아이와 걷기로 했다. 물론, 아침의 10분은 한 시간과도 맞먹는다. 하지만, 걸어가는 시간을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으로 생각하고 마음을 정하고 나니 편한 마음으로 다닐 수 있었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조금 일찍 나가면 되었다.
아이와 걸어가면서 많은 말들을 했다. 오늘 엄마가 힘이 없다고 하면 아이는 파워를 보내준다며 내 손을 힘껏 잡고서는 "파워~~!!" 하며 힘을 보태주기도 했다. 그러면 그날은 하루 종일 힘이 났다. 또 어떤 날은 하나, 두울, 셋, … 100까지 숫자를 세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레스토랑 놀이를 하기도 했다. 아이가 “어서 오세요. 뭘 드릴까요?” 하면, “커피 주세요” “주스 주세요”라고 주문을 하는데 “오늘은 주스가 없으니까 우유 드세요” 하며 멋대로 바꿔서 주기도 하고 주스 한 잔 값이 10엔이었다가 천 엔이었다가 기분에 따라서 달라졌다. 또 어떤 날은 끝말 이어가기를 하기도 하고 꽃을 보기도 하고 개미집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가을에는 낙엽을 주워서 가방에 넣어서 가기도 하고 아이와 그 시절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갈수록 생생하게 생각이 난다. 그 예쁜 시절은 그렇게 금방 지나버렸다. 지금은 자기 관리, 친구 관리 하느라 조잘대는 일도 별로 없어지고 혼자서 책을 보거나 조용히 있는 시간이 많은 중학생이 되어버렸다.
그날도 조그만 아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유치원엘 가고 있었다. 낙엽이 떨어진 거리를 걸으며 아이는 “와아, 너무 예쁘다!” 하며 감탄을 했다. 나 역시 감탄을 하며 천천히 걸었다. 그날 공원 안 잔디 위에 떨어진 낙엽은 지금껏 보아 왔던 그런 낙엽과는 뭔가 달랐다. 지금 마악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낙엽은 아직 수분이 남아 있어, 아침 햇살에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 내는 듯 필사적으로 마지막 호흡을 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낙엽을 보며 낙엽이 이렇게 아름다웠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 손을 잡고 몇 년을 다닌 길인데도 처음으로 보는 풍광이었다.
정말 감동적인 시간이었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아이를 빨리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나서 천천히 사진을 찍어야겠다 생각을 하고 길을 재촉했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나서 서둘러 공원의 그 장소로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조금 전 그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반짝거리던 빛은 사라져 버리고 생기 없이 떨어져 뒹굴고 있는 낙엽들. 물론 낙엽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좀 전의 그 빛나는 모습을 보고 말았기에 몰려오는 아쉬움과 실망감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정말 중요한 것을 놓쳐버린 것 같은
아쉬움, 그 느낌은 지금도 애석함으로 남아있다.
그 후로도 가을이 되면 사진 찍을 준비를 하고 아이와 같이 걸어가곤 했는데 두 번 다시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가을이 올 때마다 올해는 볼 수 있을까 하며 기다리고 있다. 가끔 사진으로 반짝이는 낙엽을 볼 때면, 사진을 찍는 프로들은 아마도 그 한 장을 얻기 위해 온종일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기 위해 수고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하면 내가 프로가 될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 같아 씁쓸해지기도 한다. 물론, 당시의 모습을 내가 사진을 찍었다 해도 프로 작가가 찍은 것 처럼은 나오지 않겠지만.
지금도 나는 가을이 되어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질 때면 지나간 그 장면이 생각나고 정말 잠깐 만이라도 낙엽의 그 빛나는 마지막 모습이 보고 싶어서 마음이 설레인다.
오늘도 길을 걷다 무수히 떨어져 뒹구는 낙엽을 보며, 문득 아이와 함께 걷던 그 길이, 그 시간이 그리워지고 또한 그때 보았던 그 낙엽이 그리워져서 잠시 가던 길 멈추고 나무들 사이로 들어가 한참 낙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시의 생활이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하루하루 힘을 내어 다닐 수 있었던 것은 힘주어 잡아주던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그 고사리 같은 손이 있어서 나는 그 하루를 살아낼 힘을 얻었던 것 같다. 아니 분명 그랬다. 아이는 점점 자라는데 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서서 지금도 그 밑을 지나는 주먹만 한 아이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가끔씩 나무는 어떤 언어를 사용할까 생각하게 된다. 나무와 대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씩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