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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il Sep 26. 2023

킁킁.. 킁킁킁.

글을 위한 필사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백수린>


며칠 전에 책상 앞에 앉으려다 클로버들이 담긴 투명하고 작은 물병이 놓인 걸 발견했고, 나는 그것이 간밤에 빨래를 하고 다녀간 언니의 선물이란 걸 알아차렸다. '언니 클로버 갖다 놨네. 이거 심는 거예요?' 하고 메시지로 물으니 언니는 '뿌리가 조금 돋으면 심어봐'라는 말과 함께 '잘 키우시게. 행운이 열리면 나도 줘'라고 답을 보내왔다. 글을 쓰다가 싱그러운 초록빛 잎들에 눈길이 멎으면 '이웃'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줄기 끝에 매달린 클로버 잎을 닮은 두 개의 동그라미가 돋아나 있는 단어, 이웃. 가족도 친구도 아니지만 적당히 가까운 거리에서 동그랗게 이어져 있는 사이. (...) 우리는 모서리와 모서리가 만나는 자리마다 놓인 뜻밖의 행운과 불행, 만남과 이별 사이를 그저 묵묵히 걸어 나간다. 서로 안의 고독과 연약함을 가만히 응시하고 보듬으면서.


백수린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_나의 이웃들>






아침에 출근하니, 사람은 없고. 책상 한편에 작은 병을 집 삼아 솜털 같은 뿌리를 낸 애플민트가 올려져 있었다. 오밀조밀 크고 작은 잎사귀에 손길 스치는 곳마다 존재감을 드러내며 기분 좋은 박하 향을 마구 뽐내는 것이 어찌나 귀엽던지 흥에 겨워 킁킁 소리 내며 냄새를 맡고 있는데, 잠시 자리를 비웠다 돌아온 G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왠지 그녀가 눈으로 하는 말이 육성으로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지만, 곧 머쓱해져서 "아니 그게 냄새가 너무 좋아하 킁크끄응" 하고 말하자 G는 고개를 저으며 "하아" 하고 만다. 그럼 또 나는 부리나케 “아니, 아니 그렇게 날 포기하지 마!“ 농담을 건네려다 조금 전의 내가 창피해져서 모니터 앞으로 몸을 숨겼다.

애플민트의 정체는 모든 식물이 시름시름 앓다 스러져 간다는 G의 집에서 유일하게 장발로 살아남은 아이로 물꽂이 후 솜털 같은 뿌리가 내리길 기다렸다가 내게 준 것인데, 식물 애호가(?)로서 나는 이 행위를 무척이나 애정한다. 물꽂이를 위해 식물을 자를 때, 어디를 자르면 우리 집 화분이 단정해 보일까에 첫 마음을 쓴다면 두 번째는 물갈이를 반복하며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한데 필수 불가결한 그 과정을 게을리하면 겨우 물 하나로 버티는 식물이 그 물 때문에 무르거나, 초록별로 떠나기도 해서 두 배의 노력과 정성이 필요했다는 뜻도 된다. 그 조그마한 것이 그렇게 살아남아 뿌리내린 하나의 생명이란 생각에 이르면 오두방정, 개방정 방정이란 방정은 다 떨다가 마주친 G의 눈에 (왜 저래? 하며) 오만정이 다 떨어진다고 육성으로 읽힌다 한들 뭣이 어떠한가. 킁킁. 킁킁킁. ・‧̫・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은, 무언가를 내어 줄 수 있다는 것. 그 안에 누군가를 향한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 나와 엮인 사람들과 서로의 모서리를 둥근 마음으로 보듬어 주며, 긴 겨울 끝에 만나는 반가운 새순 같은 어여쁜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클로버도 키우고 나눠보자고 "행운이 열리면 나도 좀 줘"라는 사랑스럽고도 귀여운 문장에 기대어 나도 같이 귀여워지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다. 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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