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il Sep 25. 2023

그랬쪄쪄용?

글을 위한 필사 <아무튼 사전, 홍한별>


나는 제대로 말하지 못할까 봐 조바심을 느낀다. 말을 하려는 마음이 말보다 늘 한 걸음 빨라서, 엇박자로,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가 다리보다 마음이 먼저 나가는 바람에 넘어지듯이 말을 한다. 제대로 된 단어를 얼른 찾지 못해 과녁에 맞지 않는 단어를 사용한다. (엄마는 이런 나를 잘 알아서 나한테 너무 빨리 말하려 하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지금까지도.) 나는 내 생각을 표현하는 데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서 비슷한 말을 반복한다. 높은 곳에 손을 뻗을 때처럼, 노래할 때 높은 음에 한 번에 가닿지 못해 '사랑했지만-'이 아니라 '사람했지므안-'이라고 부르는 사람처럼 더듬거린다. 아니면 마음만 급해서 물에 가라앉지 않으려고 물수제비뜨듯이 혼자 저 너머 발화의 종착점을 향해 달리다 청자의 손을 놓치고 만다.


홍한별 <아무튼 사전_층계에서 하는 생각>





'OOO 님 5월 급여 명세서입니다.' 문자를 받자마자 헛웃음이 났다. 이것저것 잔뜩 떼어간 명세서를 한껏 노려보며 '내 형편은 언제 나아질 수 있지?’ 추가로 떼일 것들까지 생각나 부글부글 마음이 끓었다. 이번에야말로 마이너스를 면할 수 없음을 직감하자 퇴근도 몹시 당겼다. 회의 다녀온 동생이 자리에 앉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저번달 보다 더 줄었어요. 월급에 차도가 없어요."

"왜죠? 건보료도 끝났잖아요?"

"아니, 아니 저는 안끝났쪄쪄용."

“그랬쪄쪄용?”

“네,그랬쪄쪄요옹”

(ㅠ_ㅠ)


​울 것 같은 마음과 달리 몹쓸 애교스러운 말이 눈치 없이 튀어나와 “쪄쪄용” 퍼레이드가 이어지는 통에 동생도 웃고, 나도 웃고, 옆 동료도 웃고, 그걸 듣고 있던 파트장님도 웃고, 평소에 쓰지도 않는 말투가 왜 하필 조용한 침묵 속에서 튀어나오는 것인지 TPO고, 과녁이고 깡그리 사라진 그 순간의 나는 그저 홍조 인간일 뿐이었지만. 여기저기서 들리는 웃음소리에 부끄러움을 무르고, 반토막 난 월급 얘길 하며 이렇게 웃는 일도 흔치 않은 일이라며, 내일 닥칠 현실이고 뭐고 기분이 조금 나아진 오후였다. (이번이 처음이 아닌 게 조금 위로가 되기도 했지므안- )

매거진의 이전글 본격! 도토리 채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