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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il Oct 05. 2023

食食 춘오옼옥이!

기록은 기어코 기억이 된다_엄마


이맘때가 되면 춘옥은 가족 모두에게 <음식처리반>이라는 특명을 안겼다. 은은하고도 치밀한 춘옥식의 강요는 이런 것이다. “왜 이렇게 인기가 없지? 맛이 없나? 조금만 더 지나면 버려야겠네?” 같은 말들로 한숨을 쉬거나, 과하게 안타까워하며 끼니마다 밥상머리에 앉은 식구들에게 호소와 최선을 요구하는 것이다.


입안이 세 군데나 헐어서 집에 도착한 내게도 인정사정없긴 매한가지였는데 춘옥이 만들어 놓은 양념게장이 너무 매워 맵찔이들이 입을 댔다가 금세 포기하자, 춘옥의 레이더는 나를 조준했고 “게장으로 지져야 해! 지지면 빨리 나아!” 그 말인즉, “내가 믿을 건 너뿐이다. 얼마나 공을 들여 만든 건데 음식물 쓰레기가 되는 건 볼 수 없다.”라는 춘옥식의 압박이었고, 나는 슬금슬금 빼다가 결국에는 눈물을 머금고 양념 범벅 게장을 입에 물어야 했다.


게다가 ‘식샤 타이밍’은 어쩜 그렇게 틈이 없는지 눈뜨면 아침 식사, 껌뻑하면 점심 식사, 배부르단 추임새 전에 이어지는 저녁 식사에 <기가 빨리는 기분, 부대끼는 속, 화끈거리는 입> 춘옥식 삼박자 식샤 타임은 질주를 멈추지 않고 언니와 조카들을, 이모와 이모부를, 삼촌과 나를 살찌웠다. 아무리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이라지만 춘옥은 정말이지 버리는 것을 싫어해, 우리를 살찌우는 방법을 택하는 사람 같았다.


그렇담 둘 중 하나만 해야 하지 않을까?


후덕한 언니에겐 뱃살을 빼야 한다면서 밥을 더 권하고, 정신없는 조카들에게는 ‘쟤들은 가만있질 못하는데 왜 살이 찌는 건지 이상하다며 독침을 쏘다가도 아이스크림을 먹겠냐며 굳이 간식을 챙기고, 잔치국수와 비빔국수 논쟁에서 져 버린 후 복수하듯 내 그릇에 비빔국수를 산처럼 쌓아주며 동그랗게 뜬 눈을 애써 외면하며 “얼마 안 된다.” 묵직한 사기를 친 춘옥은 같은 날 밤 열 시에 기어이 잔치국수를 삶아 이모와 이모부 삼촌까지 야무지게 말아주고는 “한 젓가락?” 이란 말로 거실에서 방으로 나를 내빼게 만들었다. 그쯤 되니 기분 탓이 아니라 정말이지 3kg은 살이 찐 것만 같고, 괜스레 속이 더부룩하게 느껴졌다.


산처럼 높이 쌓아 준 비빔국수 여파로  다음날 아침 말도 못 하게 부은 내 얼굴을 보며 춘옥은 입을 실룩거리며 “얼굴이 통통하니 보기 좋아 뵌다”며 아침부터 약을 올리는가 하면 언니에게는 ”아이고 배가 아주 빵빵하네 “ 해놓고 밥을 조금만 먹는다고 복스럽지 못하다며 못마땅해했다. 춘옥의 마음은 대체 무엇일까? 나는 엄마가 되어본 적이 없어서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모르겠다.


엄마의 집을 탈출한 후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37분짜리 fat burning carido workout 운동 동영상 play였다. 헉헉. 악악. 그 운동에 대해서 정말이지 할 말이 많지만 (특히 웬만해선 하고 싶지 않은 운동이라는 점, 굉장한 근육통) 오늘로 사흘 째, 헉헉. 악악. 운동 후 ‘아이고’를 입에 달고, 몸에는 파스, 근육통으로 구석구석 아프니 춘옥이... 춘옥이 미웠다. 나의 食食 춘오옼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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