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끝 마디가 보이세요?
계절은 때의 마디이다.
마디라는 것은 끊김이 아니라
이어지고, 멈추고, 다시 시작되는 경계이다.
경계 안에는 보이지 않는 공간이 있고,
그 공간으로 상상력이 침투할 틈이 생긴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해보는 것이다.
마디 안에 뭔가 들어있지 않을까.
계절은 마치 자연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커다란 호흡 같다.
마디 안에는 호흡 사이의 아주 짧은 고요가 있고,
생명과 생명 사이의 틈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 틈에는 내가 볼 수 있는 흐름이 숨어 있다.
가을도 아니고 겨울도 아닌,
둘 다의 가능성이 묻어 있는
이행의 기운 같은 것.
작고 섬세해서 이름 붙일 수 없지만,
몸과 마음은 그런 미세한 전환을 먼저 감지한다.
그래서 계절 다음
뭔가가 있을 것이라 상상해 보는 것이다.
계절의 마디 안에는 변화가
태어나기 직전의 상태가 들어있다.
완성되기 전의 기운,
형태를 갖기 직전의 움직임 같은 것.
달리는 열차가 정거장에
완전히 멈추기 직전의 흔들림처럼.
이 틈을 느끼는 사람은, 계절보다 리듬을 읽는다.
자연의 사계 四季 대신,
마음의 사계 私季를 읽는다.
자연과 시간 사이에 숨어 있는
끊임없는 마디들 안에 변화의 태아가 웅크리고 있다.
내 안에서 순환하는 은밀하고 사적인 계절.
11월은 계절의 마지막 색을 털어낸 뒤,
비로소 텅 비어 순결이 깃들기를 기다리는 자리다.
형형색색의 숨이
바람에 나부끼는 길모퉁이 끝자락에서
나는 계절이 결정을 미루다
남겨놓은 빈 공간을 바라본다.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은,
지나간 계절들이 남긴 조용한 후회다.
11월의 끝, 마디가 보이세요?
이미지: 핀터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