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파괴하고 무엇을 건설할 것인가

by 이현조


사람이 보험이다.28

나는 무엇을 파괴하고 무엇을 건설할 것인가?


이틀 후 사무실 이사다. 2주 전에 인테리어를 시작했고 지금은 블라인드 등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쿠킹스튜디오를 하던 자리에서 씽크대를 철거하고 가벽을 세워서 대표실과 회의실을 만들고 조명의 위치를 바꾸고, 도대체 여기에 왜 이렇게 했을까 싶은 테이프 자국들을 힘들게 제거했다. 바닥에 원인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엉겨붙은 물질들을 손수 제거했다. 텅 비었던 공간에 벽이 세워져 방이 만들어지고, 얼룩과 묵은 때를 하나씩 제거해 나가면서 나는 요즘 읽고 있는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파괴가 없이 건설은 없다. 건설이 있으면 그만큼의 파괴가 있다.”

- 테야르 드 샤르댕 저, ‘인간현상’, 한길사, 1997 中 -


이 책을 구입한 건 10년 전이었다. 제목에 끌려 사놓고는 읽다가 어려워 덮었던 책인데 최근에 우연히 들춰보고 곱씹고 줄 그으며 열심히 읽고 있다. 반쯤 읽은 지금, 나는 저 문장에 매료되어 나를 수 없이 고민하고 돌아보고 있다.


인테리어도 결국, 전에 사용하던 사람의 흔적을 파괴하고 나의 공간을 건설해 내는 것이다. 이 문장을 이해하기 전에 나는 항상 무엇을 더 잘하고 더 가지려고 했다. 지금의 나 위에 더 나은 무엇인가를 첨가하고 첨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그 노력이 무산되는 경험을 했다. 그 이유가 혹시 내가 아무것도 파괴하지는 않고 그 위에 건설을 하려고만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더듬어 반성하고 내가 어리석게 쥐어 파괴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아차리려 노력해 본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현재보다 더 갖고 싶어하는 것, 더 나아져야 하는 것은 잘 알고 있고 인식하려 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가져야 하고 나아져야 하는 것은 ‘더’가 아니라 ‘대신에’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다못해 황무지에 건물을 짓더라도 해당 부지에 돌이나 방해되는 물질을 제거하고 땅에 있는 흙을 한참을 걷어내고야 지반을 다지기 시작한다. 허물어져 가는 낡은 집을 지으려면, 낡은 집을 부수고 그 잔해를 치운 후라야 새로운 집을 지을 수 있다.


아침형 인간이 되어 누리고 싶은 긍정적 효과를 위해서는 단지,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밤에 일찍 잠들어야 하고, 살을 빼고 싶으면 누워있는 대신 운동을 해야 하고, 돈을 벌고 싶으면 놀지 말고 일을 해야 한다. 우리의 시간과 기회는 한정되어 있고 우리는 무엇을 더 갖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선택할 권리를 가지는 대신에 무엇을 포기할 의무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업계에서 재산의 증식을 위하여 자주 논하는 ‘복리의 마법’도 시간을 갈아넣어 자산을 증식하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는 “나는 무엇을 버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다른 글자의 다른 질문이다. 여기서 누군가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영원히 ‘더’ 가질 수 없는 것인가?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들은 ‘버린다’를 ‘상실’로 받아들인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 대신 ‘버리는’ 것은 하나를 상실하고 그 자리에 상실의 분량이 재생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더’ 나은 것을 얻기 위해 ‘낡은’ 것. 즉 낡은 습관, 낡은 물건 등을 버려서 ‘더’ 나은 것의 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더’ 나은 것을 들인 자리에 ‘더더’ 나은 것을 들일 기회를 만나면 ‘더’ 나은 것을 비우고 ‘더더’ 나은 것을 들이고, ‘더더’ 나은 모습과 습관으로 ‘더더더’ 나은 것을 들일 기회를 만났을 때 ‘더더’ 나은 것을 포기하는 선택을 해나가는 것이다.


나는 바닥의 얼룩을 닦아내면서 수없이 고민했다. 내가 새로이 건설한 이 세상. 나의 새로운 세트장. 이 새로운 법인 주소지에서는 어떤 영화를 촬영해서 세상에 내놓을 것인가.


나는 반드시 흥행할 영화를 제작할 것이다. 기존에 내가 주연을 맡았던 열심히, 끈기 있게 노력하던 불굴의 의지를 가진 주인공이 아닌 날 때부터 이 세상에 모든 게 준비되어 있는, 마음만 먹으면 온 세상과 온 우주가 돕는 그런 주인공을 만들어 낼 작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주인공이 지었던 굳은 의지가 보이는 굳게 다문 입술 대신, 세상에 태어나 좌절 같은 건 전혀 겪어본 적 없는 해맑은 눈동자와 자신감 있는 걸음걸이를 가져야 한다.


그럴려면 어차피 맘에 안 들 청소업체의 서비스라는 핑계로 내가 직접 청소하는 것이 아니라 팁을 얹어주고 더 열심히 청소하게 만드는 사람이어야 했다. 반성한다. 회사의 일거리를 엄청나게 쌓아두고 이사가 중요하다면서 이사 청소를 며칠간 직접 다했다. 얼룩을 시원하게 제거하는 대신 나는 돈이 되는 일을 해야 했다. 나에게 ‘더’ 나은 선택이 있었는데 내가 포기하지 않아서 선택할 수 없었다.


나는 지금 의료배상 사고의 손해사정서를 검토하는 대신, 이 칼럼을 쓰고 있다. 나는 이 순간 무엇을 파괴하고 무엇을 건설하고 있는가? 지금 당신은 어디에서 무엇을 파괴하는 동시에 무엇을 건설하고 있는가? 그 사실을 인지하여 온전히 ‘덜’한 것을 포기하고 ‘더’한 것을 선택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라. 그것이 바로 ‘복리의 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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