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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Feb 05. 2021

새 시어머니와 보내는 설 명절


내일이면 연휴네요. 왠지 꼭 설얘기를 해야만 할 거 같은 생각이 드네요.    

 

명절 하면 가족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지요. 저희 시댁은 8남매 대가족입니다.     

저는 사촌형제까지 통틀어 막내 며느리입니다. 층층시하 형님 아주버님들 뿐이라

호칭은 머리 쓰지않아도 되니 그거 하나만큼은 명쾌하게 좋습니다.     


제가 시집 왔을 때 이미 연세가 많으셨던 시어머니는 제가 시집온지 3년만에 돌아가셨지요.     

보통은 시댁에 갈 때 어른 드릴 음식을 준비하거나 가서 사드리는데 저는 출발하기 전에     

어머니가 절구질해주시는 흑임자인절미가 먹고 싶다고 해서     

찹쌀떡 절구질에 흑임자절구질을 하시게 만들고 제사 지내려고 사다두신 굴비를 나 구워주시고     

새로 사시라 조르기도 하고 어머님이 선물받으신 화장품은 쳐다만 보고 있어도     

층층시하 형님들 눈에 안 띄게 차에 몰래 실려 있었지요.

유난한 막내며느리를 무척 귀여워해주셨는데 사랑받은 시간보다     

훨씬 긴 10년이 지났어도 보고 싶고 그립습니다.     


이렇게 그리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3년 뒤 시댁에 한바탕 폭풍우가 쳤으니,     

그것은 바로 새어머니의 등장이었죠.

온가족이 탐탁지 않아했지만 아버지는 정말 눈에 띄게 회춘하셨고 맏아주버님은     

아버님 걱정을 덜었다며 환영했지요.     


문제는 여자들이었습니다. 남자들은 모르는 여자들의 국자전쟁, 나물전쟁, 제사상전쟁,     

김장전쟁을 여러번 치루면서 어떤 형님은 받아들이시고 어떤 형님은 점점 감정이 상하고.     

아! 그리고 시골분들만 아실 광 열쇠쟁탈전은 어찌되었건     

안주인인 새어머니를 해볼 도리가 없더라구요. ^^     


저요? 저도 돌아가신 시어머니 생각에 마음이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눈빛만 보내도 내어주시던 분과 광열쇠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 분은 너무나 달랐으니까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흘러 지난 해 추석에 어떤 사건이 저를 무장해제시켰습니다.   

  

설거지를 하면서 제가 노랗게 물든 접시며     

이것저것 버릴 그릇들을 내놓으며 잔소리를 했습니다.

이런 거 버려버리지 뭐하러 쓰세요.

.

.

.

엄마 손 떼 탄거 버린다고 할까봐.

.

.

.

두둥! 허걱!     


몰랐네요. 그 눈치를 보실 줄. 어머니가 생전에 안입고 안쓰고 모으신 돈으로 새옷 사입고

임플란트 하시는 게 나는 속상했었는데.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릇 하나 솥단지 하나도 어머니 쓰시던 그대로였네요.   

  

처음으로 그분의 입장에서 우리 시댁을 돌아보았습니다.     

평생 안짓던 농사를 지어야하고 힘들게 지어놓은 곡식은 8남매가 조금씩만 들고 가도     

얼마 없는 거 같고 봄에 힘들게 쑥 캐서 만든 쑥개떡 반죽도 자식들이 다녀가면 없고     

깨며 들기름이며. 거기다가 먹성이 좋아 모이면 끊임없이 음식을 해야하는 집안에     

그분이 60이 넘어서 새로 시집 오신 거죠.     


우리는 자식이 아니라 손님이고 메뚜기떼 같을 수 있는거죠. 광열쇠는 소중한 것일 수 밖에.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아팠습니다. 같은 여자로서..     

그분이 우리에게 친어머니가 아니듯 그분에게 우리도 친자식이 아닌 것을     

조금도 헤아려보지 않았었습니다.     


저는 주방을 다뒤져서 금 간 그릇 찌든 그릇 모두 꺼내 밖에 버렸습니다.

어머니 제가 버린 거에요. 아셨죠?

명절이 끝나고 돌아오자마자 그릇세트를 주문해서 보냈습니다.     

제가 갖고 싶던 걸로. 같은 여자니까.     


이번에 내려가면 그 그릇에 밥을 먹을 수 있을까요?     

제가 아끼지마시고 된장국, 김치국 다 담아드시라고 했더니 놀라시던데     

아마 꺼내도 아주버님들 상에 올라가겠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연휴 잘 보내세요.     


당신의 눈과 귀를 열어주세요        

  



 - 2015년 이수현 손해사정사가 씀 -     


(2015년의 이수현 손해사정사가 코로나19로 설날에도 가족들을 만나기 어려운 분들의 가족사랑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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