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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지 Oct 24. 2021

매일매일 근손실

쓰는근육 1

6만원. 회사에서 개인의 체력 증진을 위해 지원하는 한 달치 복지 비용이다. 헬스, 요가, 필라테스, 복싱, 투포환, 에어로빅, 배드민턴 - 종목은 상관없다. 하지만 영수증, 수강권 등 증빙서류가 없는 체력 단련 행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홈 트레이닝이라든가, 저녁 동네 한 바퀴 조깅 같은 것.


나는 한 번도 이 실리적인 복지 비용을 받아본 적이 없다. 태초부터 운동을 싫어하는 성향과 각목 같은 몸뚱이를 가진 탓도 있지만 세상엔 극강의 고통 속에서 땀을 흘리며 지방을 태우지 않아도 희열을 느낄만한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서른'을 두고 운동의 필요성을 여실히 느끼긴 했다. 예전엔 하루 이틀 밤새는 건 예삿일이었는데 이젠 하루 6시간을 꼬박 채워 자지 않으면 다음날 반드시 힘들다. 한 끼 정도 굶으면 오목하게 패이던 복부는 하루 꼬박 굶어도 절대 줄어들지 않는 '배둘레헴'을 형성했다. 증학교 때 체육시간이 싫어서 일부러 다리를 다쳐왔던 친구가 3년째 필라테스를 하고 있는 걸 보니 운동이 취미가 아닌 생존이구나 싶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좀처럼 들질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이젠 정말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의외로 최근 회사에서 보도자료를 쓰기 위해 Word를 켰을 때였다. 써야 할 내용은 끊임없이 머리에 굴러다니는데 정작 한 글자도 편히 쓰지 못했고, 깜빡거리는 커서를 멀뚱멀뚱 바라보다 오전을 날린 적이 여러 번이었다. 글쓰기를 취미이자 특기라고 자부하며 살아온 것도 어느덧 십 년이 지났는데, 요즘의 나는 정작 그다지 글 쓰는 게 즐겁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다. 긴 호흡의 글은 엄두가 나지 않고, 짧은 글조차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쓰던 편지나 엽서에도 손을 놓은 지 오래고 요즘엔 일기를 쓰는 것조차 두렵다. 어떤 큰 심경의 변화나 가지고 있던 능력주머니를 잃은 것은 아니었다. 쓰지 않는 근육이 퇴화되어 말랑 말랑해지듯, '쓰는근육'도 매일매일 손실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알고 보면 글쓰기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근육을 사용하는, 체력 단련의 결정체라고 볼 수 있다. 뇌라는 중추신경을 자극하면서 눈의 시신경은 글자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손, 팔, 어깨 등 소근육들이 제때제때 움직여주지 않으면 '글'이라는 온전한 형태의 텍스트를 만나볼 수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글쓰기는 '한없이 개인적이고 피지컬한 업'이라고 표현했고, 매일매일 이메일로 글을 송고하는 <일간 이슬아>의 작가 이슬아는 글쓰기 루틴을 위해 수영과 철봉 매달리기, 맨손 체조 등을 하고 있다. 나는 꾸준히 신작을 발표하는 작가들이나 지면 속 익숙한 이름의 기자들의 치열한 노동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온 몸뚱이에 붙은 근육은 할머니처럼 사라질지라도 '쓰는근육' 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한 글자씩 꾸준히 적어봐야지. 하찮아도 많이 쓰자. 꿀덕꿀덕 글을 삼켜 벌크업을 하자. 이렇게 스스로에게 도전장을 던져본다.


2019.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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