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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지 Mar 20. 2022

데스크테리어

쓰는근육 2

요즘 데스크테리어가 인기란다. 데스크테리어는 데스크와 인테리어의 합성어로 일명 '책상 꾸미기', 책꾸다.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폴꾸(폴라로이드 꾸미기), 스꾸(스티커 꾸미기)를 넘어 책꾸라니. 하나부터 열까지 다 꾸미게 된 배경에는 온 세계를 덮은 역병 때문인데 화려한 명품백을 사들고, 혹은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반도 안팎으로 돌아다닐 수 없게 되면서 나의 공간, 나의 바운더리 안에서 즐겁고 아름다운 것을 해내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역시 예쁜 것을 탐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꽤나 슬픈 상황에 낙담치 않고 즐거움을 발견해나가는 것이 '해학'의 민족답다.


나는 개인적으로 데스크테리어와는 거리가 멀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리정돈과는 일생에 단 한 번도 친구가 된 적이 없기 때문. 초등학교 1학년 때 아이의 학교생활 적응을 위해 부모님들이 적어내는 환경조사서(정확한 명칭은 사실 잘 모르겠다)에 우리 할아버지는 정갈하고 정성스러운 글씨로 이렇게 적어두셨다. '밝고 심성이 착하고 고운 말을 쓰나 어려서 정리정돈이 서툽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이십몇 년이 지나고 보니 그건 단지 어려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렇게 태어난 건데. 크면서 이러한 성정은 그냥 나라는 사람의 특징이 되었고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았다. 물론 어쩌면 남들과는 다른 특별함을 갖고 싶었던 중 2병 시절 잘못 길들여진 자아일 수도 있다. 아인슈타인의 책상을 보며 누군가는 그 카오스 속의 질서가 아인슈타인의 천재성과 창의성을 방증한다고 했다. 나는 그때부터 스스로 아인슈타인과 동급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역시 잘못 창조된 대한민국 중 2였다.


이 병은 어느샌가 불치병이 되어 사회에 나와서도 도통 나아지지 않았다. 첫 회사 대표님은 "바퀴벌레 나올 것 같아!"라고 한 적도 있다(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다... 자랑이라고 쓰는 건 아님). 두 번째 회사로 이직할 때는 그나마 조금 나아졌는데 어느 날 책상 앞 창문가에 둔 선인장이 쓰러지며 내 자리에 쏟아진 돌과 자갈을 치우며 결심했다. '어차피 만물은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우주도 무질서한 공간이잖아. 내 책상은 내 우주고 자연이니 치우지 말아야지'


다른 다짐들은 작심삼일을 넘기지 못했는데 어째 이 다짐만큼은 여전히 유효하다. 언젠가 갑자기 사장님이 내선전화를 거셨다. "책상 정리를 좀 하는 게 어때? 어제 휴가였다며. 나는 퇴근 안 한 줄 알았어." 하지만 왠지 이것만큼은 실행할 수 없는 업무같이 느껴져 "그런데 저는 책상 정리가 되어있으면 업무가 잘 되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집중도도 낮아지고 산만해지고, 불안해져요"라는 되바라진 말을 했다. 당시 나는 이 회사에서 가장 어린 사원이었고 사장님은 우리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 사이의 연세셨으니 이 얼마나 하극상인가. 하지만 '그런 말은 난생처음 듣지만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셨다. 그 후 사장님께선 종종 퇴근시간 사내를 한 바퀴 도시며 정리정돈이 미흡한 직원의 모니터에 '정리정돈 요망'이라는 포스트잇을 붙이곤 하셨으나 내 자리만은 예외였다. 말도 안 되는 신념을 지지해주신 덕에 무사히 대리를 달았다.


여전히 내 책상은 미지의 세계. 그러나 재밌는 공간이다. 작고 귀엽고 신기한, 어쩌면 쓸모없는 '예쁜 쓰레기'를 좋아하는 내게 책상이라는 우주는 너무 작다. 내 택배가 도착하는 날이면 모든 직원들이 우르르 달려온다. 이번엔 어떤 신문물을 또 시켰을까, 대리님 책상엔 새로운 게 너무 가득해서 신기해요-하면서. 이건 내 나름대로의 데스크테리어. 남 부럽지 않다.  



202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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