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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지 Apr 05. 2022

레퍼런스를 부탁해

쓰는근육 3

홍보대행사에서 구르고 구르다 인하우스 마케팅팀에 박힌 돌이 된 지 3년이 되었다. 생각보다 더욱 철이 없었던 나는 문학사에 예술사를 복수 전공하며 학교를 한량처럼 다녔다. 그리고 '나는 한량이 꿈이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애치곤 꽤 빨리, 스물여섯에 직장인이 되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어쩌다 보니 대행사에 와 있었다. 


시작 지점의 오류를 그때는 알지 못했다. 실은 고등학교 때부터 '광고쟁이'가 되고 싶었던 나였으나 이십 대 초반 여러 굴곡을 겪으며 광고의 궤도에서는 멀리 벗어났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학교 선배가 언니의 회사 인턴을 권했다. '너처럼 반짝이는 아이가 필요해'라는 말에 현혹되었다. 어떤 업무를 하는 곳인지 물었을 때 '아, 광고랑 비슷해!'라는 말을 믿지 말았어야 했다. 대충대충의 습관이 인생의 궤도를 바꾼 것이다. 4월 1일, 거짓말처럼 첫 출근을 했고, 혹 지금 내 눈앞에 거짓말처럼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때의 나에게 돌아가 이렇게 말하고 싶다. G.O.A.W.A.Y. 광고랑 비슷하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고 똥과 된장을 찍어먹어보지 않은 내 탓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렇게 말했지만 그렇다고 항상 눈물만 흘렸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눈물 흘리는 날이 웃는 날보다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루 종일 회사에 앉아서 하는 일이 모두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이라는 게 종종 현타가 왔다. 나는 인턴 한 달간 하루에 10가지 업무를 쳐내는 인력이었으나 그것들은 하나같이 모두 짜쳐서(*https://brunch.co.kr/@freesong/113 몽돌님의 회사어 사전을 참고해주시길) 경력 기술서에 적을 게 하나도 없었다. 주 5일, 가끔 주 6일 야근을 하는 나에게 친구들은 물었다. "그런데 홍보대행사는 도대체 뭐하는 곳이야?" 나는 그때 깨달았다. 나를 사회에 꽂아준 선배가 했던 말들이 최선의 말이었음을. 


그럼에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이 업계의 궤도를 돌고 돌며 배우고 아직도 잘 써먹는 한 가지는 바로 '레퍼런스의 활용'이다. 제안서 회의를 할 때면 내가 만든 자료보다 레퍼런스 자료가 훨씬 더 많았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을 굳게 믿어야만 했다. 이 업계에서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누가 더 시의적절한 자료를 발견하느냐가 일잘의 기준이었다. 업무노트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들. '레퍼 찾기, 레퍼가져오기, 새로운 레퍼, 레퍼, 레퍼, --> 레퍼' 등 다양한 레파토리로 레퍼런스를 찾아다녔다. 그렇게 6년 차가 되니 레퍼런스는 삶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왕왕 삶에서도 레퍼런스 같은 것들을 찾곤 한다. 인생이란 원래 이런 게 맞는지를 남의 삶을 톺아보며 더블 체크하게 된다. 물론 나의 삶은 그 누구의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생각보다 훌륭한 선생들이 많다. 그렇게 선생을 자처하는 사람들도 많다. 치기 어리게 '한량이 꿈'이라고 외치던 시절의 나는, 클리셰적인 표현이지만 '겨우 내가 되었다'. 그렇게 겨우 만들어진 나를 위한 포트폴리오를 찾는 것도 결국 내 몫. 내 삶을 조금 더 두툼하게 살고 싶은 욕심, 그뿐이다.



2021.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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