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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지 Apr 04. 2023

덧니와의 이별

쓰는근육 12


교정을 결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엄마가 치아교정을 처음 권했을 때는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대략 열두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예나 지금이나 예쁘고 고급진 것에 대한 혜안을 가진 사람이다. 그에 비해 용기가 적었던 나는 치과가 무서워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얼마나 용기가 없었냐 하면 흔들리는 이를 뽑는 것이 너무 무서워 그냥 뒀다가 덧니가 생길 정도로. 앞니 바로 옆, 그렇게 다른 이보다 약간 뒤편으로 빼죽한 이 하나가 생겼다. 평생에 예쁜 것을 흠모해 왔던 엄마에게 눈엣가시를 만든 그때부터 거의 매 년마다 교정 요청이 쇄도했다. 그때 했더라면 삼십 중반에 이빨에 철길을 두른 삶을 살지 않았을 텐데. 평생 부정교합으로 마음껏 웃지도 못하는 삶을 살진 않았을 텐데. 어쩌다 보니 이제야, 근 인생의 절반이 지나서야 그 숙원 사업의 킥오프 미팅을 막 마쳤다. 


단지 용기가 부족해서 교정을 미뤄온 건 아니다. 나는 엄마와는 다른 의미로 예쁜 것을 흠모해 왔다. 엄마는 미래를 볼 수 있는 천리안을 가졌지만 나는 지금 당장 거울 속 나의 못남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 시절 치아에 둘러진 투박한 쇠줄이 영 내키지 않았다. 좋아하는 남자애 앞에서 교정기를 낀 이를 보이기 싫었던 게 가장 큰 이유였던 듯싶다. 물론 그때 교정을 하던 친구들은 누군가를 사귀고 있었고 나는 덧니만 가졌으니 지금 와 생각해 보면 내 미의 기준은 하잘것없었다. 그 친구들이 교정을 다 끝내고 활짝 웃는 모습에, 그 고른 치아가 부러워진 것은 스무 살이 다 된 후였다. 


어느새 덧니는 내 삶의 일부가 되어있었다. 강산이 변하는 세월 동안 덧니도 나도 스스로의 위치에 익숙해진 터였다. 계속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매일 학식을 같이 먹던 친구들은 내가 말하기 전까지 내 덧니의 존재를 모르기도 했으니 그냥 이대로 살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덧니가 내 삶의 전부(그 쯤 가까이)가 되는 계기가 있었다. 스물 하나, 필수 교양으로 듣던 글쓰기 수업에서였다. '필수 교양'과 '글쓰기'라는 노잼 조합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현재의 청춘을 즐기겠다며 결석으로 드롭을 했고 그나마 자리를 지키는 아이들의 절반은 졸던 강의. 그나마 글쓰기를 좋아했던 나는 그다지 즐겁진 않아도 억지로 듣는 건 아닌 수업 중 하나였다. 어느 날엔가 교수님은 '묘사'와 '은유'같은 개념을 설명하던 중 '덧니를 가진 여학생'이 들어가는 문장을 예시로 든 적이 있다. 그때 그 여학생을 묘사하는 문장도, 그 덧니를 예쁘게 포장하는 은유적 단어도 모두 내 것임을 알게 된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남에겐 없고 내겐 있는 반짝거리는 무언가. 내 미의 기준이 '특별함'이라는 것을 이제 알았다. 


그런 덧니에게 이제 안녕을 고한다. 교정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사실 다른 데 있었음을 고백한다. 제 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영구치 두 개를 빼고 임플란트 식립을 권유받았을 때 과장을 조금 보태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평생 다신 내가 내 의지대로 만들 수 없는 신체의 일부를 마주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뒤늦게 치과 보험을 알아보던 중 몇몇 보험 회사가 '영구치 발치 위로금'을 지급한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어떤 보장 내용보다 고객의 마음을 잘 아는 회사라는 생각이 들어 신뢰가 갔다. 발치 후 소독을 하러 갔을 때 의사 선생님은 교정을 권했다. 사랑니가 멀쩡해서 이렇게 이렇게 이를 당기고, 요 이를 요렇게 밀고 하면 될 것 같은데요? 그리고 여기 덧니도 있고. 뭔가 번쩍이며 희망이 보였다. 임플란트를 하지 않고 온전히 내 치아들로 더 나은 모습을 가질 수 있는 방법. 두 말 않고 교정 상담을 받았다. 


이제와 쉽게 말하지만 거의 사랑했던 덧니를, 나로 대표되었던 부정교합을 떠나보내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모든 것이 완벽했지만 덧니가 사라진다는 점이 유독 걸렸다. 다수가 걸림돌이라 지적했지만 정작 그건 내 인생에 아무 문제가 없었고 되려 그 자체는 잘못이 없었기에 조금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덧니를 경험해 본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소수일 테고, 반 평생은 덧니를 가지고 살았으니 앞으로 남은 생은 덧니 없는 삶을 사는 것도 또 새로운 체험이 아닐까? 덧니도 평범해지고 싶지 않았을까? 덧니를 덧니로 두고자 함은 내 욕심이 아닐까?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졌다. 물론 답은 정해져 있었고 정당화를 위한 작업이라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덧니도 나도 이제 제자리로 돌아간다. 이 모습으로 너무 오래 살았기에 제자리라는 말이 더 어색하지만 보편적인 기준대로라면 그렇다. 겨울에만 찾아 듣는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 중 '보편적인 노래'라는 곡이 있다. 보편적인 노래, 보편적인 날들, 보편적인 일들이 되어 함께했던 모든 것들에서 굳이 상대를 떠올리지 않겠다는 다짐이지만 결국 그 보편적인 모든 것들에서 그때, 그때의 그때를 되짚을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를 말한다. 아무리 제자리라고 말할지라도 나는 지속적으로 덧니와 그것을 가졌던 나를 떠올릴 것만 같다. 이제 조금씩 움직여 갈 덧니의 앞이자 뒷부분을 혀 끝으로 뭉근히 매만져본다. 



2023.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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